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1. 13:43ㆍ분야별 성공 스토리
사상 최악이라던 2008년 취업 시즌이 끝나 간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도 대기업 여러 곳에 중복 합격해 자기 자리를 골라 가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들 중에는 대기업 20곳에서 합격통지서를 받은 사람도 있다. 중앙SUNDAY는 대학가를 수소문해 취업 관문을 뚫은 대졸 신입사원 7명을 찾아 그들의 성공스토리를 들어 봤다. 대기업 복수 합격자란 것 외에 이들의 공통점은 이른바 ‘SKY대(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8월 경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대림건설 자금팀에서 근무 중인 여정인(28)씨. 그는 주변에서 ‘취업 고수’로 통한다. 20여 개의 대기업에 합격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정보기술(IT) 계열 회사부터 건설ㆍ화장품까지 그를 필요로 하는 기업의 업종은 다양했다. 서류전형에 통과해 면접까지 간 곳이 워낙 많아 3만~5만원 정도인 면접 교통비도 적지 않았다.
여씨 외에 조진호(28·한국외국어대 영어통역번역학과)·허정석(28·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김성도(28·동국대 행정학과)·유인녕(27·가톨릭대 경영학과)·장혜란(가명·여·단국대 정보통계학과)·강혜리(23·여·동덕여대 식품영양학과)씨도 모두 여러 곳의 대기업에 합격했다.
5개 대기업에 합격한 조씨는 대림산업에, 3개 대기업에 합격한 허씨는 LG서브원에 둥지를 틀었다. 유씨는 모두 4개 대기업에 최종 합격했다. 한화그룹 계열 동일석유㈜로 진로를 정했다. 김씨는 4개 회사의 최종 면접에 올라 현대 하이스코 등 두 곳에 합격했다. 장씨와 강씨는 여성 취업률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운데 나란히 2개 회사에 합격했다. 장씨와 강씨는 각각 농협과 신세계푸드에 입사했다.
SKY대 출신들이 9급 공무원 모집에 몰리는 상황에서 이들이 여러 곳의 기업에 합격한 비결은 무엇일까. 이들은 한결같이 ‘도전적이고 다양한 취업 실전훈련’을 꼽았다.
여씨는 대학생 해외탐방 공모전인 ‘글로벌 프런티어’에 입상한 것을 비롯해 20개 정도의 공모전 수상 기록을 갖고 있다. 국회ㆍ우리은행ㆍ스포츠서울 등의 인턴 경력도 있다. 2005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땐 스태프로 활동했다. 자산관리사ㆍ선물거래사 자격증도 갖고 있다.
그는 “이런 일을 오랫동안 되풀이하다 보니 자연스레 취업에 필요한 준비가 갖춰지더라”며 “눈앞의 일에 매달리지 말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웃소싱 지도사’(구매 대행 전문가) 자격증을 딴 것 외에 10여 개 기업에서 인턴 및 판매원으로 일해 본 허정석씨. 그 또한 “학교 바깥에서의 활동이 취업에 확실히 도움이 됐다”며 “다양한 외부활동을 통해 나의 강점과 적합한 직무를 찾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스펙(영어성적·학점 등 취업에 필요한 요소)’도 취업에 중요하지만 너무 얽매이지 말 것을 권했다. 김성도씨는 “스펙이 전부는 아니다”며 “정확히 얘기하면 스펙은 커트라인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7명의 토익 성적은 700~900점 수준, 학점은 평균 B~B+ 정도다.
이들은 대체로 출신 대학이 당락에 미치는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진호씨는 “서류전형까지는 영향을 미쳐도 그 이후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여씨는 “(학벌이 좋으면) 자기소개서를 대충 써도 다 붙여 주더라”며 “전혀 학벌을 고려하지 않는 기업도 있지만 어떤 회사는 일정 수준 이하의 대학은 아예 원서를 보지 않는다고 채용설명회 때 당당히 얘기하더라”고 전했다.
기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많은 인사담당자는 학벌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두산그룹 인사담당자는 “우리 그룹은 출신 대학·학점은 보지 않는다”며 “영어는 토익 700점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강민석 기자·이효정 인턴기자
취업 준비는 ‘나만의 브랜드’를 완성해가는 과정
취업은 단순히 일자리를 얻는 것 만이 아니었다. 중앙SUNDAY가 인터뷰한 7인의 신입사원에게 취업 준비에서 성공까지의 과정은 ‘자기 발견’이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 자신에게 투자했다. 공부벌레가 되기보단 일벌레가 되기 위해 저마다 독특한 경력을 쌓아 왔다. 그 결과 자신만의 차별화 포인트를 갖출 수 있었다.
