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협회장 작심발언 "이대로면 오랑캐처럼 전염병 찾아온다"

2020. 3. 18. 20:21C.E.O 경영 자료


보건협회장 작심발언 "이대로면 오랑캐처럼 전염병 찾아온다"

기사입력 2020.03.18. 오후 6:01 최종수정 2020.03.18. 오후 6:13 기사원문 스크랩

대한보건협회 박병주 회장 인터뷰

개혁 안하면 전염병 무한 찾아올 것

국가안보회의급 국가보건회의 필요

역량 집중할 위기관리체계·기금도

민간협력 통해 전문가풀 활용하고

전문부서 보건부 논의 시작할 때

고위험군·확산집단 지침 만들고

의료전달체계와 공공의료 개선

치료제 연내, 백신개발은 1년 뒤

방역 잔불관리…방심·자만 금물

인포데믹 보건교육으로 풀어가야

박병주 대한보건협회 회장 겸 서울대의대 교수가 17일 서울 중구 서소문 중앙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때 그렇게 당하고도 지금까지 응급실 환자 분류 말고는 의료시스템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상황이라면 코로나19는 물론 또 다른 전염병이 와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질병관리본부와 의료진의 헌신과 국민의 인내에만 기댈 건가. 한국 보건의료를 개혁하지 않으면 전염병은 과거 오랑캐처럼 때만 되면 찾아와 국민을 괴롭히게 될 것이다. 이를 방치할 것인가. 지금이 개혁을 논의할 적기다.”

박병주(65) 대한보건협회 회장(서울대 의대 예방의학 교수)의 지적이다. 대한보건협회는 국민건강 증진과 삶의 질 개선을 연구하는 민간 보건단체다. 예방의학은 질병 관리와 건강증진을 위해 의학적·사회적·정책적 요인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박 회장은 코로나19 사태가 한국 보건의료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개혁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으로부터 코로나19 대응과 보건의료 개혁에 대해 들어봤다.

박병주 대한보건협회 회장 겸 서울대의대 교수가 17일 서울 중구 서소문 중앙일보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보건의료 분야에서 어떤 개혁이 가장 시급한가.

“한국 보건의료 역량을 집결해 전염병에 과학적·의학적으로 대응하는 방향으로 보건행정 개혁을 해야 한다. 국공립 병원과 지방자치단체 산하의 보건소 역량을 유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보건의료 집중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같은 국가보건회의(NHC: National Health Council)를 창설해 그 ‘컨트롤타워’로 삼아야 한다. 또 하나 필요한 게 ‘보건의료 위기관리 체계’다. 코로나19같은 보건 위기가 발생하면 공공조직을 총동원하는 것은 물론 민관 공조가 신속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보건위기 관리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기존 보건행정 조직이 민간의 숱한 전문가를 활용해 힘을 모아야 한다. 게다가 전염병 확산은 보건의료 문제를 넘어 재정과 경제활동, 그리고 민생 문제와 직결된다. 건강과 경제·사회 문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보건의료 위기관리 기금’을 만들어 보건 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료전달체계를 개혁하고 공공의료의 기반을 다져 전염병 같은 보건의료 비상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한 대학병원의 응급실 입구. 선별진료소가 설치돼 있다. 선별 진료소는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일반화했다. 신진호 기자

-보건의료 개혁을 통해 글로벌 전염병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이라도 고쳐 재발이라도 막아야 한다. 메르스 사태 이후 백서를 만들었지만 행정적인 부분에 그쳤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코로나 사태를 보면 글로벌 시대에 전염병이 빠른 속도로 오가는 게 이미 다반사다. 전염병 이동의 원천작인 차단은 불가능하다. 필요한 건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해서 피해와 혼란을 최소한도로 줄이는 일이다. 보건의료 개혁으로 탄탄한 조직과 시스템을 갖추면 전염병에 따른 국민건강 피해를 최소화하고 혼란과 소모적인 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연합뉴스]

-지난 메르스 사태 이후 질병관리본부는 수장이 차관급으로 승격됐다. 코로나19 사태에 질본으로 충분히 대응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질본의 전문적인 지식과 헌신을 높이 평가한다. 다만 예산권과 인사권까지 있었으면 더 잘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의 건강증진과 질병예방, 그리고 전염병 통제를 비롯한 공중보건 업무를 전담하는 여러 조직의 역량을 강화하고 수준 높은 국가 공중보건 시스템 구축을 위해 보건부를 따로 독립시키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여러 부처에 흩어진 관련 업무를 모아 집중시키는 것은 보건행정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 이득은 모두 국민이 보게 될 것이다.”

