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적 목적’이 ‘과학적 위기관리’에 앞서… 정권 겨누는 칼 될 수도

2020. 3. 12. 15:23C.E.O 경영 자료

‘정략적 목적’이 ‘과학적 위기관리’에 앞서… 정권 겨누는 칼 될 수도

■ ‘코로나 사태’ 정부대응의 후유증

‘내부 희생양’ 만들기로 극심한 사회분열 초래… 치유 어려운 후유증 남겨

‘입국제한’中엔 관대 · 日엔 상응조치 ‘외교적 부담’될 것…포퓰리즘, 국가경제에 毒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로 확산 중인 가운데 한국도 직격탄을 맞았다. 확진자 증가 추세가 완화되기는 했으나 이미 정치·경제·사회·국제관계 등에서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 더 큰 걱정은 코로나19 사태로 각 분야에 깊숙이 파급된 후유증 극복과 향후 국정 운영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재난 상황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전략적 위기관리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통치자는 때로 권력 유지를 위해 종종 외부의 적을 만드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마키아벨리, ‘군주론’). 하지만 이는 위기 상황이 지나간 후에 대외 관계 수행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특히 권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내부 희생양을 만들 때 이는 사회 분열의 씨앗이 되며 거꾸로 정권을 겨누는 칼이 될 수도 있다.

◇재난 관리의 전략적 판단 착오

코로나19 사태에서 문재인 정부가 드러낸 취약점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국가재난 관리의 전략적 판단 착오이다. 국가적 위기 상황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재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적절한 위기극복 방향과 정책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위기 상황에 대한 과학적 해결 방안을 각급 행정관청과 국민에게 명확히 전달해 정부의 정책을 인지하고 따르도록 하는 것이 전략적 위기관리 의 핵심이다. 이때 정부의 메시지는 간단명료하게 전달돼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전염병 초기 단계에서 코로나19의 감염이 진정되는 듯 보이자, 성급하게 위기관리보다 정치적 의제에 전략적 우선순위를 부여했다. 문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를 걸어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며, 그의 방한을 염두에 둔 언급을 한 것은 위기관리의 큰 패착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메시지는 결국 행정관청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이 바이러스 전염에 대한 긴장과 경계의 끈을 풀게 만들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속수무책으로 사람들에게 전파·확산하는 와중에 진행된 청와대의 ‘기생충 짜파구리 파티’는 한편의 희비극(喜悲劇)과도 같았다. 전염병으로 인한 위기관리는 정치가 아닌 과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는 대목이다.

◇외교적 부담을 남긴 한·일 관계

전염병 감염을 막기 위해 중국 입국자를 격리할 것인지를 놓고 국내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인 입국자를 격리하는 국가들이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우리가 끝까지 문을 열어둔 중국에서도 한국인 입국자들이 격리됐으며, 이후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한 국가가 100개국을 넘어섰다. 코로나19의 유입을 막기 위해서는 조기에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제한해야 한다는 전문가 조언을 묵살했던 정부로서는 이 같은 국제적 대응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급기야 일본은 3월 9일을 기점으로 한국으로부터 입국하는 사람을 격리하고 비자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한국과 사전 교감이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한국 국민에 대한 입국 제한을 발표한 일본 정부의 태도도 큰 문제이나, 중국에 대해서는 비굴할 정도로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우리 정부가 일본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상응 조치를 취한 것에서 정책적 일관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해외여행 제한과 같은 엄격한 수단이 필요하다면 도입해야 마땅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전염병 대책을 위한 국제공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한·일 양국 정부가 불필요한 공방으로 외교적 갈등을 일으킨 것은 이번 사태 이후로도 상당한 외교적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내부 희생양 삼기, 사회 분열의 씨앗

