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타고 한참을 내려가자 거대한 인공 굴이 나타났다. 지하 45m, 아파트로 따지면 13층 높이로 서울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인공시설이다.
어두컴컴한 터널을 따라 10분 넘게 걸었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터널 끝까지 길이가 3.6㎞이니까 한 시간은 더 걸어야 돼요. 이곳으로 모인 빗물이 반대편 끝에 있는 목동 빗물 펌프장까지 가죠. -이용길 현대건설 공사부장
트럭 두 대 다닐 만큼 넓어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양천구 신월동을 거쳐 목동 빗물 펌프장까지, 총 길이가 4.7㎞에 이른다.
터널 지름은 5.5~10m로 덤프트럭 두 대가 다닐 수 있을 만큼 넓다.
현재 터널 전 구간의 굴착은 모두 마쳤고, 내년 6월 완공을 목표로 구조물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부장은 “평소에는 비워뒀다가 30㎜ 이상의 비가 내려서 하수관로가 용량이 찼을 때 문을 열어 빗물을 받는다”며 “터널에 모인 빗물은 안양천을 통해 한강으로 빠져나간다”고 설명했다.
아직은 완공 전이지만 제19호 태풍 ‘솔릭(SOULIK)’의 상륙을 앞두고는 침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임시 가동되기도 했다.
지금도 전국에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가동을 위해 비상 대기 중이다.
축구장 45개 채울 정도로 빗물 저장
당시 서울에는 시간당 90㎜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하루에 내린 비의 양이 300㎜를 넘었다.
특히, 지대가 낮은 강서구와 양천구에서 피해가 컸다. 6000여 건물이 침수됐고, 10만여 명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봤다.
이에 따라, 2011년 4월에 이 지역이 자연재해위험지구로 지정됐고, 이듬해 5월 빗물 저류 배수시설 추진계획이 수립됐다.
터널이 완공되면 30년에 한 번꼴로 발생하는 시간당 100㎜의 폭우가 쏟아져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 부장은 “빗물 터널에는 총 32만㎥(톤)의 빗물을 저장할 수 있다”며 “축구장 45개 면적을 1m 높이까지 채울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도시 덮은 콘크리트, 홍수 유발
지난 27일과 28일에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물 폭탄이 쏟아지면서 광주광역시와 대전 등 도시 곳곳에서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도시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면적이 많은 것도 폭우에 취약한 이유다.
환경부가 2013년에 불투수(不透水) 면적 비율을 조사한 결과, 서울은 54.4%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가장 높았다.
불투수 면적이 넓으면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하수관으로 모여들어 홍수를 유발하게 된다.
강남역 일대 2021년 빗물 터널 뚫린다
관악구 서울대 정문 부근에는 8m 깊이의 지하 저류시설이 설치돼 현재 운영되고 있다.
2010년과 2011년 집중호우로 침수됐던 강남역 일대에도 2021년 완공을 목표로 빗물 터널을 만들고 있다.
서울 교대역 인근에서 반포천까지 이어지는 지하 터널을 만들어 강남 일대의 빗물을 한강으로 보내겠다는 계획이다.
박홍봉 서울시 치수계획팀장은 “강남역 침수 이후 단기적으로 10년에 한 번 내리는 폭우는 막을 수 있도록 대비를 했고, 빗물 터널이 완공되면 30년에 한 번 내리는 폭우에도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십 년에 한 번 내리는 폭우에 대비하기 위해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대규모 시설을 짓는 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오히려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도록 불투수면을 줄이고, 건물 옥상이나 강변에 나무를 심어 폭우 때 하천으로 유입되는 빗물을 줄이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빗물센터장인 한무영 교수는 “지금처럼 빗물을 하수도나 하천으로 모아서 관리하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며 “건물 옥상을 활용해 소규모 빗물저장시설을 설치하는 등 ‘와플’처럼 빗물을 서울 시내 곳곳에서 잡아준다면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