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 28. 12:40ㆍ이슈 뉴스스크랩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한국 재벌의 본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관이 들어선 것은 1979년이었다. 그해 11월16일 치러진 회관 준공식에는 본래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렇지만 준공식 때 박 대통령은 스무 날 전의 ‘10·26 사태’로 고인이 돼 있었다. 대신 준공식에 참석한 이는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다.
△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
어찌된 일인지, 회관 준공식 뒤엔 전경련을 찾은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자는 아무도 없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 모두 전경련을 방문하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전경련의 대표 격인 4대 그룹 회장들을 만나긴 했어도 국회 식당에서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경련 회장단을 만난 장소 역시 바깥의 음식점이었다. 군사정권 시절엔 재벌 회장들이 청와대로 불려 들어갔고 그 뒤엔 주로 제3의 장소에서 만났다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치 권력’이 ‘경제 권력’의 본산으로 여겨진 전경련으로 직접 찾아가는 것은 모두 꺼려했다는 게 흥미롭다.
정부가 나서서 가려운 데 긁어줘
잘 알려진 대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대선 직후 전경련을 전격 방문해 그간의 ‘관례’를 깼다. 선거를 치른 지 9일 만인 12월28일이었다. 당선자 신분으로 치른 공식적인 첫 외부 일정이기도 했다.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법적 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나 노동계의 파트너인 경영자총협회를 제쳐두고 재벌 회장단 중심의 ‘임의 단체’인 전경련을 첫 방문지로 잡은 건 우연이었을까?
이 당선자의 전경련 방문 직후 꼬리를 문 경제 부처들의 업무 보고 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주목할 경제 정책들을 쏟아냈다. 1월3일 금융감독위원회의 업무 보고에선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한도(현행 소유 10%, 의결 4%)를 높여주는 ‘금산분리 완화’ 방안이 제시됐다. 이틀 뒤 공정거래위원회가 업무 보고를 하고 나자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를 폐지하고 지주회사 요건을 푼다는 방침이 발표됐다. 이런 인수위발 주요 정책들은 친기업을 넘어 친재벌이라는 평가로 이어졌다. 선단식 그룹 구조를 유지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출총제를 폐지해달라는 주장은 재벌기업들의 끈질긴 민원이었고 금산분리 완화 방침은 재벌, 특히 삼성 총수 가문의 핵심적인 요구 사항이었다.
출총제 폐지나 금산분리 완화로 대표되는 인수위의 방향 제시가 그다지 놀랍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대체로 이명박 당선자의 후보 시절 공약으로 제시됐던 게 다시 확인된 수준이다. ‘친재벌’이란 딱지도 새삼스럽지 않다. 성격을 달리하는 노무현 정부에서 이미 ‘재벌공화국’에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돌 정도로 재벌의 힘이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 미친 지 오래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오래전 우리 귀에 익숙해진 구호다. 그렇다면 이명박 당선자 쪽에서 발신하는 주요 재벌 정책들은 앞 정부의 그것과 실질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는 연장선에 불과한 걸까?
1월8일 마무리된 정부 부처의 업무 보고 과정에서 드러난 인수위의 경제 정책 방향은 이미 이 당선자의 공약에서 제시된 대로 대기업을 중심에 두는 ‘트리클 다운’(물 흐름) 효과를 꾀하고 있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대기업이 잘돼야 중소기업의 일거리가 늘어나고 전체 기업의 투자와 고용 확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게 이 당선자의 논리다. 정치적 구호에 그쳤는지는 몰라도 ‘대기업·중소기업 동반 성장’이라는 참여정부의 깃발과는 차이를 느끼게 한다. 재벌 쪽에서 줄기차게 제기한 민원 사항을, 힘에 밀려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정치 권력 쪽에서 알아서 풀어주는 모양새도 새롭게 볼 양상이다.
