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 23. 07:48ㆍC.E.O 경영 자료
한국 ‘제2의 중국’으로 만든 코로나19 방역 잘못 5
기사입력2020.03.22. 오전 10:02
[신동아]
“초기 정보전 패배가 재앙 불렀다”
●‘중국 괴질 폐렴’ 정보, 그 누구도 몰랐다
●확산 초기 중국발 입국 통제, 안 했다
●전문가 단체 권고, 무시했다
●성급하게 ‘일상 복귀’ 권고, 안이했다
●특정 집단 문제로 프레이밍, 환자 숨었다
●성급한 자화자찬 금물, 다가올 위험에 대비해야
프롤로그; 사태의 시작
3월 16일 0시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내 확진자 수는 8236명이다. 75명이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났다. 감염 확산과 중환자 사망은 현재진행형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3월 15일 오후 10시 기준 한국으로부터 온 사람의 입국을 막거나 입국 절차를 강화한 국가·지역은 모두 138곳이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환영받는 여권’으로 통하던 한국 여권을 들고는 이제 어느 한 곳도 마음 편히 못 가게 됐다.
그러나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3월 8일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대응이 다른 나라의 모범 사례이자 세계적인 표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튿날 문재인 대통령도 “우리가 현재 추세를 계속 이어나가 신규 확진자 수를 더 줄이고 안정 단계에 들어간다면 한국은 그야말로 코로나19 방역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를 중심으로 “미국 유럽이 한국의 방역 노하우를 알고 싶어 한다. 우리가 잘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잇달아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해외에서 한국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역설적으로 환자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한 감염내과 전문의 얘기다.
“해외에는 우리보다 대응을 잘해 환자 발생 자체가 적은 나라도 있다. 환자 수 폭증을 앞두고 있는 미국, 유럽은 이들을 참고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전면적 통행금지를 통해 위기를 타개한 중국 상황을 본뜨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민주주의 시스템 아래서 다수의 환자를 관리 중인 한국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많은 국민이 크고 작은 고통을 겪고 있다. 자영업 붕괴가 현실화하고 중소기업 종사자들이 고용 위기에 직면했다. 대구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병실이 없어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 2020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왜 한국은 중국, 이탈리아, 이란에 이어 코로나19 환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 나라가 됐을까. 그 과정을 돌아보고자 의료전문가 10명을 만났다. 다수가 “지금 시국에서 섣불리 얘기했다가 불안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는다”며 익명을 요구했다.
1 ‘우한 신종 폐렴’ 정보, 몰랐다
1월 8일, 코로나19 유사 증세를 보이는 의심 환자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확인됐다. 36세 중국인 여성으로 지난해 12월 13일부터 17일까지 중국 우한시를 방문한 사람이었다. 병원을 찾은 이 여성에게서 폐렴 소견을 확인한 의료진이 질병관리본부(질본)에 신고했다. 사흘 뒤, 질본은 바이러스 검사를 거쳐 이 환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질본은 당시 ‘우한폐렴’으로 불리던 신종 감염증의 바이러스 유전체 염기서열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시곗바늘을 좀 더 과거로 돌려보자. 지난해 12월 31일 중국은 세계보건기구(WHO)에 우한시에서 폐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같은 날 중국중앙방송(CCTV)에도 같은 내용의 보도가 나왔다. WHO는 1월 8일 그 원인이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종류의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것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신종코로나’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진 시점이다. 이튿날 중국 CCTV도 “전문가들이 1월 7일까지 진행한 초기 조사 분석 결과 환자 15명에게서 같은 종류의 신형 코로나바이러스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정보를 공식적으로 전달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첫 의심환자의 폐렴 원인체가 우한에서 유행하는 것과 동일한지 확인할 방법이 없자 질본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일단 의심환자를 대상으로 당시까지 알려진 온갖 유형의 코로나바이러스 진단 검사를 실시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문가들을 동원해 중국 내 정보망을 일일이 훑었다. 결국 푸단(復旦)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신종 바이러스’ 염기서열 정보를 찾아내 국내 첫 의심환자가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음을 최종 확인했다는 후문이다.
