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25. 21:14ㆍC.E.O 경영 자료
8월 23일 서울 서대문 미근동 경찰청 청장실에서 윤희근 신임 경찰청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지호 기자
윤희근(54) 신임 경찰청장이 지난 23일 본지 인터뷰에서 “불법에 대해서는 상황이 되면 공권력 투입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독(dock) 점거, 하이트진로 서울 강남 본사 및 강원 공장 점거 농성 등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산업 현장의 불법 행위가 잇따르는 것과 관련해서다. 윤 청장은 지난 10일 취임한 직후 ‘공권력 투입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청장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는지와 무관하게 정당한 법 집행을 하기 위한 기준을 만들어두겠다는 취지다.
특히 그는 “‘떼법’이 아니라 준법이 이득인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떼를 써서 뜻을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생기는 어느 정도의 불법은 관행적으로 묵인해 왔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집회·시위 소음으로 인한 시민 피해가 갈수록 커지는 점과 관련해 “소음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고물가·고환율 속 서민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만큼, 서민들을 울리는 사기 범죄를 ‘경제적 살인’으로 규정하고 집중 단속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아래는 윤희근 청장과의 일문일답.
-서울 한복판 하이트진로 본사에서 노조원들이 시너를 가진 채 옥상을 점거하고 있다. 공권력 투입을 검토하나.
“공권력은 법과 원칙을 지켜나가는 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수단이지만 마지막 수단이기도 하다. 불법 상황이 심각 단계가 되면 당연히 주저 없이 원칙대로 투입한다. 다만 불법의 정도나, 불법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는 게 기본 방침이다.”
-구체적인 판단 기준은 뭔가.
“사실 공권력을 언제 투입해야 할지 명문화된 기준이 없다. 그래서 불법 집회나 시설 점거 등 상황별로 어느 정도 단계가 되었을 때 공권력 개입이 필요한지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공권력이 언제 개입할지 시스템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정부인지, 어떤 단체가 관련돼 있는지를 떠나서 기준에 따라 경찰 주도로 공권력을 행사하게 될 거다. 매뉴얼에는 기업이나 시민들의 피해 정도, 안전 사고 발생 가능성, 대화 해결 가능성 등을 평가 요소로 넣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각종 집회·시위로 피로감을 느끼는 시민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이 2014년에 마지막으로 개정이 됐다. 그 후 8년이 지나며 집회·시위의 양상과 내용이 크게 바뀌었다. 시위를 하지도 않으면서 장송곡을 하루 종일 틀어 놓는 경우도 있다. 시위자들의 주장도 중요하지만 선량한 시민들이 그로 인해 피해를 보면 안 된다. 특히 소음의 경우, 집시법 기준이 일반 시민들이 느끼기에 느슨한 게 사실이다. 특히 주택가나 학교 등 평온이 유지돼야 할 장소가 있다. 심야 시간도 마찬가지다. 소음 기준을 강화하는 논의를 집중적으로 하려고 한다.”
-집회 시위 정보를 감지하는 경찰의 정보력이 떨어져, 사전에 불법 행위를 차단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 정부에서 정보 경찰이 폐지에 준할 정도의 개혁 작업이 진행이 됐다. 정보 경찰이 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한정해놨고 범위를 일탈하면 법적으로 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정보 경찰이 위축됐다고 느끼고 있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는 과감하게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독려하겠다.”
-청장으로서 꼭 하고 싶은 일은.
“사기 범죄를 크게 줄이고 싶다. 흉기로 사람을 해치는 것만 살인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악질적인 사기도 한 가족의 인생을 파멸시키는 ‘경제적 살인’이다. 악성 사기꾼에 대해서 신상 정보 공개를 추진하겠다. 특히 선수(악성 사기꾼)들은 적당히 처벌받고 나와서 또 사기를 친다. 신상 공개로 이런 피해를 줄여보겠다. ‘사기정보분석원’이란 전문 기관을 새로 만들 생각이다. 금융위원회의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하는 것처럼, 시시각각 진화하는 사기 범죄 수법을 분석하는 것이다.”
-보이스피싱도 심각하다.
“‘아빠 나 액정 깨졌어.’라는 문자를 경찰청장인 나도 여러 번 받았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이 아무리 수사를 해도 잡고 보면 대부분이 심부름하는 중간책 정도다. 범죄를 설계하는 우두머리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보이스피싱에도 위장수사 도입을 추진하겠다. 경찰이 하위 조직원이나 중간 전달책으로 들어가서 수사를 하다보면 총책을 검거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나.”
-행안장관에 가려 경찰청장이 안 보인다는 얘기가 있다.
“역대 어느 청장보다 소신 있게 일하는 청장이 되겠다. (새로 출범한 행정안전부 경찰국과 관련해) 경찰 인사(人事)에서 행안부 장관에게 청장이 휘둘릴 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이게 기우라는 걸 알 수 있게 법적, 제도적으로 보장된 청장 권한을 최대한 행사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겠다.”
-요즘 경찰관 처우에 대한 불만이 많다고 한다.
