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고홍재 씨(61)는 명예퇴직 후 부동산 사업을 하는 아내를 돕기 위해 공인중개사 시험에 도전하고 있다. 인터넷 강의로 수개월 공부했지만 1차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학원을 찾았다.고씨는 "아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다보니 문제가 생기는 사례가 많았다. 이제 퇴직도 했으니 자격증을 따서 아내 사업을 도우려 한다"고 말했다. 박경주 씨(58)는 "사업을 20년 동안 해왔는데 피치 못할 이유로 접게 됐다"며 "장기적으로 전망이 좋은 건 공인중개사라고 생각해 1인 창업을 꿈꾸며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동산값이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치솟으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래도 노후 생계 걱정은 덜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에서다. 평균 매매가가 16억원인 강남구 아파트 한 채만 거래를 성사시켜도 공인중개사는 1000만원 이상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하고 부동산 경기에 따른 부침이 있겠지만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공인중개사 시험 응시자는 2014년 12만890명에서 2018년 21만8614명으로 최근 5년 새 두 배가량 증가했다. 평생 갱신 없이 유지되고, 1인 창업이 비교적 쉽기 때문에 2017년 이후 해마다 공인중개사 시험에 20만명 이상이 몰리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대학 수능시험을 빼면 단일 자격시험 중 공인중개사 시험 응시생이 가장 많다.
3040 직장인 중에도 미래를 위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 27일 서울 종로 에듀윌공인중개사학원에서 만난 이윤성 씨(42)는 시내버스 운전기사다. 이씨는 "회사를 그만두면 갈 곳이 없어지니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 미래를 준비하고 싶다"며 "자격증이 있으면 든든하고 안정적인 기분이 들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가였던 이 모씨(37)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공인중개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그는 "아무래도 예술 분야는 평생 소득이 보장되지 않다보니 도전하게 됐다"며 "이제 막 공부를 시작했는데 사례나 판례가 나오는 게 재미있고 적성에 맞는다"고 말했다.
2030 응시자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20대 응시자는 2015년 1만3928명에서 2019년 2만469명으로 부쩍 증가했다. 유튜브에서는 `군대에서 3개월 만에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한 후기` 등 공인중개사에 도전한 20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에듀윌공인중개사학원 관계자는 "종전에는 40대와 50대가 많았는데 요즘엔 20대 등 젊은 층 수강생이 많이 늘었다"며 "취업난 여파도 있고 직장인 중 은행원이나 세무사 일을 하는 분들이 부동산 세법을 공부할 겸 자격증을 따러 온다"고 설명했다.
전업주부와 경력 단절 여성도 공인중개사 자격증에 많이 도전한다. 박소향 씨(50)는 "주부지만 공인중개사 자격증은 공부를 하면 딸 수 있을 것 같아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창업 목적이 아니라 부동산시장을 공부하기 위해 자격증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이 시험에 몰리면서 공인중개사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2019년 1월부터 10월까지 개업한 공인중개업소는 1199곳인 반면 폐업한 곳은 1232곳으로 폐업이 개업보다 많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은 충분히 포화 상태"라며 "자격증을 딴 누적 인원은 45만명인데 중개업을 하는 사람은 10만여 명으로 35만명이 자격증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윤균 기자 / 김금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