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 만난 사람]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이사회 제프리 존스 회장

2020. 2. 19. 01:19C.E.O 경영 자료


[매경이 만난 사람]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이사회 제프리 존스 회장

"일하고 싶어도 주52시간…`저녁은 있지만 밥없는 삶` 될수도"

기업하다 문제되면 CEO 처벌

외국기업이 한국 꺼리는 이유

과태료 부과할 일도 검찰나서

과거 한국은 가난해도 `희망`

지금은 과거 잘못만 따져

미래 불안하니 출산율도↓

현금 나눠주는 복지는 한계

인프라 투자로 고용창출 등

재정, 생산적으로 지출해야

기업이 없으면 노조도 없어

노사 서로 양보할 지점 찾아야

송민근 기자

입력 : 2020.02.18 17:19:24 수정 : 2020.02.18 23:5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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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김대영 경제부장

"한국을 사랑하는 천생 `한국 사람`이라고 써주세요."

신문에 본인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 제프리 존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이사회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국`보다는 `우리나라`라는 단어를 썼다. 한국을 사랑해서 한국에 정착한 그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과거보다 훨씬 잘살게 됐지만 옛날만큼 희망을 노래하거나 미래를 꿈꾸는 사회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갈수록 많은 국민이 `헬조선`이나 `한국 탈출`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국이 이룬 놀라운 발전을 언급하면서 한국은 여전히 매력적인 나라이고 희망이 많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존스 회장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한국과 미국에서 삶을 비교한다면.

▷미국에서는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다른 사람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입든, 어떤 것을 먹든, 무슨 행동을 하든 말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다른 사람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 두 번째로 남이 잘되면 배 아파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도 질투하지만 한국이 더 심한 것 같다.

―질투가 때로는 발전의 동력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질투가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다른 사람에 대한 질투가 지나치면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한 과도한 처벌이 많아진다. 지금은 정보기술(IT) 산업을 비롯해 모든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다. 과거에 부당했거나 억울했던 일은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이를 지혜롭게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상대편에 대한 복수와 사법 권력 의존도는 어떤 관계인가.

▷전 세계에서 한국만큼 검찰 조사가 언론에 많이 등장하는 나라는 없다. 사실 검찰청에 계신 분들을 위로하고 싶다. 일이 너무 많다. 한국 법과 제도를 보면 법 위반이 생길 때 행정 과태료보다 형사 책임이 많다. 문제가 생기면 검찰청에 가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행정 처분이 별로 없어서 모든 문제를 검찰이 판단해야 한다.

―외국인들은 이를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나라(한국)에 들어온 외국계 기업 CEO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이 형사 책임이다. 대표이사는 근로기준법, 환경 관련법, 세법 등 과도한 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 구속에 대한 걱정이 늘 머리 한쪽을 짓누를 정도라고 한다.

―잘못하지 않으면 구속될 염려가 없는데.

▷일부러 나쁜 짓을 하는 사업가는 많지 않다. 불법에 대한 처벌은 과태료로도 충분하다. 이렇게 하면 검찰이 책임을 검증할 필요가 줄어드니까 집중된 권한도 분산할 수 있다. 많은 과태료를 물린다면 기업도 이를 지킬 유인이 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 때 이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무부 중심의 위원회(TF)를 만들어 추진한 적이 있는데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한국 노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노조는 당연히 조합원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기업 또한 다를 바가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대화하지 않고 장외 투쟁에만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이 없으면 노조도 없다. 노조와 기업이 서로 양보할 지점을 찾아야 한다.

―그런 사례가 있는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미국에서도 한국과 비슷한 기업―노조 갈등이 격렬했다. 당시 대통령이 직접 기업과 노조를 설득했고, 기업과 노조가 서로 필요한 부분을 양보했다. 결국 일자리도 늘어났고 노동자들 월급도 올라갔다.

―최근 한국 사회를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나.

▷한국민이 예전보다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1971년 처음 한국에 왔다.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90달러였다. 하루 1달러도 못 벌었던 셈이다. 그러나 가난하더라도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있었다. 정치인도, 기업도, 모든 국민이 더 잘살 거라는 희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내일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란 기대가 사라졌다는 말인가.

▷그 결과가 저출산율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으니 아이를 낳지 않게 됐다. 아이를 낳지 않게 된 것은 현상이고, 이를 고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별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희망을 잃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과거에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데 에너지를 다 쏟은 것이 원인일 수 있다. 잘못을 교정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잘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상을 줘야 한다. 잘하는 사람을 칭찬하고 격려해줘야 한다. 지금은 사회에 긍정적인 에너지와 희망이 필요하다.

―4월 총선이 다가오는데 그런 희망을 제시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는 것이 목표다. 표를 얻고 싶어하는 자체를 문제라고 할 순 없다. 다만 표를 얻는 방법이 문제다. 득표를 위한 정치를 하기보다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정치인이 많았으면 한다.

―미래를 위한 정치란 무엇인가.

▷혁신이 필요할 때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 과정에 수반되는 불편함마저도 설득해야 한다. 우리가 공유하는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며 그 필요성을 설득하고, 그 과정마저 함께 가자고 해야 한다.

―재정 지출을 늘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복지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우리나라와 미국을 포함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통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사회에서 경쟁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복지 지출은 필요하다. 하지만 어디에 지출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다를 수 있다. 인프라 투자를 통해 수년 동안 일자리를 만드는 등 생산적인 방향으로 지출해야 한다. 단순히 돈을 나눠주는 방식은 한계가 분명하다.

―돈을 나눠주는 게 안 되면 저임금 노동자를 위해서 어떤 정책을 펴야 하나.

▷예를 들어 근로시간 단축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책이면서도 저임금 노동 측면을 고려하면 부정적인 면도 있다. `저녁이 있지만 저녁밥이 없는 삶`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근로시간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떤가.

▷미국은 평균 40시간 일한다. 한국 근로시간이 긴 것은 사실이며 개선이 필요한 것도 맞는다. 다만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주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일하고 싶은 사람은 더 일하게 하고,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이를 강요할 때는 내부고발제도 등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맞는다.

韓, 장기적 관점서 국익 최우선시 하는 외교전략 펴야

―최근의 한국 외교전략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안타까운 면이 보인다. 모든 것을 발표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몰라도 되지만 내 눈에는 걱정스러운 면이 자꾸 보인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면 외교 마찰이 생길 수 있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면서 다른 나라의 기분이 나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다만 외교란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모든 나라는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한국도 한국의 국익을 위하면 된다.

―상대가 미국이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나.

▷미국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중국, 북한, 일본과의 관계 모두 그렇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외교부가 우리나라 국익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다른 나라가 왈가왈부하는 것에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높아서 외교가 매우 중요하다. 미국과의 통상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를 비롯해 통상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의 통상 안보를 해친다고 판단되면 수입량 제한, 고율 관세 부과 등을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음).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가 무역확장법 232조에 의한 자동차 관세를 물지 않게 된 것은 아주 잘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암참도 많은 역할을 했다고 본다. 암참이 양국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 제프리 존스 회장은…

△1952년생 △1971년 모르몬교 선교사로 첫 방한 △1980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현재) △1998년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 △2000년 미래동반자재단 이사장(현재) △2003년 외국인 최초 규제개혁위원 △2004년 포스코 및 두산 사외이사 △2015년 재단법인 한국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 회장(현재)

[정리 = 송민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