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이해석.김상진.김방현] 80㎏짜리 쌀 한 가마에 200만원. 전남 장흥군 용산면 운주마을 ‘쇠똥구리 유기농 작목반’의 한창본(43)씨가 생산하는 ‘적토미’ 값이다. 붉은색을 띠면서 수수 향이 나는 이 쌀은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한다. 한씨는 “적토미는 기름진 논보다 척박한 곳에서 잘 자라 일반쌀보다 생산성이 떨어지므로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운주마을에선 6년 전부터 적토미와 녹색이 나는 녹토미를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있다. 적토미의 경우 4농가가 2만㎡가량을 재배 중이며, 수확량은 일반 벼의 40~60%에 그치지만 쌀값이 ㎏당 2만5000원으로 보통 유기농 쌀(3500~4000원)의 6~7배나 된다. 녹토미는 7만㎡에 재배됐는데, 쌀값은 ㎏당 1만1000원으로 일반 유기농 쌀의 약 3.5배다.
소비자들의 입맛을 노린 햅쌀들이 본격적인 시판에 들어갔다.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고품질 쌀이다. 울긋불긋하게 색깔이 들어간 쌀부터 국수나 냉면용 쌀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쌀을 밥으로만 먹는다는 인식이 바뀌고 있다.
◆쌀의 재발견=지난달 25일, 경남 고성군 거류면 은월리 들녘 13.3㏊ 논에서는 가공용 쌀인 ‘고아미’ 수확 행사가 열렸다. 이날 생산량은 40㎏짜리 1550가마(62t)로 가격이 7750만원(가마당 5만원)쯤 된다. 인건비와 퇴비 등 생산비 1260만원을 제하면 6490만원이 순수익이다. 논을 갈지 않고,비료·농약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농사 비용이 적게 들었다.

농민들과 고아미 재배를 시도한 마산자유무역지역의 휴대전화 생산업체 ‘노키아 티엠씨’의 이재욱(67) 전 회장은 “연간 국내 쌀 생산량 450만t 중 남는 100만t을 고아미로 대체해 쌀국수 등을 개발한다면 수입 밀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충남 서천군 비인농협 쌀 작목반 16개 농가는 5년째 영안벼를 재배하고 있다. 영안벼는 성장호르몬 생성에 필요한 라이신 함량이 일반벼(3.88%)의 네 배다. 그 때문에 ‘키 크는 쌀’로 불린다. 경남 고성군에서는 ‘보약 먹인 쌀’이 생산된다. 농약과 비료 대신 한방 영양제와 녹즙을 쓴다. 올해 268가구가 논 163㏊에 이 농법을 적용했으며 2012년까지 고성군 내 전체 논 7500㏊로 확대할 계획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생산되는 브랜드 쌀은 1700여 개. 올해 10% 정도가 저농약을 포함한 친환경쌀로 생산되고 있다. 경남도농업기술원 김동주 작물기술담당은 “안전과 고품질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하는 다양한 친환경 쌀들이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햅쌀 이벤트=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정보화마을 쇼핑사이트(www.invil.com)에서는 30일까지 ‘햅쌀 이벤트’를 연다. 전국 116개 정보화 마을에서 올해 생산한 브랜드 쌀을 싸게 판다. 경기 포천 ‘무농약 우렁농법 숯골자연미’, 충남 홍성의 ‘유기농 문당 오리미’, 강원 화천의 ‘토고미쌀’ 등 전국 유명 브랜드가 망라됐다.
이해석·김상진·김방현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