여정인-풍부한 인턴 경험이 중요
20여 개의 대기업에 합격했던 여정인(경희대 경제학과)씨. 그는 ‘조폭의 추억’이 하나 있다.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의 일이다.
“칼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된 조폭이 한 분 계셨어요. 목욕을 시켜 드리려는데 저리 가라며 저를 밀치고 때리기도 했지요.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문신을 한 팔 힘이 아주 셌죠. 그런데 성실하게 대하니까 결국 친해졌어요. 사람에게 진심으로 다가서는 법을 배울 수 있었죠.”
여씨는 대학 4년 동안의 평점이 4.0 이상, 토익도 900점 이상을 얻었다. 이른바 상위권 스펙(영어성적·학점 등 취업에 필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여씨는 “스펙보다 봉사활동이나 수상 경력이 취업에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영어성적(토익 등)이나 학점은 서류전형을 통과하는 데 필수요소로 요즈음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선 어느 정도 평준화됐다. 여씨는 면접관문을 뚫기 위해서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실전훈련 경험’에서 차별화 포인트를 찾았다.
“대외활동을 많이 하면 자기소개서에 쓸 말이 많아지고, 면접 때도 할 말이 늘어나요. 여러 업종에 지원할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내공’이 알게 모르게 향상되는 것을 느끼게 돼요.”
그는 자기소개서에 구체적인 활동 내용을 적을 것을 권한다. 어떻게 적느냐에 따라 면접관의 질문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구체적인 활동을 다양하게 적어 냈기 때문에 면접관들도 결국 내가 했던 일을 물어본 경우가 많았고, 답도 쉽게 할 수 있었어요.”
면접관의 질문에 답변할 때는 ▶당당하게 ▶경험을 바탕으로 간단히 ▶과장 없이 담백하게 하라는 세 가지 원칙을 지켰다고 했다.
허정석-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
허정석(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씨는 ‘역발상’을 강조했다. 그는 남들이 잘 가지 않은 길을 골라 다닌 편이다. “남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할 때 다른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벤처중소기업학과라는 (이색) 학과에 진학하면서 (타인에 대한 나의) 차별화는 시작됐다”고 말했다.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딸 때도 특이한 것을 골랐다. 2006년 취득한 ‘아웃소싱(외부조달) 지도사’ 자격증이 그중 하나다. 아웃소싱 지도사란 아웃소싱 공급업체 선정부터 계약 체결, 성과 분석, 공급업체 및 외부 근로자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를 말한다.
“앞으로 전망이 밝은 사업 분야가 뭔지 고민하다 국내에선 생소한 아웃소싱 전문가가 유망할 것이라고 판단했죠.”
결국 그는 아웃소싱 전문업체 중 최상위권으로 꼽히는 LG그룹의 서브원에 입사하게 됐다. 아웃소싱 지도사 외에 허씨는 유통관리사(2급)·평생교육사(2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허씨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YBM·LG패션 등 10개 이상의 기업체에서 객원 마케터 등으로 일했고, 용산전자상가에서 디지털카메라를 직접 팔기도 했다. 고객관리회계(CRM) 텔레마케터, 어학원 전단지 판촉 일은 물론 호텔·웨딩홀 뷔페에서 일한 적도 있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통한) 다양한 사회 경험이 내 인생에서 첫 번째 자산”이라고 말한다.
허씨는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얻었다. “다양한 외부활동에 도전하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찾을 수 있었어요. 학벌이나 학교 브랜드보다는 개인 브랜드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요.”
그는 “영혼이 담긴 명확한 목표의식과 도전적인 자세가 있다면 취업 준비 과정은 누구에게나 ‘건설적인 성장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도-목표와 경력을 구체화하라
“’이명박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아나?’ 사장님이 면접 마지막에 딱 하나 물으시더군요. 면접자들이 아무도 손을 안 들었어요. 솔직히 나도 정답을 몰랐죠. ‘지금 말 못 하면 떨어질 텐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손을 번쩍 들었어요. 손을 든 채로 ‘정답을 말하라고 하면 어떻게 둘러대나’ 고민하고 있는데…. 사장님은 (답은 묻지 않고) 그냥 제 이름만 체크하시더군요.”
