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물 일 할수록 적자

2008. 3. 17. 08:44이슈 뉴스스크랩

어둑한 공장 내부로 들어서자 싸한 쇳가루 냄새가 후텁지근한 수증기에 섞여 밀려 왔다. 10여명 직원들이 마스크를 쓴 채 붉은 쇳물을 조형기(造型機·일종의 거푸집)에 붓고 있었다. 절반은 몽골·방글라데시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다. 열악한 근로조건 탓에 사람 구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값싼 외국 인력이 아니면 수지타산을 맞출 수도 없다.

1년 전 이 맘 때 ㎏당 340원쯤 하던 고철 구입가격은 요즘 520원으로 50% 이상 뛰었다. 그 사이 제품 납품가격은 고작 60원 오르는 데 그쳤다. 공장을 돌리지만 한 달에 1000만원 가까이 적자가 쌓이고 있다. 3억원 정도 설비투자를 하면 생산성을 2배 올려 수익성을 높일 수 있지만, 당장 투자여력이 없어 포기한 상황.

연삭기(그라인더)로 자동차 변속기 케이스를 다듬던 박모(41)씨는 "2년 동안 일당이 제자리 걸음"이라고 말했다. 주물 후(後)처리 작업은 박씨 같은 비정규직 담당이다. 처리한 제품의 무게를 따져 ㎏당 80원을 받는다. 평균 일당은 6만~10만원 정도. 김 상무는 "올해는 꼭 올려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남동공단에서 차로 30여분 떨어진 인천 경서공단(서부산업공단). 주물업체 60여곳이 모여 있는 수도권의 대표적 주물공단이다. 오후 5시를 넘어서자 말쑥한 점퍼 차림의 인부들이 하나 둘 거리로 나왔다. 쇠그물 공장에서 일하는 최모(39)씨는 "작년 말부터 일감이 줄면서 잔업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잔업·특근이 사라지자 월급은 18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반토막 났다 한다.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가 쌓이는 상황에서 회사는 새 거래처 뚫기를 포기한 상태다.

주물공장이 어렵자 공단 전체 경기(景氣)도 죽을 쑤고 있다. 공구(工具) 납품업체인 디씨종합상사 유호진 사장은 "회사들이 기름때 묻은 장갑을 빨아 쓸 정도"라며 "용접봉·그라인더 판매가 작년보다 3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이날 현대자동차가 납품가 인상 방침을 밝혔지만, 공단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B주물업체 김모 전무는 "현대차가 납품가를 올려 주더라도, 2·3차 협력업체로 내려오면 결국 인상금액은 눈곱보다 작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인천 남동공단의 한 주물회사 공장에서 인부들이 컨베이어에 달린 조형기에 쇳물을 붓고 있다. /이성훈 기자 inout@chosun.com
하지만 주물업체에서 제품을 받아 가공하는 1·2차 협력업체의 사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특히 강판을 틀로 찍어 낸 제품을 완성차 회사에 납품하는 프레스업계는 이번 주물업계 공급가격 인상 운동에 집중타를 맞고 있다. 생산단가에서 재료비 비중이 70~80%에 달해 최소 20~30%대의 원가인상 압박을 받고 있지만, 완성차 회사에서 제대로 된 가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주물업계의 가격인상 요구를 무조건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S기업 관계자는 "완성차 회사들이 기술개발을 통한 원가절감보다 납품가 인하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 한다"며 "대기업이 납품가 인상을 하지 않는 한, 우리가 먼저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제적 원자재값 상승이라는 통제 불능의 리스크(위험) 앞에서 납품가를 둘러싼 기업 간 갈등은 좀체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물업계는 지난 7일에 이어, 17일부터 사흘간 다시 납품거부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서병문 이사장은 "대기업의 납품가 인상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며 "주물업계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4월 1일부터 생산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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