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국’ 일본의 예상치 못한 일격에 우리가 취약한 소재ㆍ부품ㆍ장비(소부장) 분야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민ㆍ관은 늦게나마 약점을 깨닫고 경쟁력 키우기에 나섰다. ‘장기전’의 초입에 접어든 일본 수출 규제 조치의 여파와 향후 과제를 짚었다.
실제 피해 없어도 불확실성 ‘먹구름’
산업부는 10일 “생산에 실제 피해를 보았다고 보고한 사례도 없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정부 인식이 다소 안이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7일 일본 수출 규제와 관련해“3개 품목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 그리고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한 조치 등이 직접 한국 경제에 가져온 피해는 하나도 확인된 바 없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8일 “정부ㆍ기업이 신속하고 전방위적으로 대응해 지금까지 대체로 잘 대처해 왔다”며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된다면 우리 경제 체질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 목소리는 다르다. 급한 불은 껐을지 몰라도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불확실성 때문이다. 국내 5대 그룹의 한 임원은 “기업인이 가장 싫어하는 건 불확실성인데 지금은 불확실성이 겹겹”이라고 말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위태위태하게 공정을 유지하는 상황인데, 마치 탈(脫) 일본에 성공했다는 식으로 알려진 측면이 있다”며 “안정적으로 사업을 끌어가기엔 여전히 소재 공급망이 부실하다”고 털어놨다.
김도연 전 포스텍 총장(현 서울대 명예교수)은 “이른바 ‘히든 챔피언’으로 불리는 강소기업이 전 세계 3000개에 이르는 데 독일에만 1300개고 일본이 220개, 한국은 22개”라며 “한국은 특히 중소기업의 소부장 경쟁력이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거래처를 확인하러 일본을 급히 방문한 한 중소기업 대표는 “단시간에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열등감을 안고 돌아왔다”며 “일본이 마음먹고 우리를 규제하려 들면 '거리'가 차고 넘친다”고 말했다.
민ㆍ관 총력 대응 나섰지만, 외교로 풀어야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보다 기민하게 대응에 나서는 민간, 특히 대기업이 활발히 뛰는 만큼 정부가 중소기업까지 소부장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규제 걸림돌은 치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글로벌 공급 체인망의 핵심인 일본으로부터 모든 소재를 국산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외교 갈등에서 불거진 문제인 만큼 정부가 외교로 푸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