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의 경고장 "대통령, 공수처장 임명권 갖는게 가장 위험"

2020. 4. 25. 09:23C.E.O 경영 자료

최장집의 경고장 "대통령, 공수처장 임명권 갖는게 가장 위험"

기사입력 2020.04.25. 오전 5:02 기사원문 스크랩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가 24일 “이미 통과된 법이긴 하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방송에서 열린 ‘대한민국 민주주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한국정치학회-국회미래연구원 주최 특별학술세미나) 토론회에서다.

최 교수는 “이미 대통령 권력이 과도하게 확장돼있고, 지금도 권한 행사를 자제하는 규범이 없는데 또다시 강력한 법을 새로 만드는 건 위험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최 교수는 발제문에서 “공수처법이 대통령의 전제정(専制政)화를 가능케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통령 권력 초(超)집중화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방송에서 진행된 정치세미나에 참석한 고려대 최장집 명예교수. 임현동 기자

최 교수는 대통령의 권력 초(超)집중화가 한국 민주주의의 각종 문제를 잉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걸 하나 꼽으라면 정치 양극화”라며 “이는 대통령의 권력 초집중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통령을 향한 권력의 집중화는 입법ㆍ행정ㆍ사법 삼권분립 균형의 원리를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것이 다시 행정부 권력의 확장, 국가권력의 강화와 병행되면서 시민사회의 다원주의를 막는다”는 게 최 교수의 해석이다.

그러면서 그는 문재인 정부가 대통령으로 권력이 집중될 수 있는 여러 조건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먼저 “60~70년대 권위주의 산업화 과정에서 역사적 조건으로 주어진 ‘강한 국가’라는 한국적 특성이 존재했고, 경제운영 방식에 있어서 국가 영역의 확장되며 사적 부문에 국가가 역할을 할 수 있는 중간지대가 넓어졌다”는 점을 선천적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같은 조건 아래서 “시민 의사를 대표하는 결사체인 정당의 약화와 행정부 권력 강화가 동시에 진행됐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시민사회의 정치화 역시 대통령 권력 강화의 한 원인으로 봤다. “시민운동이 과거 민주화의 원동력이긴 했지만, 민주화가 제도로서 안정화된 이후 시민사회의 역할이 과도하게 정치화했다. 정치권력과 결탁하며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결과까지도 초래할 수 있다”며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약화돼왔다”고 진단했다.

운동론적 민주주의관이 '적폐청산'으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방송에서 진행된 정치세미나에 참석한 고려대 고세훈, 최장집 명예교수, 연세대 김세중 명예교수, 장동진 교수(왼쪽부터). 임현동 기자

최 교수는 대통령 권력 집중화가 촛불집회 이후 집권한 386세대의 ‘운동론적 민주주의관’과 맞물려 정치 극단화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봤다. “운동론적 민주주의관은 운동이 주도해 민주주의를 쟁취하면서, 제도 보다는 운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각이다. 촛불집회 이후 직접민주주의적 시각을 통해 이해갈등을 조정해야 한다는 시각을 가지면서 포퓰리즘과 연결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주장이다. 반면 “사회적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문화는 약해지고 있다”고 봤다. 진영 정치가 강화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란 설명이다.

‘적폐청산’은 이같은 현 정부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최 교수는 설명했다. 최 교수는 “촛불집회 이후 성립된 문재인 정부의 개혁을 총괄하는 ‘적폐청산’이란 모토는 굉장히 잘못된 방향”이라며 “비민주적 언어, 심하게 말하면 반민주적 언어. 전체주의적 언어”라고 비판했다. “적폐를 말하고 생각하는 게 개혁자의 자의적인 기준을 통할 뿐 범위나 대상이 광범위하고 경계도 분명히 말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이유다. 그러면서 “권력자의 자의적인 권력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것 이외에 다른 게 아니라는 생각”이라며 “이 말 자체가 갈등과 적대를 심화, 확대할 수밖에 없는 말”이라고 했다.

공수처법, 끓는 물 속의 개구리

이같은 국정기조 속에서 공수처가 만들어지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미국과 유럽 등 외국에서도 민주주의의 위기 얘기를 많이 한다. 대부분 민주주의 국가들이 법을 하나씩 고쳐나가며 대통령ㆍ총리 등 집행부 권력이 너무 강화되는 상황과 동반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를 ‘끓는 물 속의 개구리’(개구리가 펄펄 끓는 물 안에 들어가면 깜짝 놀라 뛰쳐나오지만, 조금씩 따뜻해져 끓게 되는 물에 들어가도 위험한 줄 모르다가 죽게 된다는 얘기)에 비유하며 “대통령이 공수처장 임명권을 갖는 게 가장 위험하다. 슈퍼 검찰을 만들어서 모든 고위공직자를 심사의 대상으로 할 때 여야 쟁투는 법을 둘러싼 투쟁으로 전선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에 참여한 다른 교수들도 대통령 권력집중과 정치갈등 극단화에 대해 우려했다. 김세중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적폐청산을 2~3년 했는데 어리석은 방향”이라며 “한국사회가 그렇게 모든 걸 청산해야 될 정도로 사악하고 이룬 게 없고 불의에 가득한 사회가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장동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민주적 결정(다수결)을 할 때 반대당의 지지자도 수긍할 수 있게 하는 게 출발점이다. 그래야 좀 더 건전한, 내구성 있는 민주정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4ㆍ15 총선을 압승한 여당에 대한 조언도 있었다. 이날 토론회 사회를 맡은 고세훈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명예교수는 “4ㆍ15 총선 이후 보수진영이 극도의 빈사 상태에 빠지면서 집권 여당의 역사적 책임은 그만큼 무거워졌다”며 “온전한 하나를 위해 아홉을 야당에 내줄 수 있는 비장함이 절실하다. 독단이 만든 선한 체제보다 지루한 과정을 거친 미진한 합의가 한국 민주주의에 더 긍정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