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 강제수사” 잇딴 촉구에 법조계 “이 판국에 정치적 술수쓰나”

2020. 3. 2. 17:16C.E.O 경영 자료

“신천지 강제수사” 잇딴 촉구에 법조계 “이 판국에 정치적 술수쓰나”

입력 2020.03.02 15:31 | 수정 2020.03.02 15:35

방역당국 "강제수사, 오히려 숨어버려 역효과 우려"
秋 법무 "고발·수사의뢰 없어도 압수수색하라" 지시
윤석열 검찰총장 "방역이 우선…신중하라" 다시 당부
박원순 살인죄 고발하고... 최문순은 강제수사 촉구
법조계 "지금은 국민 생명 보호하는 방역이 최우선"

서울시는 지난 1일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과 고위 간부들을 살인죄, 상해죄 및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연합뉴스
서울시는 지난 1일 신천지 이만희 총회장과 고위 간부들을 살인죄, 상해죄 및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연합뉴스
여권에서 우한 코로나(코로나19) 확산의 주범으로 '신천지'를 꼽고, 이들에 대한 강제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검찰을 지휘하는 추미애 법무장관은 "강제수사에 착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여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신천지에 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방역당국은 강제수사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방역이 최우선이어야 할 시점에 선출·임명직들이 정치적 셈법에 따라 수를 쓰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검찰 개혁' 명분으로 직접수사 축소를 줄곧 강조해 온 여권이 정작 정부 책임을 덜기 위해 검찰을 동원하려 든다는 것이다.

'신천지 강제수사'론에 불을 붙인 것은 추미애 법무장관이다. 추 장관은 지난 28일 "보건당국의 역학조사에 대해 의도적·조직적 거부·방해·회피 등 불법사례가 발생할 경우 고발이나 수사의뢰가 없더라도 압수 수색을 비롯한 강제수사에 착수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지자체 등의 필요에 쫓아 검찰이 선제적으로 신천지를 직접수사하라는 주문이다.

여권의 검찰 압박은 계속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천지 교주) 이만희 총회장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등으로 형사고발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윤석열 검찰총장께 요청한다"며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진원지의 책임자 이만희 총회장을 체포하는 것이 지금 검찰이 해야할 역할"이라고 썼다. 서울시는 이날 밤 서울중앙지검에 이만희 총회장과 신천지 고위 간부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다. 여당 소속인 최문순 강원도지사도 "공세적으로 사법체계가 개입해야 코로나 사태를 신속하게 제압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방역당국은 신천지에 대한 강제수사에 부정적이다. 현 시점에서의 강제수사가 도리어 방역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2일 정례브리핑에서 "정부의 강압적인 조치들로 인해 신천지 신자들이 음성적으로 숨거나 (밝혀야 할 내용을) 밝히지 않는 움직임이 확산될 경우 오히려 방역에 있어 긍정적이지 않은 부분도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신천지 강제수사의 명분 중 하나인 신도 명단 확보와 관련해서도 "신천지가 제공한 자료와 지방자치단체 서너곳의 자료를 정리·비교해보니, 기준의 차이가 있어 그렇지 대체적으로 신천지 측이 제공한 정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왼쪽부터) 추미애 법무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최문순 강원도지사./연합뉴스
(왼쪽부터) 추미애 법무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최문순 강원도지사./연합뉴스
방역당국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검찰도 이 같은 방역당국의 판단을 존중해 압수 수색 등 강제수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방역 활동을 돕는 차원의 검찰권을 행사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반면 '정치인' 출신의 장관이나 지자체장이 검찰에 강제수사를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박원순 시장이 이만희 총회장 등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로 고발한 것을 놓고 비판이 거세다.

미필적 고의는 '결과가 발생할 것을 알고도 행위를 저지른 것'을 의미한다. 대법원 판례는 "결과 발생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있음은 물론 결과 발생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천지 신도가 우한 코로나의 '수퍼 전파자'라고 하더라도, 이만희 총회장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의도성이 입증돼야 한다. 우한 코로나를 확산시키라거나, 방역당국의 검사 등에 협조하지 말라는 취지로 지시한 내용이 증거로 확보돼야 한다. 검찰 안팎에서는 "(범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관련자 진술이나 메시지 내역 등이 있어야 한다. 증거 확보는 물론 법리적으로 혐의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이창수)에 배당했다. 다만 당장 강제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검찰 관계자도 "수사 일정이나 계획은 해당 부서에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을 아꼈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불기소나 무혐의 처분을 하려고 해도 일단 일선 부서에 사건을 배당하고 검토하는 절차는 필요하다"며 "당장 압수 수색 등을 실시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벽이 많다"고 했다.

추 장관과 박 시장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검찰 수사를 통해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을 해소하려는 전형적인 정치적 행위"라고 지적한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세월호 사건 때 구원파 유병언을 수사로 몰아갔던 것처럼, 정치권은 항상 자기들 입장이 곤란하거나 위기에 몰리면 검찰수사를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는 수를 쓴다"면서 "지금은 무엇보다 방역이 최우선이어야 할 시점이지 않느냐. 이 판국에 정치인들이 국민 생명을 지키는 일보다 정치적 위기 돌파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울 뿐"이라고 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우한 코로나 확산의 책임을 돌릴 '제물'이 필요한 것"이라며 "검찰 직접수사를 대폭 줄이자고 주장하던 이들이 우한 코로나와 신천지 앞에서는 정반대의 태도로 검찰 등을 떠미는 것을 보면 실소가 터진다"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의 권경애 변호사도 박 시장을 겨냥, 자신의 페이스북에 "감염병 재난 정국에서 튀어보려는 정치인들의 별별 공포스런 쇼맨십이 난무한다"며 "과잉정치는 이 사태의 책임을 지울 희생양을 찾는 현대판 마녀사냥식 폭력에 가깝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02/20200302029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