-이제 한국에선 코로나19 확진자가 두 자리 숫자로 잡혀가는 것 같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생물이 일으키는 전염병은 맨눈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진행되는 것은 서로 다를 수 있다. 감염성 질환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잔불이다. 언제 다시 불길이 치솟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야구와 마찬가지로 전염병도 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최종 종식 선언 때까지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 자신의 중간성과를 자랑하고 싶고, 남의 실수나 시행착오를 비난하고 싶어도 전염병 대응 평가는 마지막까지 유보해야 한다. 특히 입국자 조기차단의 효과와 책임소재를 포함한 각종 평가는 코로나19가 종식된 뒤에 치열하게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다.”

75명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발생한 대구 서구의 한사랑 요양병원. 대구=백경서 기자

-코로나19 확산을 잡기 위해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집단은 누구인가.

“치명률이 높은 고위험군과 확산위험이 큰 다중이용시설 이용자다. 이들에 대한 엄격한 감염관리지침과 행동수칙을 보건 당국이 마련해야 한다. 필요하면 민간의 지식과 정부의 행정기관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민관 협동 체제’를 가동해 수칙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방치해선 안 된다. 전염병 확산방지라는 공익을 위해 특별 조치가 필요하다.”

염색을 한 뒤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EPA=연합뉴스

-현재 방역 시스템에서 어떤 부분을 보강해야 할까?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11일 팬데믹(세계적 범유행)을 선언했다. 늦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일단 팬데믹 선언에 맞춰 우리도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신규 확진자가 주춤한다고 해서 절대 안심해선 안 된다. 전염병 관리에서 방심과 자만은 최대의 적이다. 팬데믹 선언에 맞춰 재유입 방지를 위한 검역강화와 입국 후 ‘자가진단 앱’을 이용한 추적관리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이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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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데 개발 상황은 어떤가.

“현재 상황을 보면 예방을 위한 백신보다 치료제가 더 빨리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백신은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데, 치료제는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들만 대상이기 때문이다. 3월 초 기존에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 중이던 렙데시비르를 코로나19 치료제로도 쓸 수 있는지를 알아볼 임상시험 허가가 나와 이미 진행 중이다. 백신은 미국과 독일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국제백신연구소. 최정동 기자

-개발에 얼마나 걸릴까.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은 우선 동물실험을 통해 걸러낸 것을 대상으로 사람에게 임상시험을 한다. 임상시험은 1상·2상·3상의 3단계로 이뤄지는데 1상은 인체 독성이 있는지를 살펴 통과되면 2상으로 넘어가 대사 등 약물 역학을 보면서 기형이나 암을 유발하는지를 확인한다. 3상에선 기대효과가 기존 제품보다 나은지를 확인해 통과되면 시장에 출시된다. 현재 임상시험 중인 치료제는 이전에 에볼라 치료제로 허가가 날 때 1·2상을 거쳤기 때문에 곧바로 3상에 들어갔다. 이르면 올해 안에 시장에 나올 가능성도 있다. 다만 코로나19 백신은 이제 1상에 들어가 건강한 자원자를 대상으로 독성을 확인하는 단계일 뿐이다.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다. 예방 접종을 하려면 적어도 1년이 걸린다. 섣부른 희망보다 차분히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시민들이 외출을 자제하며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18일 도매상이 밀집한 서울 동대문 시장 신발도매상가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상인은 "일반인은 둘째치고 소매상의 매출이 줄며 도매상을 찾는 상인들도 없다며 매장 방문객이 평소의 10% 수준에도 못 미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해 보건 당국은 무엇을 해야 할까?

