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시티

2008. 11. 8. 13:11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느리게 살기’ 슬로시티가 뜬다

전남 담양·신안 등 4곳… ‘빨리 빨리’그만, 여유를 찾자
정우천기자 goodpen@munhwa.com

현대는 분명 속도의 시대다. 초고속 인터넷마저도 느리다는 불평이 나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서도 그 위를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요즘 세태다. 하지만 속도에 끌려가는 세태를 거부하고 오히려 ‘느리게 사는 삶’을 추구하는 슬로시티(Slow City)운동도 있다. ‘슬로시티’는 패스트푸드 거부로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의 정신을 지역 전체로 확대하면서 만들어진 개념. 1999년 10월 슬로푸드운동을 주도하던 이탈리아의 그레베인 키안티, 포시타노, 오르비에토, 브라 등 4개 도시 시장이 모여 슬로시티를 선언하면서 태동했다.

오르비에토에 본부가 있는 슬로시티세계연맹에 가입된 도시는 총 11개국 101곳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2월 전남의 4개 지역이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문화일보 2007년 12월4일자 1면 참조) 신안군 증도면, 담양군 창평면, 완도군 청산면, 장흥군 유치면 등이 그곳.

이들 지역은 잇따라 ‘걷기 여행’을 관광상품화해 도시민들에게 슬로시티 체험기회를 제공, 눈길을 끌고 있다. ‘빨리빨리 증후군’이 보편화된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보라는 반가운 유혹이다.

전남도는 8일 담양군 창평면에서 외지 관광객 1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슬로시티 미학을 담는 걷기 여행’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참가자들은 창평국밥으로 점심을 먹은 뒤 한과·쌀엿 만들기, 장류부문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된 기순도(여·59)씨의 지도로 장류 담기 등 다양한 전통체험을 할 예정이다. 또 아름다운 가로수길로 유명한 ‘메타세쿼이아 길’, 천연기념물 366호 ‘관방제림’, 시와 그늘이 있는 조선시대 정원 ‘소쇄원’ 등을 돌아보며 담양 일대의 가을 정취를 만끽하게 된다.

완도군은 내년 5월초 2박3일 일정으로 청산도, 보길도, 신지명사십리 등지에서 ‘제1회 세계 슬로우걷기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 6월에는 신안군 증도에서 수도권 여행객 등 1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슬로시티 아름다운 걷기 여행’이 열렸다. 주동식 전남도 관광문화국장은 “슬로시티체험이야말로 ‘저탄소 녹색성장’에 부응하는 관광상품”이라고 강조했다.

경남 하동군도 슬로시티 가입을 추진중이다. 슬로시티세계연맹 실사단은 10월31일부터 지난 1일까지 후보지인 하동군 악양면 일대를 방문했다. 악양면은 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최참판댁과 녹차단지, 대봉감 단지 등이 있는 곳. 가입여부는 올해말 결정된다. 슬로시티 인증 요건은 매우 까다롭다. 인구가 5만명을 넘지 않아야 하고, 패스트푸드와 대형 마트, 자동판매기 등도 없어야 한다. 또 전통 산업과 슬로푸드는 물론, 아름다운 경관과 세계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보편적 문화도 갖춰야 한다.

담양 = 정우천기자 goodp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