재벌을 중심에 두는 ‘경제’ 중심의 화두는 경제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은 특히 눈여겨볼 대목으로 꼽힌다. 국세청, 검찰 등 룰(규칙)을 제대로 지키는지 감시하는 국가 기구들도 법·원칙보다는 ‘경제 살리기’에 주파수를 맞춘 발언들을 잇따라 냈다. 교육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인수위 사회·교육·문화 분과의 교육 분야를 경제학자인 이주호 의원(간사 겸 인수위원)과 조전혁 인천대 교수(전문위원)가 앞장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은 재벌을 중심에 놓은 ‘경제’와 ‘시장’이란 블랙홀에 모든 영역이 빨려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모든 걸 분쇄하는 ‘악마의 맷돌’
△ 최고경영자(CEO)형 총장으로 일컬어지는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도 ‘기업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한 예다.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는 이를 두고 “이명박 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한국 사회를 생산성과 기업의 운영 원리로 빨리 재조직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며 “전대미문의 ‘기업사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업을 도와주는 게 정부의 일이라는 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게 되면 이게 전형적인 기업사회적 성격이다. 옛날 산업화 때는 국가 스스로 기업이 되는 것이었고, 종속이론에선 이를 기업국가라고 했다. 국가가 기업의 역할을 하는 것인데, 지금은 기업이 국가의 역할을 대행하는 모양새다. 권위주의 산업화 시대의 기업국가보다 훨씬 진전된 기업사회의 형태를 띠고 있다.”
박 대표는 “기업은 한 사회의 물질적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조직으로, 사회가 하나의 체제라고 볼 때 기업 부문은 그중의 하나인 하위 체제인데, 하위 체제의 운영 원리나 가치가 체제 전반을 지배할 때 그 공동체는 ‘악마의 맷돌’이 된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칼 폴라니가 시장경제 체제를 빗대어 일컬었던 ‘악마의 맷돌’처럼 기업적 가치가 다른 모든 걸 분쇄해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 원리를 위협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이 사회조직의 일부가 아니라 모든 조직의 이상형으로 부각되는 ‘기업사회’에 대한 우려는 이미 제기돼온 터였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2006년 12월 펴낸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성찰>이란 책의 부제를 ‘기업사회로의 변환과 과제’로 달았다. 김 교수는 ‘정치·사회가 기업 활동을 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에 봉사하는 역할을 하고, 기업의 생산성이 곧 국가나 사회의 생산성으로 간주되는 사회’를 기업사회로 규정하고, “한국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군사형 사회에서 기업사회로 변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부시 행정부처럼 각료 자리의 대부분을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출신들이 접수하는 모습으로 대표되는 기업사회는 시장만능주의(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전 지구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corporate)에 의한, 기업의 지배를 일컫는 ‘코포크라시’(corpocracy)라는 말이 외국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현실은 그 반영이다.
김동춘 교수는 “지금까지 사기업 사람들은 공익과 거리가 있다는 게 통상적인 인식이었는데, 사기업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논리가 확산돼 있다”고 진단했다. “돈을 많이 버는 건 본인에게만 좋은 게 아니라 도덕적이기까지 하다는 정당성까지 획득했다. 이명박 당선자가 기업인들에게 공항 귀빈실을 사용하게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기업인이 공무원보다 더 기여를 많이 하는데 왜 귀빈실을 사용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기업이 경제적 역할을 넘어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다 같은 기업사회라고 해도 어떤 기업이 지배하느냐에 그 사회의 작동 방식은 달라진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공화당 정권 아래에선 석유·군수 자본 쪽이 중심을 이루고 민주당 정부에선 캘리포니아의 문화 자본이 득세하는 식으로 차이를 띤다는 것이다. 기업사회의 메커니즘을 결정짓는 또 하나의 잣대는 자본의 힘을 제어하는 견제력의 강약이다. 노조조직률이 10~12%인 미국과 70~80%에 이르는 북유럽은 같은 기업사회라고 해도 실제 작동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다.
