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계용량 포화인데도… 태양광발전소 허가 해주고 '뒷돈' [심층기획]

2018. 11. 4. 22:16C.E.O 경영 자료

연계용량 포화인데도… 태양광발전소 허가 해주고 '뒷돈' [심층기획]

'비리 발전소' 전락한 한전 태양광산업 / 탈원전 맞물려 전국에 우후죽순 / 연계용량 정보 한전 직원들 독점 / 사업자들에 알려주고 뇌물 받아 / 대가로 가족명의 발전소 받기도    

입력 : 2018-11-04 20:00:00      수정 : 2018-11-04 21:41:20

          

지난 1일 찾은 전남 해남군의 폐염전과 바닷가 부근 농경지는 태양광발전소의 패널이 햇빛에 반사돼 눈이 부셨다. 태양광 패널이 만든 은빛 물결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졌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땅값이 비교적 싼 해남군에 태양광발전소 사업자가 몰리고 있다. 해남지역의 태양광발전소 신청 건수는 2016년 18건 5347㎾에서 지난해 193건 3만3000㎾로 1년 새 10배가량 증가했다.

전국적으로 태양광 발전 사업의 허가는 2011년 635㎿에서 지난해 6월 9130㎿로 최근 7년간 14배 넘게 증가했다. 이에 따라 태양광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전력계통에 보내는 연계용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연계용량은 태양광발전소의 전기를 받아들이는 한전의 송전(送電)·배전(配電) 선로의 여유 용량을 말한다. 사업자들은 이 연계용량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알아야 사업 부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업자들이 한국전력공사 직원들에게 연계용량 정보를 사전에 알아내고 태양광발전소를 뇌물로 주는 비리 구조가 형성됐다.

한전 해남지사에 근무하던 A씨와 B씨가 사업자의 ‘검은 손’에 걸려든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2014년 8월 태양광 발전 사업자의 요구대로 연계용량의 정보를 제공하고 태양광발전소를 뇌물로 받았다가 특가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돼 지난해 4월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시가 2억4000만원에 달하는 99㎾의 태양광발전소를 6000만∼8500만원 싸게 받았다. 연계용량 정보를 준 대가로 태양광발전소를 뇌물로 받은 셈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으로 전국에 태양광발전소 열풍이 불면서 연계용량은 이미 포화상태다.

한전의 탈법과 불법이 더 기승부릴 여지가 생긴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2030년까지 110조원을 들여 태양광 발전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로 늘리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상황인 만큼 촘촘한 비리 근절대책을 마련해 엄정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업자에 정보 주고 뇌물은 태양광발전소


한전 직원들의 태양광발전소 비리는 2016년 불거지기 시작했다. 광주경찰청이 2016년 11월 태양광발전소 사업자에게 연계용량의 정보를 주고 뇌물을 받은 직원 3명이 구속되면서 한전 복마전의 실체가 드러났다. 한전의 태양광발전소 ‘비리 상자’가 처음 열린 것이다.

한전의 C 차장은 2014년 8월 사업자가 신청한 태양광발전소 25개 중 10개가 연계용량이 부족한데도 전부 승인해줬다. 알고 보니 C 차장의 배우자와 아들 명의의 발전소가 2개나 포함돼 있었다. C 차장은 실무직원의 연계용량이 부족해 불가능하다는 보고도 묵살했다. C 차장은 연계용량이 없을 경우 태양광발전소 신청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당시 규정을 어긴 것이다. C 차장의 비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6년 1월 아들 명의의 태양광발전소를 1억8000만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2억5800만원을 받아 7800만원의 금품을 챙겼다.

한전 직원의 태양광발전소 비리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신재생에너지 활성화 정책으로 태양광 발전 사업이 크게 늘고 있다. 그러나 태양광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받을 한전의 송·배전 선로의 여유 용량은 제자리걸음이다. 한전은 재정을 보수적으로 운영한 데다 태양광발전소 사업이 큰 수익을 남기지 않아 연계용량 확대에 소극적인 입장이다. 당연히 비리와 부정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연계용량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한전 직원들이 사업자에게 사전에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대가로 태양광발전소를 뇌물로 받는 ‘비리 먹이사슬 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이런 비리 관행이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한전이 내놓은 여러 대책도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업자들은 그동안 연계용량 정보를 알고 있는 담당 직원을 타깃으로 삼아 뇌물 작전을 벌였다. 대구지역본부 영덕지사는 2008∼2016년 영덕변전소 연계가능 용량이 주변압기별 0.2㎿에 불과했지만, 당시 42개 발전사업자가 신청한 총연계용량(26.2㎿)에 대해 기술검토에서 연계가능으로 처리했다가 적발됐다. 한전 관계자는 “연계용량 정보 독점을 막기 위해 한전 홈페이지에 여유 용량 등을 공개하는 등 제도적인 개선을 해 나가고 있다”며 “한전 직원의 친·인척이 태양광발전소를 소유하는 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고 말했다.

김규환 국회의원은 “연계용량 한계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한전 직원들의 비리 양산을 막을 방법이 없다”며 “비리를 차단할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연계용량 부족… 한전 직원 로비 타깃 여전


감사원은 지난 2월 태양광발전사업 관련 비리를 점검한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한전 직원 38명에 대해 징계를 요구하고 10명은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어 지난 7월 한전 감사실도 자체적으로 태양광 발전사업 연계업무 특정감사를 벌여 비리를 저지른 한전 직원 11명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한전 직원들은 허위로 전기를 신청하거나 부하 직원에게 부당한 업무 지시로 태양광발전소 공사비를 면탈했다.

경북지역본부 영주지사에서 태양광발전소 연계공사를 담당한 D씨는 2013년 9월 장인의 단상(220V) 농사용 전력 공급방식을 태양광발전소에 필요한 삼상(330V)으로 변경해줬다. 상급자의 결재를 받고 배전공사까지 마쳤다. 얼마 후 D씨의 장모 명의로 태양광발전소가 설치됐다. D씨는 이미 장인이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기 위해 전력 방식을 변경하려는 정황을 알고 있었다. 태양광발전소에 이용할 목적으로 전력공급 방식을 바꾸면 사업자가 공사비를 부담해야 하므로 미리 손을 쓴 것이다. D씨의 장모는 태양광발전소 접속 공사비의 일부만 납부해 금전적인 혜택을 봤다.
태양광발전소 담당 한전 직원 E씨도 발전소 부지를 매입하면서 토지소유자가 농사용 전력을 단상에서 삼상으로 변경하도록 했다. 허위로 전기사용신청을 유도한 셈이다. 이렇게 해서 E씨는 태양광발전소 공사비 1700만원을 덜 내 한전에 손해를 끼쳤다.

한전 직원 상당수가 태양광발전소를 ‘황금알을 낳는 부업’이나 가족의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전 전남 장성지사에서 연계업무를 담당한 직원 F씨는 2013년 아들과 배우자 명의로 태양광발전소 2개를 손쉽게 설치 운영했다. 이처럼 비리 연루 직원 대부분은 연계공사 담당자들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이들 임직원은 직무 외의 영리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허가 없이 자기사업을 하면 안 된다는 취업규칙(11조)을 위반했다.

일부 한전 직원들은 자신의 가족이 태양광발전소를 직접 운영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경북지역본부 G씨는 사업자로부터 태양광발전소 부지를 소개받고 한전과 시공계약을 맺었다. 이후 금융권에서 대출받아 자금을 마련해 태양광발전소 사업을 했다.

나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