중국은 코로나19 유행 초기 이 질병이 사람 간에 전파될 수 있다는 정보조차 오랫동안 숨겼다. 후베이성 질병예방통제센터 연구진 등이 1월 30일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연구자들은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코로나19가 사람 간에 전염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는 감염병이 광범위하게 확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정보다. 하지만 중국 보건 당국은 관련 내용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우한시 위생건강위원회는 12월 31일, 1월 5일과 11일 세 차례에 걸쳐 “사람 간 전염이 발생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1월 16일이 돼서야 “증거는 없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다시 나흘 뒤인 1월 20일 중국에서 호흡기질환 분야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중난산(鐘南山) 원사가 “사람 간 전염이 확실하다”고 선언한 뒤 비로소 사람 간 전염이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실태를 확인하고 약 한 달 만의 일이다.
코로나19 유행 과정에서 이런 일은 수차례 반복됐다. 2월 중순 중국이 코로나19 진단 기준을 일방적으로 바꿨을 때도 국내외 연구진은 현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라 큰 혼란을 겪었다. 전문가들이 중국 내 인맥과 개별 접촉하고 관련 온라인 사이트 등을 뒤지며 조각난 정보를 맞춰야 했다. 한 전문가는 “중국을 중심으로 신종 감염병이 잇달아 유행하는 상황이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리나라는 언제고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지금은 중국이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지 않을 것을 상수로 두고, 이를 돌파할 방안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이 얘기는 2003년 사스와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때도 나왔다. 중국에 방역주재관을 배치해 감염병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유사 상황 발생 시 직접 정보를 수집·확인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실현되지 않았다. 질본은 코로나19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던 1월 23일에야 “교민 보호와 현지 상황 파악” 목적으로 역학조사관을 파견했다. 한 전문가는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중국에 주재관을 둔다고 들었다. 질본은 왜 안 되나. 이게 다 ‘감염병이 언제 생길지 모르는데 계속 예산을 쓸 수는 없지’ 하고 생각하는 안이함 때문”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보건 당국이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국경 통제 등 과감한 초기 대응을 통해 확산세를 초반에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보전쟁에서 패배한 대가가 지금의 국가적 재난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게 이 전문가 의견이다.
2015년 9월 메르스 유행이 일단락된 뒤 정부는 ‘메르스 백서’를 펴냈다. 당시 여러 문제점 가운데 첫 번째로 지적된 게 ‘해외 감염병에 대한 정보 분석 부재’였다. 정부가 이때 국가방역체계 개편 방안으로 처음 제시한 것도 ‘정보 역량 강화’다. 당시 정부는 ‘(감염병) 해외 발생 동향 감시 및 국내 정보 전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제 와 새삼 아프게 읽히는 대목이다.
2 중국발 입국금지, 안 했다
코로나19를 국내에 퍼뜨린 건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라고 보건 당국 수장이 밝혔다. 그의 의견과 무관하게 코로나19 유행의 출발점이 중국인 것은 분명하다. 1월 20일 발생한 우리나라 첫 확진자는 우한에서 입국한 중국인 여성이었다. 23일 우한에서 근무하다 입국한 한국인 남성이 두 번째 확진자로 판정됐다. 26일에는 국내 세 번째 확진자가 나왔다. 중국 우한에서 20일 귀국한 이 남성은 25일 증상 신고 때까지 다양한 곳을 돌아다녔다. 그와 접촉한 사람 중 5명이 추가로 코로나19 판정을 받았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처음 ‘중국발(發) 입국 금지’를 언급한 건 바로 이 무렵이다.
의협은 1월 26일 설 연휴 중에 이례적으로 긴급 담화를 냈다. 당시 정부에 요구한 내용은 이랬다.
△최근 2∼3주 내 중국 후베이성으로부터 입국한 입국자 명단을 파악해 소재와 증상 발생 여부를 전수조사하고 추적·관리해야 한다
△정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한 전면적인 입국금지 조치 등도 준비해야 한다
의협 관계자는 “그때 당장 중국인을 한국에 못 들어오게 하라는 내용이 결코 아니었다. 중국에서 입국하는 모든 사람에 대해 검역을 강화하라고 촉구했을 뿐이다. 그런데 정치권이 이것을 왜곡, 비판하면서 상황을 이상하게 끌고 갔다”고 꼬집었다.
