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선 한국 해운
‘초대형 선박 20척 사라’ 대출 지원
구조조정·정상화엔 큰 도움 안 돼
회계보고 “2022년까지 자본잠식”
“고강도 자구책 나온 뒤 지원해야”
삼일회계법인이 지난 9월 작성한 현대상선 실사보고서는 산업은행이 2022년까지 6조706억원 규모 지원을 결정한 근거가 됐다. 실사 결과 현대상선은 2022년까지 최악의 경우 6조3723억원의 자금 부족이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정부가 6조원대 자금을 지원하면 나머지 부족분은 스스로 돈을 벌어 극복하라는 의미다. 문제는 이번 실사도 상황을 낙관적으로 전망하다 보니 현재 계획된 6조원보다 더 많은 혈세가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삼일회계법인은 보고서에서 “화물주 네트워크와 해외 영업망, 영업 전략 등 전략적인 부분에 대한 검증은 추정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돈을 어디서 어떻게 벌어들일 것인가가 사실상 실사에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총 47개 노선 중 16개가 적자인 현대상선의 영업력을 고려하면 실사 결과가 낙관적 전망을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글로벌 해운 전문 분석기관들도 한국 정부의 현대상선 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올해 초 부산시가 씨인텔·드류리 등 글로벌 해운시장 분석기관에 의뢰한 자문 보고서를 입수한 결과 이들 기관은 “현대상선이 지속 가능한 경쟁력 확보 방안을 찾지 못하면 정부 지원에 기반한 대규모 선박 확충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현대상선이 초대형 선박 20척을 갖추도록 대출금 형태로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경쟁 해운사들도 초대형 선박을 확충하고 았어 현대상선의 대형 선박 확대 전략만으로는 정상화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4월 수출 주도형 한국 경제 특성상 원양 국적 해운사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해운업 재건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 계획대로라면 현대상선의 정부 의존도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안영균 해양수산개발원 전문연구원은 “기업의 고강도 자구책이 나온 뒤 정부의 정상화를 위한 지원이 뒷받침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관계 기관과 협의 중이어서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도년·김민중 기자 kim.don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