지난 5월 말 ‘어디서 살 것인가’란 신간이 나왔다. 출간되자마자 종합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 이 책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이 가득하다. 책은 ‘기업의 집’인 사옥(社屋)의 천편일률적 구조가 직원의 창의성을 저해한다고 지적한다.
6월 16일 낮 1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유현준건축사사무소에서 책을 쓴 유현준 소장을 만났다. 그는 대기업 직원들이 ‘위워크(WeWork)’의 공간에서 일할 경우 다양한 외부 환경에 노출되는 만큼 창의성과 집중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기존 사옥 또한 정원 설치나 도시 골목과의 연계를 통해 창의성을 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에 ‘위워크’가 국내·외로 성황이다.
“통신 기술 발달로 굳이 한 장소에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여기저기 흩어져 일해도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다.
위워크 같은 다른 장소에서 일하면 입주해 있는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만날 수 있어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다. 위워크 A 지점에 입주할 경우, 상황에 따라 B 지점으로 옮기거나 단기적으로 다른 지점에서 일할 수 있다. 옛날에는 ‘현대건설’ 하면 서울 종로구 계동 사옥에 모든 직원이 모여 있는 식이었다. 그러나 본사 직원을 20개 장소로 나눠 배치하면 (다른 환경에 따라) 스무가지 다른 생각이 나올 수 있다.”
위워크의 핵심 공간은 ‘핫데스크’로 불리는 공동 업무 공간이다. 여기에는 회의하는 사람도 있고 커피나 맥주를 마시면서 쉬는 사람도 있다. 이런 공간에서 업무 효율이나 생산성이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한마디로 난장판이다. 노트북 가지고 카페에서 일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런 시끄러운 상황에서 일해보면 의외로 집중이 잘 된다. 위워크는 난장판과 비슷한 상황을 만든다. 이대열 예일대 교수(신경과학)는 ‘인간의 지능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졌듯이 우리의 뇌는 복잡한 환경 속에서 더 잘 자극되도록 만들어졌다’고 했다. 오히려 모든 변화를 제거하고 안정된 사무실 공간에서 일하면 뇌가 잘 돌아가지 않는 원리다.”
최근에는 대기업 일부 부서도 위워크에 입주하고 있다.
“옛날에는 모든 것이 중앙집권적으로 통제됐다. 인터넷 사회가 되면서 이제 (가운데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구심점이 없어졌다. 물론 네이버나 구글 같은 회사들이 구심점이 되려고 하지만, 이런 것을 깨뜨리고자 ‘블록체인(Blockchain·분산저장거래시스템)’이라는 기술이 나오기도 했다. 중심을 두지 않고 흩어지는 흐름이 현대 사회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들도 생존하기 위해 조직을 스스로 쪼개는 단계에 있다고 봐야 한다.”
여전히 많은 대기업들은 보안이나 기업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위워크 같은 개방적 공간에서 일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맥도널드를 생각해 보자. 맥도널드는 표준화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햄버거를 지속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런 표준화 작업 때문에 절대로 수제버거를 내놓을 수 없다. ‘넘버투’는 될 수 있을지언정 ‘넘버원’까지 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은 선진국을 추격하는 입장이었고, 이 때문에 대량 생산, 표준화, 큰 조직이 유용했다. 이제 경제대국이 된 한국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인종·언어·주거 환경 등 다양성이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넘버원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일부러라도 다양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위워크는 그중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
사옥을 완전히 없애야 하나.
“사옥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어떤 일을 할 때 꼭 창의력만 필요한 게 아니다. 무언가를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도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일하는 건축사사무소만 하더라도 콘셉트를 잡고 창의적으로 디자인하는 단계가 있는가 하면, 이를 실무적으로 구현하는 단계도 있다. 일의 성격이 다르다. 앞의 부분에서는 위워크에서 일하는 게 좋을 수 있지만, 뒷부분에서는 조용히 사무실에 모여 팀원들끼리 상의하는 게 유용하다. 위워크에서 일했을 때 더 성과가 좋은 업무의 단계는 업종마다 다를 것이다.”
책에서 한국의 대기업 사옥은 창의성이 발현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사옥의 가장 일반적 형태는 고층 빌딩이다. 층과 층 사이는 엘리베이터를 통해서만 이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50층짜리 고층 사옥이 있다고 하자. 이런 구조에서는 같은 층에 있는 사람끼리만 만나게 된다. 조직이 50등분된 것과 같다.
가장 좋은 사옥은 지속적으로 변화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회사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변할 수도 있고, 자연이 변할 수도 있다. 위워크는 일하는 사람이 수시로 변하는 공간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사옥은 4층 높이의 동그란 도넛 모양으로 지어졌는데, 뻥 뚫린 중앙에는 거대한 숲이 조성돼 있다. 이를 통해 직원들은 자연의 변화를 수시로 볼 수 있고 창의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 한국 대기업이 사옥을 더 창의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층, 다른 부서) 직원들이 자주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옥상 외에 중간중간 테라스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에는 군데군데 정원이 있고, 층간 직원들끼리도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구조가 마련돼 있다. 아쉬운 것은 사옥 내부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주변 환경이다. 한국 대기업의 사옥은 고층형으로 그다지 창의적인 공간은 아니지만, 주변 먹자골목이 이를 커버해주고 있다. 계동 현대건설 사옥 주변 골목골목에 있는 맛집들이 직원들끼리 서로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공간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기존의 도시 환경과 대기업 사옥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장우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