당시 의협이 담화문 대상으로 삼은 건 정부와 국민 양쪽이었다. 이에 따라 담화문에는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 등 개인위생에 대한 정보가 들어갔다. “의료계는 코로나19 환자가 불이익이나 차별 없이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는 메시지도 담겼다.
그러나 1월 28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 담화에 대해 “어떤 의학적 판단을 떠나 정치적 판단을 대한의사협회, 특히 지도부가 하신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비판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근 의협 같은 경우 매우 정치적 단체가 돼 있다. 대표(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최대집 의협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반대 운동에 참여한 일이 있다. 하지만 1월 26일 담화는 개인 자격이 아니라 전문가 집단 대표로서 발표했다. 그것을 여당 실력자가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이후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정부와 의협의 엇박자가 본격화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여당이 ‘중국발 입국금지’ 요구를 ‘중국인 혐오 주장’으로 몰고 간 건 매우 부적절했다고 입을 모은다. 정은경 질본 본부장은 “위험 지역 입국자 규모를 줄이면 안전하다는 게 방역의 기본 원칙”(2월 1일)이라고 했다. “방역하는 입장에서는 중국이라는 고위험 지역의 입국자가 아무도 안 들어오는 게 가장 안전”(2월 4일)하다는 말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최근 감염병이 자주 유행하고, 세계적으로 인구이동이 매우 많다. 국경 차단을 검토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비상한 상황에는 비상하게 대응해야 하고, 코로나19는 분명 그럴 만한 위험을 가진 감염병이다. 의사단체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한 전면적인 입국금지 조치 등도 준비해야 한다’ 정도로 말한 걸 갖고 ‘정치행위를 하지 말라’고 하면, 대체 무슨 얘기를 듣겠다는 건가”라고 비판했다.
의협은 7번에 걸쳐 중국발 입국금지를 권고했다. 감염병 대응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들이 모인 대한감염학회 또한 같은 의견을 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앞의 전문가는 “정책 결정은 정부 몫이다. 전문가들이 충심으로 권고해도 수용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의견의 배후를 의심하고 왜곡하면서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건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3 전문가 단체 권고, 무시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전문가들은 정부의 방역감시망이 지나치게 좁다고 지적했다. 신종 감염병이 유행하면 질본은 감시와 대응을 위해 관리해야 할 대상을 특정해 ‘사례정의’를 발표한다. 1월 4일 질본이 내놓은 첫 코로나19 의심환자 정의는 ‘발열과 중증 호흡기증상(폐렴 등)이 있고 증상 발현 전 14일 이내 우한시 화난시장 방문자’였다.
이후 수차례 사례정의를 개정했지만 감시 대상 범위는 크게 확대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중국을 넘어 세계 각지로 확산하던 1월 중순에도 질본은 ‘중국 우한시 방문 이력’을 중요하게 여겼다. 일선 의료진은 “중국 여행을 다녀온 뒤 몸이 안 좋다. 코로나19 검사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들과 승강이하느라 애를 먹었다. 한 이비인후과 전문의 얘기다.
“환자 얘기를 들어보고 의심 정황이 있으면 코로나19 진단을 담당하는 보건소에 방문하도록 안내했다. 그런데 보건소에서는 ‘우한 안 다녀왔으면 검사할 필요 없다. 그냥 일반 병원에서 치료 받아라’ 하며 다시 돌려보냈다. 환자가 보면 병원과 보건소가 자기를 놓고 핑퐁 게임을 하는 거다. 그러니 버럭 화를 내고, 의사는 당황하는 일이 반복됐다.”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증세로 폐렴을 강조한 것도 현장 혼란을 부추겼다. 중소 의료기관 가운데는 폐렴 진단 장비를 갖추지 못한 곳이 상당수다. 한 의사는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는 환자도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못 받고 돌아왔다. 고열과 기침도 심했는데, 여행력이 없으니 괜찮다고 했다더라”며 혀를 찼다.
