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代議)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를 조롱하는 문재인 정권의 행태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4·15 총선을 눈앞에 두고 범(汎)여권이 비례대표용으로 급조한 더불어시민당·열린민주당 등은 적나라한 예 중의 하나다. 군소 정당이 의석을 더 얻을 수 있게 하는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한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여당(與黨)은 제1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바위 거래’를 통해 지난해 말 국회에서 강행 처리할 당시에도 국민을 속였다. 새로운보수당·미래를향한전진당 등과 합쳐 미래통합당으로 재출범하기 전의 자유한국당이 끝내 선거법 개악을 막지 못하면 비례 위성정당 창당이 불가피한 고육책이라고 예고했을 때,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비례 위성정당은 꼼수 중의 꼼수로, 한국 정치사에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통합당의 비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창당 후인 지난 2월 4일과 13일엔 통합당 대표와 미래한국당 대표·사무총장을 정당법·선거법 위반과 선거 방해 혐의로 고발도 했다.
하지만 겉과 속이 달랐다. 선거법 협상을 주도했던 민주당 ‘5인’이 지난 2월 26일 비례 위성정당 창당을 은밀하게 논의한 사실도 보도됐다. 오간 대화는 “우리가 왜 비례 정당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간판(명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명분은 만들면 되지 않느냐. 겁먹을 필요 없다” “(문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 않겠나” “(선거법을 협상하던) 그때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입법이 걸려 있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등이다. 비례대표 의석 확대를 미끼로 군소 정당을 끌어들여 공수처법은 제정했으니, 이제 통합당을 뒤좇아 비례 위성정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취지다.
결국 민주당은 범여권 비례 정당인 정치개혁연합 창당에 참여를 추진하다가 성에 차지 않아, 친문(親文)·친조국 성향이 더 확연한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었다. 공동대표 2명부터 “국민이 조 전 법무부 장관과 가족에게 큰 빚을 졌다”고 한 인사들이다. 공천관리위원장도 조 전 장관 지지 성명을 냈던 사람이다. 공천 또한 군소 정당 출신은 극소수로 구색만 갖추고 사실상 친문·친조국 일색으로 했다. 선거의 본질까지 왜곡해 전대미문의 해괴한 현실을 자초했다.
민주당이 “총선 후 최소한 연대의 대상” “문 정부와 민주당을 참칭 말라” 등으로 헛갈리게 말하지만, 실질은 같은 묶음인 열린민주당은 대놓고 ‘조국 수호’를 외친다. 순위 8번으로 공천된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작년 조국 사태는 검찰의 쿠데타다. (검찰과) 한판 뜰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온갖 부정 혐의의 조 전 장관 수사를 지휘한 윤석열 검찰총장, 윤대진 사법연수원 부원장, 여환섭 대구지검장,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 등 14명을 ‘쿠데타 세력’으로 지목했다. “‘조’를 생각하면 중종 때 개혁을 추진하다 모함을 당해 기묘사화의 피해자가 된 조광조 선생이 떠오르고, ‘대윤’ ‘소윤’ 하면 말 그대로 권력을 남용하며 세도를 부리던 윤임·윤원형이 생각난다”고도 했다. ‘조’는 조 전 장관, ‘대윤’ ‘소윤’은 각각 윤 총장과 윤 부원장을 말한다.
순위 2번 공천자로, 조 전 장관 아들의 인턴 활동 허위 증명서 발급 혐의로 검찰이 기소한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황 전 국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며 “이제 둘이서 작전에 들어간다”고 했다. “이런 사람이 대거 입성하면 제21대 국회는 ‘조빠 천국’이 될 것”이라는 보수 야권의 개탄과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검찰 위의 검찰’로 고위공직자 생살여탈권을 행사할 공수처 수장도 친문·친조국 인사를 문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도록 국회를 구성하려는 저의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 배경이기도 하다.
4·15 총선을 여당의 ‘사기극’이라는 말까지 나올 지경으로 만든 책임의 뿌리는 문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 위헌성 지적에도 아랑곳없이 공수처 설치에 집착한 문 대통령 뜻을 좇아, 여당은 ‘괴물 선거법’ 거래로 선거를 농락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선 “유무죄 결과와 무관하게 조 전 장관이 지금까지 겪은 고초만으로도 저는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희대의 파렴치범’이라는 사회적 지탄 대상인 피의자의 ‘홍위병’을 여권이 앞다퉈 자처하는 기막힌 현상까지 불렀다. 그것만으로도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오명(汚名)을 남길 것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