“효과적인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민간에서 이뤄지는 걸 기다리지만 말고 이를 격려하고 필요한 행정적·조치를 신속하게 취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백신과 치료제는 유행이 끝나면 상업적인 가치가 떨어지는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인센티브를 주고 장기적인 이익을 보장해 백신 개발과 생산을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빌 게이츠 회장이 만든 ‘빌과 멜린다 재단’이 하는 일인데, 정부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 대란이 발생되고 있는 가운데 18일 오후 대전 동구 중앙시장 이벤트홀에서 동구자원봉사자들이 재봉틀을 이용, 면 마스크를 직접 제작하고 있다. 대전 동구는 직접 제작한 면 마스크 18만장을 구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프리랜서 김성태]

-마스크의 효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어 혼란이 가중됐다.

“효과적인 치료제와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감염예방 수단으로 마스크 착용은 의미가 있다. 감염자가 재채기 등으로 나오는 침이나 콧물에 바이러스가 묻어 주변에 전파되는 것을 막아준다. 한국에서 지나치게 민감하게 마스크에 매달리는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붐비는 지하철이나 만원 버스를 타야 하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건강한 사람이 한산한 거리를 지날 때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감염될 가능성이 상당히 낮으니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이나 유럽에선 마스크만으로 바이러스 전파를 완전히 차단하진 못한다는 이유로 이를 권장하지 않았다.”

중국은 신종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인구 1100만의 우한시를 완전 봉쇄하는 극약 처방으로 승기를 잡았다. [중국 바이두 캡처]

-코로나19가 팬데믹에 이른 이유를 어떻게 보나.

“우선 중국에서 초기 대응이 늦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넘도록 별다른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방치했다가 설날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우한을 봉쇄한 데서 보듯 초기대응이 지연된 게 기본적인 문제다. 그 부담이 고스란히 한국에 전가된 셈이다. 한국에선 취약자들이 많은 요양병원과 밀집해서 모이는 종교 단체 등에서 다량 감염자가 나온 게 다량 발생의 주요 원인이다. 이에 대한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 유럽은 다양한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이동제한의 효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원인과 결과를 추적하고 분석해 미래에 혼란을 막는 게 예방의학과 보건학, 역학의 과제다.”

-해외 유입 관리는 문제가 없었나.

“초기에 공항에서 위험지역에서 들어오는 입국자의 발열 검사를 열심히 하고 연락처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고전적인 방역 대책이었다. 문제는 코로나19의 무증상 전파 가능성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초기 해외 유입 차단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이다. 중국이 초기 대응에 실패한 상태에서 무조건적인 입국자 제한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성남 은혜의 강 교회,의 폐쇄회로 TV의 화면 캡처. 코로나19를 예방한다며 스프레이로 소금물을 신자들의 입 안에 분사하고 있다. 보건 교육이 제대로 이뤄졌으면 이런 황당한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진 =경기도 제공

-비과학적인 정보가 확산하는 인포데믹이 코로나19 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금물을 스프레이로 입에 뿌리는 황당한 행동이 집단감염을 만든 사례도 나왔다.

“정확한 정보를 판단할 수 있도록 국민 보건교육이 필요하다. 학교 교육과 사회교육을 모두 해야 한다. 정부가 위기상황에서 국민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도 보건교육은 필요하다.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보건교육을 의무 사안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전 지구가 고속으로 연결되는 시대에 전염병과 과학·의학적 지식을 국민이 숙지하고 손 씻기를 비롯한 위생 습관을 어려서부터 몸에 익히게 하는 것은 정부의 임무다. 보건교육을 하게 되면 현재 전국 지자체와 군대 등이 경쟁적으로 하는 거리 소독, 건물 외벽 소독, 드론 항공 소독이 바이러스 제거 효과가 없으며 의미 없는 전시행정임을 알게 된다. 기본 지식의 확대는 시민의식이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