의사들은 정부를 향해 “호흡기 증세 환자를 방치하면 사회 전체가 위험해진다. 제발 제대로 된 지침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의협 관계자는 “이때 정부에 대상 지역을 넓히고 폐렴은 좀 빼달라는 의견을 얼마나 전달했는지 모른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침 변경 속도는 느렸고, 변화 폭도 의사들이 보기에 충분치 않았다.
1월 26일 질본이 뒤늦게 코로나19 의심 지역을 중국 전역으로 넓혔으나 이미 중국 밖을 다녀온 사람 중에서도 환자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2월 4일 확인된 16번 환자는 1월 중순 태국 여행을 다녀왔다. 이후 오한, 발열 등 증상이 나타나 1월 27일부터 병원 치료를 받았으나 중국 방문 이력이 없다는 이유로 관리 대상에서 빠졌다. 그는 15일간 일상생활을 했고, 그사이 밀접 접촉한 딸에게도 바이러스를 옮긴 걸로 확인됐다. 2월 20일 서울 종로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56번 환자는 2월 8일부터 몸에 이상을 느껴 선별진료소를 세 차례 방문했으나 매번 검사를 거부당했다. 질본은 2월 7일 사례정의에 ‘의사 소견에 따라 코로나19가 의심되는 자’를 넣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한동안 혼란이 이어졌다.
4 성급하게 ‘일상 복귀’ 권고, 안이했다
2월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와 관련해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계 간담회 자리에서다. 대통령은 “아직 국외 유입 등 긴장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지만 국내 방역 관리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단계로 들어선 것 같다”고 평했다. 당시 간담회 참석자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이었다는 후문이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신규 환자가 사흘째 나오지 않던 때다. 하지만 전문가 의견은 달랐다. 정은경 질본 본부장은 같은 날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아직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소강 국면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뒤늦게나마 방역 고삐를 조이려 했다.
바로 하루 전인 2월 12일에도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날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집단 행사를 전면 연기하거나 취소할 필요성은 낮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방역 조치를 충분히 병행하며 각종 행사를 추진할 것을 권한다”고 밝혔다. 반면 정은경 본부장은 같은 날 “아직 코로나19 관련 변곡점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때 코로나19에 대한 충분한 정보 없이 부적절한 메시지를 냈다고 지적한다. 채 일주일도 지나기 전인 2월 18일, 신천지대구교회에서 확진자가 발생하고 이것이 대규모 감염 확산으로 이어지면서 국내 코로나19 유행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여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부가 특정 종교집단에 의한 대규모 감염까지 예상하고 대응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항변했다. 청와대 관계자가 언론인 앞에서 “확진자의 상당 부분이, 어느 분들이 어떤 장소에서 전파됐는지 아실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서울 대형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런 정부 태도를 “무책임하다”고 꼬집었다.
“감염병이 유행할 때는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걸 막아야 한다. 좁고 공기 순환이 잘 안 되는 장소에 많은 사람이 모이면 바이러스가 퍼진다.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음식까지 나눠 먹으면 위험이 더 커진다. 최근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구로구 콜센터 환경도 신천지대구교회 환경과 사실상 동일하다. 2월 중순 정부가 ‘일상생활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내놓을 때 우리나라 곳곳엔 수백 수천 수만 개의 신천지대구교회 같은 공간이 있었다. ‘걱정 없이 집단 행사를 하라’고 해서 다들 평일에는 작은 공간에 모여 일하고, 주말이면 다닥다닥 모여 앉아 종교 생활을 했다. 그 결과 발생한 집단감염에 대해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하는 건 무책임하다.”
5 특정 집단 문제로 프레이밍, 환자 숨었다
신천지대구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확산하면서 신천지 특유의 폐쇄성과 은밀함이 사태를 악화시킨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신천지 신도들이 평소 자기 종교를 감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범여권 인사들이 앞다퉈 신천지 강제수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2월 28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일선 검찰청에 “당국 조사 방해나 거부 등 (신천지의) 불법행위가 있으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로 강력하게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3월 1일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을 체포해야 한다”며 이 총회장 등을 살인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신중할 것을 요구했다. 코로나19 감염자가 사회적 낙인을 두려워해 방역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바이러스가 더욱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신천지에 대한 강제수사 요구가 계속 이어지자 전문가 의견을 대변해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이 나섰다.