경제 살리기는 효과 거둘 수 있나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우리 사회는 그런 점에서 코포크라시를 넘어 ‘재벌크라시’이고 더 들어가면 ‘삼성크라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코포크라시라고 하기엔 중소기업들이 같은 ‘자본’이면서도 대우를 받지 못하고 배제돼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노조조직률이 10%를 갓 웃돌 정도로 견제력이 취약한 사정을 아울러 고려할 때 한국의 기업사회는 최소한의 공정 경쟁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천민적 코포크라시’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있다고 김 교수는 덧붙인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선 공정위를 통해 재벌을 일정하게 견제하려고 했는데, 이명박 정부에선 ‘시장경쟁’마저 훼손하는 쪽으로 퇴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CEO 출신이 정부 각료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예가 많지 않다는 점에선 ‘미국식 코포크라시’보다 덜해도 막강 경제 권력인 재벌을 견제할 대항마가 없다는 점에선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벌 중심의 노골적인 코포크라시 흐름의 강화가 민주주의 원리에 끼칠 영향은 일단 제쳐두고라도 ‘경제 살리기’에선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출총제 폐지를 비롯한 재벌 정책의 변화가 대기업의 투자로 이어지고 중소기업을 비롯한 하위 부문들이 그 혜택을 더불어 누릴 수 있다면, 이명박식 코포크라시는 한층 추진력을 얻게 될 것이란 점에서 주목되는 대목이다.
△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직후 첫 방문지로 전경련을 선택했다. 지난해 12월28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재벌 회장들과 포즈를 잡은 이 당선자(앞줄 오른쪽에서 여섯 번째/ 사진공동취재단). |
‘대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그것의 성장 효과가 서민과 중산층에 확대돼 분배 문제까지 해결한다’는 이명박 당선자의 ‘신발전 체제’는 두 가지 전제 위에서 성립할 수 있다. 첫째, 재벌기업들의 투자가 급격히 늘어나야 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이게 실현되기 쉽지 않은 여건이라고 본다. 대우, 쌍용그룹을 뺀 상위 8대 그룹의 투자가 국민경제 전체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50%로, 과잉 투자 논란을 일으킨 외환위기 직전 수준까지 치고 올라온 상태여서 추가로 크게 늘어나기엔 한계를 안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명박 당선자에게 선물을 안겨주려는 듯 1월9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재벌들이 올해 투자를 크게 늘리기로 했으니 김 소장의 예측은 빗나갈지 모르지만, 두 번째 전제가 남아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연관관계다. 이를 명확히 보여줄 최근의 지표는 없다. 2005년 3월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에서 내놓은 ‘부품·소재 산업의 경쟁력 현황과 정책 과제’ 같은 자료로 대략 짐작해볼 수 있을 뿐이다. 2000년 기준 산업연관분석 결과 영상·음향·통신 기기나 컴퓨터 기기를 비롯한 정보기술(IT) 업종의 수입유발 계수는 0.47~0.55였다. 1천달러를 수출하면 470~550달러는 해외에서 핵심 부품을 수입하는 데 지출한다는 뜻으로 일본의 0.13보다 4배가량 높았다.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연관관계 취약성은 이런 복잡한 수치 이전에, 재벌 대기업들이 초호황을 누리고 있을 때 중소기업계에선 비명이 끊이지 않았던 데서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에 실망한 서민, 중산층을 ‘트리클 다운’ 효과로 만족시켜주는 게 만만하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 경제의 난항이 재벌기업들의 어려움에서 비롯된 게 아님은 상식으로 통한다. 전체 성장률보다 각 부문의 양극화, 더 나아가 중간선 아래의 빈곤화가 문제라는 사실에는 대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상층부 재벌기업들은 외환위기 직후 2~3년을 빼고는 줄곧 호황이었다.
