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은 탄식했다..."이 나라 늙은이들은 개자식을 낳았구나"

2020. 4. 20. 06:15C.E.O 경영 자료

王은 탄식했다..."이 나라 늙은이들은 개자식을 낳았구나"

기사입력 2020.04.19. 오후 3:52 최종수정 2020.04.19. 오후 5:53 기사원문 스크랩

[연극 리뷰] 고선웅 연출 '리어외전'

셰익스피어 비극 '리어왕' 비틀기

"얼빠진 노인네들 세상 뒤엎겠다"는

새 세대와 구세대 갈등 신랄하게 풍자

모두가 모두 향해 총칼 겨누는 희비극

연출가 고선웅의 연극을 보고 있으면, 형태를 추정할 수 없는 뼈대에 별 계획없는 듯 무심히 점토를 치덕치덕 던지듯 바르는 조각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그 점토 한 조각 한 조각에는 다 의미가 있다. 그 조각마다 극공작소 마방진의 잘 훈련된 배우들의 힘이 실려, 관객은 속절없이 울고 웃는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다 무너지고 만다. 어느새 걸진 한 판 굿, 투박한 듯 세련된 예술작품을 경험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이 긴장과 이완의 카타르시스야말로 극공작소 마방진과 ‘고선웅표 연극’이 이미 도달한, 또 스스로 계속 스탠더드를 높여가고 있는 어떤 ‘경지’라 해야 할 것이다.

리어왕은 세 딸들의 '효심 대결'로 영토를 나눠주겠다고 했다가, 유일하게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막내딸을 내치고 입에 발린 거짓말을 하는 맏딸과 둘째딸에게 배신당하는 비극적 결과를 맞는다.

19일 막을 내리는 ‘리어외전’은 다시 한 번 그 ‘경지’를 확인시켜줬다. 고선웅 연출가는 특히 고전을 비틀어 재해석할 때, 늘 동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극 속으로 ‘훅’ 하고 끌어들인다. 셰익스피어 원작에서 리어왕은 맏딸과 둘째딸의 입에 발린 거짓말에 속아, 유일하게 진심으로 아버지를 사랑한 막내딸 코딜리어(이지현)를 내친 뒤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이 연극 ‘리어외전’에서 리어왕과 세 딸 및 사위들의 관계는 유산 다툼과 부모 봉양이라는 가족의 문제였다가,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도시를 재건한 기성세대와 그 세상을 뒤집으려는 새로운 새대의 갈등을 지나, 세상을 바꾸는 것은 총칼이냐 정신이냐의 형이상학적 주제로 도약한다. 삶의 공(空)함, 선악 구분의 모호함, 애정과 집착의 덧없음을 슬퍼하다가, 종국에는 ‘그럼에도 서로 사랑하자’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북받쳐 오른다. 희귀한 경험이다.

극의 대사와 상황이 현실과 겹쳐질 때면 등골이 서늘하다. 영토와 권력을 분배받은 뒤 리어왕을 내친 둘째 사위 콘월은, 리어왕을 복위시키려던 충신 글로스터 백작의 두 눈을 뽑아버린다. “이런 얼빠진 노인네들이 언제까지나 부려먹고 위세 부리는 꼴사나운 고집을 보다보다 못 참고 나서는 거”라고, “악역을 맡아서라도 판을 뒤집고, 낡은 역사를 청산하고 나의 후손들을 위해 과감하게 새 시대를 열겠다”고 울부짖는다. 그러나 “후손들의 시대가 되었을 때 노땅선배들처럼 그렇게 변질되지는 않겠다”는 그 다짐도 냉소의 대상이다. 리어왕을 지키려다 죽어가는 또 다른 시종이 말한다. “내가 장담컨데, 너는 네가 말하는 노땅선배들보다 더 더럽게 변질될 거다!”

리어왕(하성광)은 볼 수 없는 사랑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군주, 패륜과 배신에 좌절한 힘없는 늙은이를 거쳐 다시 백성들을 일으켜세우는 위엄있는 왕으로 돌아온다. /극공작소 마방진

딸들에게 버림받은 뒤 유기노인 수용소로 흘러든 리어왕의 좌절과 분노도 만만치 않다. 꽃다운 시절 전쟁을 겪고 폐허로 무너져 내린 도시를 재건하느라 중년을 보내고 세상을 살만하게 바꾸고 나니 결국은 한 칸의 오두막도 없이 닭장의 쪽방에 갇혀 보내야 하는 말년. “내 나라가 이런 지경이었나? 아, 이 나라의 늙은이들은 모두가 개자식들만 낳았구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주역 ‘정영’으로 친숙한 하성광 배우는 트로트 가락에 인생무상을 노래하는 힘없는 늙은이와, 군중의 분노를 점화하고 폭발시키는 위엄있는 노(老)군주 사이를 숨 한 번 몰아쉬지 않고 넘나든다. 경이로운 배우다.

쥐었으면 펴야 하고, 이화(異化)가 있어야 동화(同化)도 있다는 것이 연출가 고선웅의 지론. 그래서 그의 연극의 관객은 늘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는 기묘한 경험 속으로 던져진다. 두 눈이 뽑힌 글로스터 백작은 ‘뽕짝’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며 노래한다. ‘어디 가나 늙다리 노인, 눈깔도 없는데…’. 욕망과 배신의 난장판이 펼쳐진 무대 앞으로, 철없는 예술가였던 맏사위 알바니 공작은 느닷없이 성화(聖畵) 속 예수 같은 외투를 걸치고 나타나 오체투지(五體投地)로 무대를 가로지른다.

리어왕을 지키려다 두 눈이 뽑히는 형벌을 받은 글로스터 공작(유병훈)은 '뽕짝'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며 노래한다. "어디 가나 늙다리 노인, 눈깔도 없는데...". /극공작소 마방진

유일하게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나 그걸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쳐졌던 셋째딸 코델리어를 연기한 이지현 배우는 신기(神氣)어린 통곡 소리로 관객의 가슴을 후벼파는 신기(神技)를 보여준다. 차마 진실을 말했던 딸을 바라볼 수 없어 아버지 리어가 그 눈을 피할 때, 코델리어의 통곡 소리가 아버지와 무력한 기성세대를 가둔 안개섬을 서글프게 울린다. 무릎을 망치로 치면 튀어오르듯, 뜨거운 쇠에 가져간 손을 화들짝 떼내듯, 무조건 반사 반응처럼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이 곡성(哭聲), 감히 천하제일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욕심에 눈 먼 자 실제로 눈이 멀고, 모두가 모두를 향해 총칼을 겨누는 이 희비극의 끝에 이르러, 늙은 리어의 곁을 오래 지켰던 흰 거북이는 말한다. “아! 술래잡기 놀이 끝나고 보니, 울 일도 기뻐할 일도 아니었네.” 엇갈리는 슬픔과 기쁨, 희망과 절망, 애정과 증오의 파도 위에 어지럽게 흔들리던 이야기는 마침내 짤막한 깨달음의 결말에 다다른다. 코로나 시대의 두려움을 뚫고 극장에 왔던 관객은 행복했다. 그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하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가장 연극적인 연극의 힘이었다.

[이태훈 기자 libr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