김 차관은 3월 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의 강압적 조치로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신자가 음성적으로 숨는 움직임이 확산할 경우 방역에 긍정적이지 않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신천지의) 방역 당국 협조에 차질이 있었다는 근거가 확인되는 시점까지는 신천지 측의 자발적 협조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신천지 측의 자료 누락이나 비협조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고도 강조했다.
중대본은 대구시가 신천지를 경찰에 고발한 2월 28일에도 검찰로부터 “신천지에 대한 강제수사 지원이 필요한가”라는 문의를 받고 “지금은 불필요하다”고 답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대구지검은 3월 2일 대구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신청한 신천지대구교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반려했다.
한 예방의학 전공 교수는 “바이러스는 수사관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감염자가 스스로 핍박을 받는다고 생각해 감염병 전파 등 돌출행동을 하면 사회가 훨씬 더 위험해진다. 정부 여당이 자꾸 신천지 얘기를 하는 건 사태 해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방역 당국은 3월 초 전국 요양병원 및 노인요양시설에 신천지 신도 및 교육생이 1400명가량 근무하고 있는 걸 확인했다. 3월 초 집단감염이 발생한 구로콜센터에도 신천지 신도가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시 발표에 따르면 1월 기준 전국 신천지 신도는 19만3953명이며, 이 중 신천지대구교회 소속 교인은 9007명이다. 드러나지 않은 인원이 더 있을 수도 있다. 사건 대응 초기, 이들이 숨어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데 대해 전문가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에필로그;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코로나19 유행은 현재 진행형이다. 위협은 점점 커지는 분위기다. 그런데 현장 의료진은 대부분 지쳤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감염내과 전문의 한 명은 1월 초 국내에 의심환자가 처음 발생한 뒤부터 한 번도 휴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병원 감염내과 전문의는 “매일 출근 일자와 퇴근 일자가 다르다. 아침에 나와 다음 날 새벽이 돼야 퇴근하는 일이 두 달째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둘 다 수도권 대형병원에서 근무한다. 대구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의료진 번아웃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의료진을 고통스럽게 하는 또 다른 문제는 장비 부족이다. 서울 한 대형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레지던트 시절 이후 처음으로 천 수술복을 입었다. 코로나19 대응 인력에게 주요 장비를 먼저 전달하다 보니 병원 환경이 수십 년 전 상황으로 돌아갔다”고 토로했다. 다른 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예전엔 병원에 마스크가 얼마든지 있었다. 수급이 어려워진 뒤에도 의사에게는 덴탈 마스크를 매일 한 장씩 지급했다. 3월 중순이 되니 그마저도 안 된다고 한다. 당일 환자 진료가 없는 의사에게는 못 준다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최근 각 병원 감염내과 교수들은 일회용 장비 재사용 지침을 만드느라 분주하다는 얘기가 돈다. 원래는 한 번 쓰고 폐기해야 할 장비를 다시 쓸 수밖에 없게 된 병원이 ‘어떻게 해야 그나마 안전이 보장될지 방법을 찾아내라’고 요구해서다. 한 교수는 “이랬다가 만에 하나 감염 사고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을 담당자가 질 거다. 도망칠 방법이 없으니 스트레스가 많다”고 토로했다.
장비 부족으로 인한 위험은 환자에게도 곧 닥칠 판이다.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 병원 중환자실은 거의 항상 환자로 가득 차 있다. 인공호흡기 사용률도 매우 높다. 간이 장비 한두 대를 제외하면 남는 게 없다시피 하다. 다른 병원 상황도 비슷한 것으로 안다. 의료수가 체계상 중환자실 병상, 장비를 늘릴수록 병원에 손해다. 대부분 딱 필요한 만큼만 운용한다. 이런 환경에서 갑자기 호흡기 증세를 가진 환자가 쏟아져 들어오면 의료진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평소 같으면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을 환자가 제대로 된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생명을 잃게 될 수 있다.”
코로나19는 곧 사라지지 않는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기까지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대응 태세를 총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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