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외에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고등생물 유전체를 분석하려는 과학자들의 야심 찬 도전이 시작됐다. 한국을 포함한 미국, 영국, 중국 등 전 세계 10개국 과학자 60여 명으로 구성된 `지구 바이오지놈 프로젝트(EBP·Earth Biogenome Project)`가 11월 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공식 출범을 알리고 본격적인 유전체 연구개발(R&D)에 착수한다.
10년간 예산 5조원이 투입되는 이번 프로젝트는 2003년 종료된 인간지놈 프로젝트 이후 생물학, 유전체 분석 분야에서 가장 큰 과학 컨소시엄이 될 전망이다.
과학자들이 진핵생물 유전체 분석에 나서는 이유는 생물 특성이 DNA라는 유전자에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벌레를 잡아먹는 식충식물을 비롯해 아마존에 살고 있는 독사, 인간의 발밑을 기어 다니는 개미 등 지구에 다양한 종이 나타날 수 있는 이유는 유전자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생물이 갖고 있는 독특한 형질이 유전자에서 창출되기 때문에 다양한 식물과 동물의 특정 유전자 기능을 알아내면 인간에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뱀독에서 `앤지오텐신 전환효소(ACE) 저해제`를 분리해 낸 뒤 이를 토대로 고혈압, 심장병 치료제 등을 만든 사례가 대표적이다.
밀과 쌀 등 식물 유전체 분석을 통해 수확을 늘릴 수 있는 유전자를 찾아내면 비료 사용량을 줄이면서도 생산량은 높은 품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박현 극지연구소 유전체사업단장은 "2003년 인간지놈 프로젝트가 완료된 뒤 시작된 유전체 혁명은 인간 의료뿐만 아니라 바이오기술, 환경과학, 재생에너지 등 산업 전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EBP의 결과물은 인간지놈 프로젝트보다 훨씬 더 큰 파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전체 연구는 많은 자원과 인력이 필요한 만큼 `빅사이언스`로 꼽힌다. EBP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이 150만종의 방대한 생물 유전체를 모두 분석하기는 힘들다. 이 때문에 EBP는 `1만 식물지놈 프로젝트` `세계 지놈 다양성 네트워크` `척추동물지놈 프로젝트` 등 기존에 구성된 컨소시엄과 공동연구를 통해 목표를 달성할 방침이다. 연구에 필요한 연구비 5조원은 EBP가 직접 펀딩을 받기도 하지만 전 세계 과학자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과제를 모아 추진된다.
한국은 극지연과 국내 바이오벤처 디엔에이링크(DNAlink)가 남극생물과 국내 고유생물 유전체 분석을 맡아 EBP 참여국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경제포럼` 역시 EBP가 사회에 미칠 영향이 크다고 판단해 후원기관으로 참여했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아마존 유역에 서식하는 생물의 유전체 데이터를 수집하는 `지구 유전자 코드 뱅크`와 EBP의 협력 방안이 발표된 바 있다.
[원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