이번 코로나19 전염병 사태는 신천지 대구교회와 청도 대남병원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했는데, 사회적 취약계층 가운데 전염병 확진자와 사망자가 많았던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이 질병 감염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는 냉혹한 사회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또 좁은 공간에 밀집한 상태에서 예배를 보는 신천지교회의 관행도 전염병 확산과 연관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천지교회의 전염병 확산을 막지 못한 것도 근본적으로는 제때 감염원 차단을 하지 못해 초기 방역에 실패한 정부의 책임이다. 이로 인한 전염병 사태를 감내해야 하는 대구시민들의 황당함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친여권에서 신천지교회가 전염병 사태의 주범인 것처럼 몰아가는 건 사회 분열을 방치하는 것이다. 신천지교회 인사를 살인죄로 고발하고, “코로나 사태는 신천지 사태이자 대구 사태”라고 언급하는가 하면, “대구는 손절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이 같은 정치 행위는 남미에서 횡행했던 대중영합주의 정권의 선동정치를 떠올리게 한다. 과거 아르헨티나는 페론과 같은 정치지도자 한 사람을 떠받들며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여러 복잡한 문제에 대한 책임을 특정 집단에 돌려 그들을 고립시키고 공격하면서 정치적 지지를 동원했다. 프랑스의 장마리 르펜은 이민자들을 사회악으로 몰아 경제 불황의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이들 국가가 대중영합주의 늪에서 오래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내부의 적을 만드는 선동정치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벗어나기 어려운 사회 분열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경제 포퓰리즘이라는 독배

코로나19 확산으로 실물경제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민생이 어려워지면서 경제 포퓰리즘도 기승을 부렸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전 국민에게 100만 원씩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했다. 정부 재정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일뿐더러, 우리의 사회·경제 규범과 제도에 부합하기 어려운 의견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모두 대중영합주의의 또 다른 퍼즐 조각이다. 나라 재정을 생각하기보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당장의 달콤한 약속을 하는 것은 대중영합주의 선동정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코로나19 사태가 극심한 상황에서 정치적 득실에 골몰하는 정치인들의 태도에 실망을 감추기 어려울 것이다. 남미나 유럽 일부 사례에서 보듯 경제 포퓰리즘은 민생을 위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경제를 좀 먹고 국가를 위기로 몰아가는 독배가 된다.

이미 미국과 유럽의 증시에서 주가가 크게 폭락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의 경제 위기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대두되는 형국이다. 경제침체를 앞두고 수요 감소가 예견되자 국제유가가 20% 이상 폭락했는데 우리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엄중한 상황 가운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책임진 경제부총리는 향후 경제 위기를 극복할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마스크 대란에 휩쓸려 그 존재감마저 없어진 지 오래다.

◇신뢰 잃은 정부의 미래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회통합을 꾀하고 꼬인 외교관계를 복원하며 수렁에 빠진 경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대책 마련을 시작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신뢰를 잃는다면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도 대한민국이 온전히 회복되기를 기대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세줄 요약

전략적 판단착오 : 문재인 정부는 전염병 초기 단계에서 성급하게 재난 위기관리보다 시진핑 방한이라는 정치적 의제에 전략적 우선순위를 부여함으로써 화를 자초함. 이는 위기관리의 큰 패착임. 전염병 위기관리는 정치가 아닌 과학으로 접근해야 함.

불필요한 분열 조장 : 권력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내부 희생양을 만들면 사회 분열의 씨앗이 되어 정권을 겨누는 칼이 될 수도 있음. 일본과의 불필요한 공방으로 외교적 갈등을 일으킨 것 역시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외관계에서 상당한 외교적 부담이 될 것.

경제포퓰리즘 :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는 ‘재난기본소득’ 주장은 대중영합주의의 또 다른 퍼즐 조각임. 경제 포퓰리즘은 경제를 좀먹는 독배로 작용함.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도 대한민국이 온전히 회복되기를 기대하기가 어려워짐.

■ 용어 설명

‘전략적 위기관리’란 자연재해나 테러 등 위기 상황에서 정치적 목적을 앞세우지 않고, 과학적·객관적 분석에 기초해 위기를 선제적으로 예방하며 국민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부의 조직적 위기관리.

‘대중영합주의’는 국가 지도자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경제 규범과 제도에 부합한 정책보다는 대중에 영합하는 인기 위주 정책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행위 혹은 정치운동. 포퓰리즘으로 번역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