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갈등 분석

2009. 1. 26. 17:21건축 정보 자료실

재개발 갈등, 허공에 뜬 권리금-보상금이 ‘火根’

‘용산 참사’ 계기로 본 재개발 갈등


재개발 되기 전 서울 성북구 길음동 집장촌 ‘미아리 텍사스’.

인천 남구 학익동 집장촌이 재개발을 위해 철거되고 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 철거민들이 보상 확대를 요구하며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던 N 빌딩에 경찰이 진압을 하는 도중 불이 나 소방관들이 물을 뿌리고 있다. 이 사고로 농성자 5명과 경찰관 1명 등 6명이 숨졌다. 곽성호기자
서울 용산구 한강로 용산4구역 철거민 사망 사고를 계기로 재개발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다. 서울의 경우 55곳 이상에서 뉴타운 사업 등 재개발 사업이 진행중이다. 1월 현재 26개 재정비촉진지구(뉴타운)와 8개 균형발전촉진지구 등 총 35곳에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올해 보상비 또는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줘야 하는 관리처분계획인가 단계를 앞두고 있는 재개발 지역만도 20곳이나 된다. 이들 사업지구중에는 특히 상가가 포함된 곳도 많아 자칫 용산과 같은 비슷한 분쟁이 재연될 수도 있다. 10문10답을 통해 재개발 사업의 갈등 원인과 쟁점,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정리해 본다.


1. 재개발사업은 무엇이며, 재건축사업과 어떻게 다른가

재개발사업은 주택 노후화나 도로 등 도시기반시설이 낙후된 지역을 모두 철거하고 새로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도시·주거환경정비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낙후 정도 등을 감안, 지방자치단체장이 시행 방법을 정한다. 이와 달리 재건축사업은 기반 시설이 비교적 양호한 지역에 있는 주택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을 말한다.

2. 누가, 누구와 갈등을 겪나

재개발사업 분쟁은 개발지역 특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시행사(조합)와 세입자 사이에 생긴다. 분쟁은 실제 재개발이 시작되는 ‘관리처분계획인가’ 단계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이들 단계에서 주거이전비와 임대아파트 입주권 등 구체적인 보상 계획이 나오고 여기에 세입자나 철거민들이 불복하면서 갈등이 커진다. 여기에 시공사의 ‘밀어붙이기’식 철거 등 사업 진행도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3. 갈등은 왜 발생하나

모든 개발사업에 분쟁이 있기 마련이지만 재개발사업은 특히 지주들로 구성된 조합과 세입자 간에 갈등을 빚는다. 불신은 영업보상비 문제다. 현행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의 영업보상비에는 대체 매장 조성, 권리금 보전액 등이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세입자들은 생존권 보장 수준의 영업보상비와 이전비 등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조합은 ‘법 규정 이외의 보상비’는 줄 수 없다고 맞선다.

4. 보상비 쟁점은 무엇인가

조합과 세입자 쟁점은 영업권 보상비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권리금’이라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다. 영업권 보상비는 토지보상법 시행규칙이 정한 항목별 단가와 산출 근거를 통해 제시된다. 토지보상법 제80조에는 ‘사업 시행자와 손실을 입은 자가 협의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세입자와 협의하는 조합이 드물다. 이 때문에 분쟁지역 세입자 대부분이 ‘조합에 유리하게 산출된 보상비’라며 반발, 갈등이 커진다. 최대 쟁점은 역시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권리금’이다. 권리금은 기존 점포를 매매하거나 임대차할 때 상인들 간에 관행적으로 주고 받는 돈이지만 법적으로 전혀 보호받지 못한다. 이 같은 이유로 재개발 세입자들은 ‘권리금’ 대신 영업보상비를 현실에 맞게 책정해 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조합측은 재개발 사업 부담금이 늘어날 것으로 우려해 절대 반대하고 있다.

5. 외국도 재개발 갈등이 있나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에도 재개발 사업 갈등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설득과 대화, 타협으로 갈등을 해결해 용산 참사와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실제 한국과 사업 절차나 목적 등이 비슷한 일본 도쿄 롯폰기힐스(11만㎡·3만3000평) 복합시설도 17년이나 걸렸지만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했다.

6.물리적 충돌은 왜 벌어지고 과격해지나

재개발을 주도하는 시행사로선 수익성 보장을 위해 보상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라도 철거 용역업체를 동원해 강제 철거 작업에 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철거민들이 조직적인 대응을 하면서부터 물리적 충돌의 수위는 점점 높아진다. 더군다나 전철련과 같은 외부 단체와 연대해 투쟁방법과 전략을 배우게 되면 철거민들은 높은 망루를 쌓고 그 위에 올라가 철거에 맞서는 극단적인 방법도 불사한다.

7.갈등의 중심에 있는 전철련은 어떤 단체인가

1994년 결성된 전국철거민연합(전철련)은 전국철거민협의회(전철협)의 강경파가 독립해 만든 조직으로, 전국 70여개 지부를 두고 회원 대부분이 철거민 출신 활동가로 구성돼 있다. 전철련은 1997년 경기 용인 수지와 2001년 서울 봉천동 재개발지역에서 철거민의 임대주택 입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8.편법 · 변칙은 없는가

많게는 수조원대의 개발 이익이 걸린 재개발 사업이다보니 철거민 단체가 시위를 해주고 거액을 챙긴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돼 왔다. 실제로 철거반대 투쟁 도중 철거 용역업체 직원 1명이 사망했던 2005년 경기 오산시 세교택지개발지구에서는 농성 가담 8가구가 300만원씩 2400만원을 걷어 이 중 일부를 철거민 단체에 전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9.갈등 · 충돌중인 재개발 구역 얼마나 더 있나

서울시내 일부 재개발 구역에서 조합원과 시행사 역할을 하는 조합 간에 마찰이 이어지고 있다. 서대문구 남가좌동 가재울4구역에서는 보상비에 대한 불만 등으로 조합과 조합원이 마찰을 빚어 이주거부 등이 발생하고 있다. 주민대책위원회가 만든 인터넷 카페에는 최근 용산참사가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철거, 이주와 관련한 분쟁은 올해 첫 분양을 예정한 성동구 왕십리 뉴타운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왕십리 각 1·2·3구역 철거민 대책위원회는 지난해 9월 투쟁을 선포하는 현판식을 가졌다. 또 성동구 금호13구역과 성북구 보문4구역 등에서도 조합원, 조합 집행부, 시공사, 시행사들 간의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10.재발 방지 개선대책은 없나

서울시가 용산 참사를 계기로 재개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손질해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도시정비 관련법령의 통합 개편을 추진하고 유사 사업에 대해서는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등 세입자 대책도 보완키로 했다. 서울시가 발표한 재개발 제도개선 추진방향에 따르면 우선 사업목적 및 사업수법에 따라 구분되지 않고 유사한 사업방식조차도 다른 법으로 규정, 세입자 대책 등이 각기 다른 도시정비 관련법령의 통합 개편을 추진키로 했다. 또 법령별, 사업방식별 차이를 해소하고 영업세입자에 대한 합리적 보상근거를 마련하는 등 세입자 대책도 보완해 나가기로 했다.

김순환·신선종·한동철기자 s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