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엔 한마디 못하고, 100國한테 당하는 외교부… 일본에만 맞대응

2020. 3. 6. 16:07이슈 뉴스스크랩

[우한 코로나 확산]

강경화 "방역능력 없는 나라가 제한" 발언 하루만에 호주도 단행
전날보다 5개국 또 늘어… 외교부, 日 입국제한 보도 보고 알아
康 "상황 좀 지나면 상대국들의 조치 풀릴 것" 여전히 낙관


우리 정부는 '입국 전면 거부'에 가까운 일본 정부의 조치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5일 오후 4시 무렵 일본발 보도를 접한 뒤에야 상황 파악에 나선 외교부는 밤늦게 주한 일본 총괄공사를 불러 항의하고, '맞불 조치'를 논의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이 조치가 확정되면 우한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우리 정부가 입국 제한을 가하는 첫 번째 사례가 된다. 지난달 25일부터 한국발 여행객을 강제 격리하는 등 한국인 입국 제한에 앞장선 중국에 대해선 여전히 손을 놓고 있다.

◇지지율 급락 아베, 한국에 화풀이

일본 정부는 이날 조치에 대해 "우한 코로나가 일본에 더 확산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아베 내각의 위기감이 그 배경이라는 분석이 많다. 도쿄 총리 관저 주변에서 나오는 정보를 종합하면, 아베 내각은 애초 우한 코로나 사태가 이 정도로 심각하게 전개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달 우한 코로나 집단 감염이 발생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 대해 어설픈 '해상 봉쇄' 정책으로 대응, 국내외 여론의 따가운 질타를 받았다. 여기에 느슨한 초기 방역으로 감염 환자가 급증하며 여론 악화에 기름을 부었다. 아베 내각의 위기감이 극에 달했고, 이것이 이날 조치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각종 스캔들까지 겹쳐 아베 총리 지지율은 30%대 중반까지 곤두박질친 상황이다.

아베 총리가 이달 중순까지 우한 코로나 확산세를 꺾지 못할 경우, 도쿄올림픽이 취소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아베 총리는 올림픽이 취소될 경우 최대 2조6000억엔(약 28조6000억원)의 피해를 보는 것은 물론, 자신의 '명예로운 퇴진'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가에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4월 국빈 방일이 무산된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 나온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아베 총리로선 더 이상 (시 주석의 방일을 위해) 중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며 "징용, 수출 규제 등으로 갈등 중인 한국은 애당초 배려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日엔 '맞불', 中엔 "제한 안 해"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에서 오는 외국인에 대한 입국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호주 도착 전 14일 이내에 한국, 중국 본토, 이란에 머문 외국인(영주권자 제외)은 호주에 입국할 수 없다. 호주는 코로나 사망자가 100여명으로 한국의 세 배인 이탈리아에 대해서는 입국 금지를 하지 않았다. 호주 정부는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국 여행 경보도 상향했다. 대구·청도는 3단계 '여행 재고'에서 최고 단계인 4단계 '여행 금지'로, 그 외 한국 지역은 2단계 '여행 주의'에서 3단계로 각각 상향했다. 호주는 교민이 10만명에 이르고, 연간 25만명이 찾는 나라다.

전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한국에 빗장을 거는 나라가 급증한 데 대해 "방역 능력이 없는 국가가 입국 금지라는 투박한 조치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의료 선진국인 일본·호주마저 '노 코리아' 대열에 동참하며 하루 만에 무색해졌다. 전직 외교부 관리는 "강 장관 발언은 말단 외교관도 입에 담기 민망한 비외교적 언사"라며 "안이한 상황 인식을 그대로 보여줬다"고 했다.

강 장관은 이날 오전에도 "상황이 좀 지나면 상대국들의 조치들이 많이 풀리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신천지 빼고는 잘 관리되고 있단 점을 외국도 알게 될 것"이란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 현재 한국발 여행객의 입국을 제한·금지한 국가는 총 100국으로 전날보다 5국 늘었다. 사태 초기 발원지인 중국에 대한 입국 금지를 주저하다 최악의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많다.

야당과 일부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대(對)중국 입국 금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는 "중국 지방정부의 조치에 맞대응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도쿄=이하원 특파원] [노석조 기자 stonebird@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