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해 비핵화 의향을 내세우며 대화에 나서면서도 뒤에서는 핵·미사일 개발에 집중하며 전 세계를 기만해왔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이 12일 공개한 연례보고서는 지난 1년여에 걸쳐 요란했던 북핵 협상 기류를 뒤집을 수 있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더욱이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안보리(安保理) 15개 이사국 전체의 승인을 받아 발표됐다.
우선, 북한이 기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온전히 유지한 것은 물론이고,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우라늄 채광과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 구매에 집중했음이 드러났다. 겉으론 핵을 내려놓고 경제에 주력하겠다고 했지만, 한순간도 그럴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셈이다. 그리고 제재를 피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대담하게 불법 활동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보리 결의 제2397호에 따라 정제유 수입이 연간 50만 배럴로 제한되자 총 148차례의 선박 환적을 통해 정제유 밀수에 나섰다. 50척 이상의 선박, 160개 회사가 연루돼 조사중이라고 한다. 또, 해상 환적에 중국의 위챗, 블록체인 기술 등 첨단 기법을 동원해 제재를 회피했고, 사이버 해킹 수법으로 약 6500억 원을 가로채기도 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이젠 제재를 피하기 위해 민간 시설이나 국가 기간시설까지 동원하고 있음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평양 순안공항은 발사대와 보관 갱도 등이 갖춰진 미사일 시설이고, 남포항은 수중 송유관까지 갖춰진 원유 밀매 기지가 됐다는 것이다. 안보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용차까지 제재 위반 사례로 적시했다. 김 위원장이 타는 메르세데스-벤츠 리무진과 렉서스 LX 570 등의 구입 경위 설명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안보리는 이런 시설들에 대한 제재 추가의 필요성까지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 가면’을 쓴 채 대화에 나섰지만, 이제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전 세계를 속이고 있었음이 유엔 보고서로 확인됐다.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지금 제재를 완화한다면 북한에 대량파괴무기(WMD) 보조금을 주자는 얘기와 같다고 했다. 제재 완화를 할 때라고 역설한 문재인 정부도, 이를 지지한 국민도 지난 1년 완전히 속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