“30여년 경찰 생활하면서 갖고 있는 철학은 ‘경찰관이 행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경찰의 기본급을 공공안전직무(공안직)를 맡는 공무원 수준으로 높이는 걸 제일 먼저 추진하려고 한다. 경찰은 실질적으로는 공안직에 해당하는 업무를 하고 있지만 정작 혜택은 받지 못하고 있다. 경찰공무원 기본급과 공안직 공무원 기본급이 평균 3%대 차이가 난다. 경찰청장 직을 걸고서라도 관철을 시키겠다. 최근 중앙경찰학교를 방문했던 대통령도 공개적으로 공안직 수준으로 기본급 향상을 언급을 해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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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적체가 심해 역량 있는 경찰이 조직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경찰 조직 내에서 고위직이라고 하는 총경 이상의 인원이 전체 조직 구성원의 0.5%밖에 안 된다. 여기에 경찰은 또 일정 기간 승진하지 못하고 동일한 계급에 머물러 있을 경우 퇴직해야 하는 ‘계급 정년 제도’도 있다. 결국 승진이 안 되면 역량과 의지가 있어도 50대 초반에 강제로 옷 벗고 나가야 된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경찰이 승진에 너무 신경을 쓰게 된다.
그래서 복수직급제를 도입하려고 한다. 복수직급제는 한 보직을 여러 계급이 맡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경찰청을 예로 들면 기획계장, 경무계장, 복지정책계장 등의 계장급 자리는 현재 경정만 맡는다. 하지만 경정보다 한 단계 윗계급인 총경도 원래 계장 보직에서 일하게 해주면, 총경 자리가 늘어나는 효과가 생긴다. 이런 식으로 매년 정해진 승진 인원을 조금씩 늘릴 수 있어 인사 적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거론돼 왔다. 이밖에 계급 정년에 대한 개선도 고민하고 있다.”
-정말 순경으로 경찰을 시작한 사람들이 고위직으로 더 많이 갈 수 있게 되나
“순경으로 들어와서 시작하는 경찰이 최소한 경정 계급까지는 빨리 갈 수 있게 해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대상은 아니다. 능력이 있고 열심히 준비하는 순경 출신 경찰관에게 빨리 갈 수 있는 트랙을 만들어주자는 구상이다. 각 계급 별로 승진하기 위해 필요한 ‘승진 소요 최저 연수’가 있다. 경감과 경정은 총경으로 승진하기까지 최소 3년을, 총경은 4년을 일해야 하는 식이다. 일반 순경으로 시작하는 경찰관들에게 이 최저 연수를 차감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경찰대나 경위 공채 출신들은 역차별이라고 느낀다.
“그런 우려를 알고 있다. 청장으로서 독단적으로 하겠다는 건 아니다. 충분한 논의를 거칠 생각이다.”
-경찰대 개혁을 넘어 폐지 얘기도 나온다.
“경찰대 출신으로 말하기가 조심스러운 주제다. 지난 40년 경찰대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경찰대 출신이 우리 조직 또는 국가의 발전을 위해 어느 정도 공헌을 한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동시에 일각에서는 경찰대 출신이 과도한 특혜를 받는다거나 ‘자기들만의 리그’를 꾸린다고 보는 비판도 나온다. 군 전환 복무를 폐지했고 입학 연령 제한을 완화하는 등의 개선을 해왔다. 다만 경찰대 폐지는 다른 문제다. 좋은 인력이 경찰 조직에 유입될 수 있는 대안을 만들고 나서 고민해야 한다.”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부서 기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기피하는 부서가 생긴다. 최근에는 수사부서 그중에서도 경제팀과 사이버팀이 가장 힘들다고 하고 기피한다. 청장 입장에서는 이 기능에 파격적으로 인센티브를 주겠다. 다른 기능에서 불공평하다고 불만이 있어도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청장 입장에서는 하겠다는 거다. 소위 ‘떠나는 수사’에서 ‘돌아오는 수사’로 만들겠다.”
-수당이나 포상을 준다는 건가.
“포상이나 특진, 승진에서의 가점 등 청장 권한으로 조직 내에서 해결 할 수 있는 부분은 당장 하반기부터 시행한다. 사건 수사비 증액, 수사 수당 신설 등도 고려하고 있다. 이는 국회나 기획재정부 등과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당장 수사관 1인당 약 13만 7000원인 월 사건 수사비를 인당 2만원 정도씩 높이려고 한다. 연간 90억 정도를 필요로 한다. 청장으로서 열심히 뛰고 있고 일정 부분 성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근본적으로 인력 증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있다.
“인사혁신처,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와 협의 중이다. 경찰 조직 내부적으로도 업무 조정을 통해서 수사 부서의 인력을 증원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 조직의 시스템과 업무 처리 방식도 한번 흔들어 놓을 생각이다. 미래 치안에 맞는 시스템이 뭐가 될지를 고민해 볼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뭘 할건가.
“일단 본청부터 시작해서 ‘불필요한 일 버리기’라는 화두를 제시했다. 필요하다면 조직 통폐합도 생각한다. 인구가 줄고 있다. 공무원을 늘려서 일을 해결하겠다 식의 사고는 것은 한계에 봉착했다고 본다. 사람이 할 일을 기계가 대체하는 사회가 됐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미래 치안에 맞는 과학 기법을 도입하고 동시에 조직 개편도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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