단기간 가시적 성과 내기 위해
인수위를 통해 인재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이명박 당선자 진영에서 이런 사정을 파악하지 못할 리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시장주의’를 내세우면서도 통신비 20% 인하 유도나 신용불량자 대사면 같은 정책들을 검토했던 게 그런 고민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책의 큰 중심점을 대기업, 나아가 재벌기업들에 두며 기업사회 쪽으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 것은 나름의 철학적 기반과 단기적이고 절실한 정치적 필요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통상 정권 초기에는 대중의 기대 수준이 높게 형성되기 마련이며, 이를 채워주려면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며 “그런 배경에서 재벌들의 돈을 풀어 단기적인 경기 부양 효과를 꾀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풀이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긴밀한 연관관계를 형성하는 식의 원천적인 접근법은 5년 내내 해도 될까 말까 한 난제여서 회피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도 그런 틀로 이해할 수 있다. 재벌의 민원을 미리 찾아서 해결해주는 이명박식 코포크라시의 강화 분위기는 대중의 조급한 기대와 욕망을 배경에 깔고 있는 셈이다. 순조롭게 채워질 기대와 욕망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국가의 중립성과 공공성은 자본주의의 장기 발전을 위해서라도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적어도 외양적으로는 지켜져왔는데, 이제 그마저 족쇄로 여겨 벗어버리는 단계에 와 있다. 김동춘 교수는 이를 “발전적인 동시에 위험한 징후”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키고 그같은 경제적 인센티브가 계속 주어지지 않으면 급속도로 허물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도덕적·공적인 기초가 취약한 탓이다. 김 교수는 “언론이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국가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을 형성해나가야 할 때”라고 말한다.
재벌 정치 참여의 역사
한국의 경제 권력인 재벌이 정치에 직접 간여하는 움직임을 보인 것은 1992년부터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두 번째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해였다.
정치권 진출에서 앞장을 선 재벌 기업인은 작고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었다.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정 회장은 독자적인 정당을 만들어 1992년 대선에 출마했다.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이를 “국가 주도로 자본을 육성하는 정부 우위의 정경유착 단계를 지나 자본 우위의 정경유착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 단적인 예였다”고 풀이한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정치에 뜻을 보인 것도 그즈음이었다. 김 회장은 정 회장의 정계 진출 선언 전인 1991년 12월께부터 현실 정치판에 대해 매운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5월 기자회견에서는 “일본의 ‘마쓰시타 정치의숙’과 같은 신진 정치인 양성 기관을 세우고 싶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정주영 회장과는 또 다른 방식의 정치 참여 움직임이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김우중 회장의 시도가 사실 더 우려스러운 것이었다”고 말한다. “직접 후보로 나서는 것이야 한두 텀(임기)이면 끝나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더라도 정치가를 직접 배출하는 것은 길게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주영 회장의 정계 진출은 대선 낙선으로 실패했고, 김우중 회장의 시도 역시 결실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다고 정치에 대한 재벌의 영향력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4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정치 4류, 행정 3류, 기업 2류”라는 이른바 ‘베이징 발언’은 더 이상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된 경제 권력의 힘을 상징한 사건이었다.
재벌은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려 1990년대 후반 정치 권력 앞에 잠깐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였지만, 곧 힘을 회복했다. 구조조정 과정을 통해 재무구조를 튼튼하게 다져 은행에 대한 의존성을 털어버림에 따라 정부의 통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 망하지 않고 버틴 재벌들의 힘은 더 막강해졌다. 나중의 대선자금 수사에서 드러나듯 재벌은 자금력을 통해 정치 권력을 주물러왔다. ‘X파일’ 사태에 생생하게 드러난 삼성그룹의 행태는 그 대표 격이다.
이제 굳이 돈을 주지 않아도 언론을 앞세운 이데올로기 공세로 정치 권력이 재벌의 민원 해결에 알아서 나서는 단계로 발전하는 양상이다. 기업의 이익이 곧 국가의 이익이라는 인식은 일반 대중에게까지 널리 확산돼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재벌로선 직접 정치에 참여하려고 애써 노력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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