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테레지원국 해제

2008. 10. 12. 10:18이슈 뉴스스크랩

`동시행동' 원칙 관철..3단계는 美 차기 행정부로 미뤄(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북한은 대미 협상의 기본인 '동시행동' 원칙을 바탕으로 한 벼랑끝 전술을 통해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라는 20년 숙원을 해결했을 뿐 아니라 핵검증 체계도 미국이 당초 요구한 '국제기준' 대신 이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6자회담 기준'을 관철시켰다.

미국이 말하는 '국제기준'에 의한 검증이란 자신들의 주권을 침해하고 자신들을 일방적으로 무장해제시키는 '특별사찰'과 같은 것을 "강도적 요구"라고 북한은 주장하며 "6자 테두리 안"의 검증체계를 고수, 끝내 `분리검증'과 미신고시설에 대한 '합의검증'이라는 양보를 얻어냈다.

북한은 대북 협상보다는 압박에 주력하던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2년전 핵실험이라는 벼랑끝 전술을 구사, 사실상 북.미간 1대 1 대화구도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만큼, 이번 대미 게임 결과를 통해 벼랑끝 전술의 유용성을 재삼 확신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번에 조지 부시 대통령이 내달 미국 대선에서 새 대통령 당선자가 나오기 전에 비핵화 2단계를 마무리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몰린 상황을 벼랑끝 전술에 최대한 활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전술이 비교적 단기적으로 먹힌 데는 또 미국이 당초 북한에 제시한 검증체계안에 무리한 면이 있다는 일부 국제여론도 작용한 면이 있다.

미국 유력지 워싱턴 포스트는 유엔 핵사찰단으로도 활동했던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이 미국의 검증체계안에 대해 "북한의 군사시설을 정탐할 권리"를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어느 주권국가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라고 평가했다고 최근 전하기도 했다.

올브라이트 소장은 북미간 검증안 대립 국면 초기부터 영변 핵시설에 국한한 플루토늄 검증과 여타 우라늄농축 및 핵확산 의혹 검증을 분리할 것을 주장하고 또 그렇게 될 것으로 예견했었다.

플루토늄 문제는 북한의 정식 핵신고서에 담긴 내용이고, 우라늄농축 및 핵확산 문제는 북미간 비공개 의사록에 담긴 것이기도 해 핵신고 때 이미 이런 분리구도가 만들어진 셈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12일 "북한은 테러지원국 해제 과정을 통해 북미간 불신에서 비롯된 행동대 행동 원칙의 중요성을 재확인했을 것"이라며 "양자간 뿌리깊은 불신은 여전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북한은 미국에 어떤 행정부가 들어서든 동시행동 원칙을 고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한은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자신들을 삭제한 조치에 상응해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비핵화 2단계인 불능화 조치를 마무리하는 데는 그리 인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검증 실시를 포함한 3단계 핵폐기 과정은 미 대선을 지켜보면서 차기 행정부와 논의하려 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은 "북한은 부시 임기내에선 핵시설 불능화라는 2단계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끝낼 것"이며 "3단계 과정은 민감복잡하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부시 행정부 임기내에는 불가능하므로 차기 행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보면서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 미 행정부가 부시 행정부처럼 이전 행정부의 대북 협상 결과를 무효로 하고 협상을 외면한다면 북한은 다시 제2차 핵실험 등 다양한 벼랑끝 전술로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북한이 2차 핵실험을 준비하는 징후가 있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가 사실일 경우 이미 차기 행정부를 겨냥한 메시지일 수 있다.

차기 미 행정부가 지금까지 핵협상 결과를 인정하고 그 연장선에서 북한과 협상에 나설 경우 북한은 3단계 핵폐기 과정도 핵검증, 핵시설 해체, 핵물질의 반출, 핵무기 폐기 등 여러 단계로 나누는 살라미 전술을 구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3단계 첫 관문인 검증 과정에서도 북한은 그 대상과 범위를 놓고 2000년 금창리 핵의혹 시설 조사 요구에 60만t의 식량지원을 대가로 요구했던 것처럼 각종 상응조치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성렬 연구위원은 "이미 합의된 핵신고서 범주의 검증에서도 북미간 거센 힘겨루기가 있을 것"이라며 "북한은 어떻게든 검증을 최소화하려 하고 필요한 경제적 보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우라늄농축 및 핵확산 의혹관련 검증은 말할 나위없이 북한이 정치.경제적 실익을 최대한 챙길 수 있는 기회다.

핵검증, 핵시설 해체, 핵물질 반출, 핵무기 폐기 등 단계별로 북한이 요구하고 나설 대가는 국제금융기구의 대규모 개발자금 지원, 경수로 제공, 북미관계 정상화, 북미정상회담 등 고위급 회담, 한미 합동 군사연습의 중단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다양하다.

최근 한 월간지에 실린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새로운 전환적 국면을 맞은 조선반도 정세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문건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대북 에너지 지원 완수와 영변 핵시설 불능화 완료→북핵 신고검증과 핵시설 폐기에 상응한 남한내 핵무기 부재 검증과 대북 경수로 제공→핵무기 문제와 동북아시아 평화안보체제 수립 논의' 순으로 이어지는 일정을 전망하기도 했다.

김연철 소장은 "북한은 핵폐기 협상의 수순과 일정한 연관 속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핵억제력을 포기하는 대가로 자신들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는 등 정치.군사적 담보를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민주당의 대북정책 기조상 핵무기 뿐 아니라 미사일과 재래식 무기, 인권 등 '북한 문제' 모두를 올려놓고 일괄협상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어 북한의 대응이 주목된다.

이미 부시 행정부의 대북 검증체계 절충에 불만인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가 당선돼 기존의 협상 결과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가면 북한은 다시 한번 체제 존망을 건 벼랑끝 전술로 내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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