김성도(동국대 행정학과)씨는 지난해 말 봤던 현대하이스코 입사 면접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짜릿하다고 했다. 그는 이 회사 말고도 10개의 대기업 면접을 통과했다. 이 중 네 곳에서 최종합격 통지를 받았다.
“처음엔 막막했어요. 과연 나 같은 사람을 기업에서 뽑아 줄까 걱정하느라 밤잠도 설쳤죠. 합격한 사람을 보면 속이 타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김씨가 찾은 ‘미로’ 탈출 방법은 눈높이를 낮추고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이었다.
“너무 높이 바라보지 않았죠. 예컨대 인사파트처럼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자리는 적은 직무는 피하고 영업으로 목표를 통일했습니다. 표현도 ‘최고의 영업인이 되겠다’가 아니라 ‘어떤 부분에서 몇 % 올리겠다’는 식으로 했어요.”
그는 “외부활동도 단순히 무엇 무엇을 했다고 보여 주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며 “그 활동을 통해 자기가 무엇을 얻었는지 자기소개서나 면접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인녕-면접에서 열정을 보여줘라
“직무 관련 서적을 많이 읽고 인턴활동이나 학회 참석, 전문과정 수강, 아르바이트나 봉사활동, 공모전 등에 참가하는 것이 학점을 0.1점, 토익 성적을 50점 올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한화그룹 계열사인 동일석유 신입사원 유인녕(가톨릭대 경영학과)씨는 스펙보다 외부활동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구직자들의 ‘스펙 인플레이션‘이 진행될수록 다른 곳이 승부처가 된다는 게 유씨의 생각이다. 그는 3~4년 전만 해도 자신이 고스펙에 속했는데 지금 보면 평범한 스펙이 돼 버렸다고 했다.
유씨는 무엇보다 면접을 통해 채용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철저히 면접에 대비했다고 한다. 그의 면접 비결은 “깔끔한 옷차림에다 자신감을 갖고 임하는 것”이었다.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유씨는 많은 노력을 했다. 긴장하지 않으려 ‘사람 대 사람으로서 대화를 하러 가는 것이지 외계인을 만나러 가는 게 아니다’며 자기 최면을 걸었다고 한다. 나중엔 자신감이 생겨 면접관들을 웃게 만들기도 했다.
C그룹 면접 때다. 한 시간 이상 진행된 면접 중간에 유씨가 갑자기 목이 메여 기침을 했다. 유씨는 “이 회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몸에서 뿜어져 나와 그런지 오늘은 유달리 더 목이 마른 것 같습니다”고 변명(?)을 했다. 면접관은 박장대소. 나중에 유씨는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조진호-오랫동안 꾸준히 준비하라
대림산업에 입사한 조진호(외국어대 영어통역번역학과)씨는 일찌감치 ‘해외영업’ 파트로 진로를 정했다. 해외영업이란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전공인 영어를 십분 활용했다. 그에겐 군 복무시절도 ‘취업 훈련 코스’나 다를 바 없었다. 장교(ROTC)로 입대해서도 늘 해외영업과 영어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으려 했다.
“군대 병과(兵科)를 공병(工兵)으로 해서 새로운 걸 배우려 했어요. 전공이 영어여서 통역할 기회도 많았죠. 콜롬비아 부통령, 요르단 왕자가 부대를 방문했을 때는 통역도 했거든요.”
외부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엔 특히 연극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소심하던 성격이 연극을 하면서 바뀌었어요. 조직생활도 배우게 됐고, 책임감도 느꼈고.”
생활 자체를 취업에 맞추고 오랜 시간 목표에 맞게 경력을 쌓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쟁력이 생기게 됐다. 그는 대기업 면접만 30차례 정도 치렀다. 최종 합격한 기업은 5개. 하루에 네 군데씩 면접을 본 적도 있다.
그는 “쉽게 포기하거나 남들이 하는 대로 조급하게 따라가지 말고 자기의 강점을 계속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혜란-편견을 역으로 공략하라
여대생들은 “야근을 못 할 것”이란 기업 측의 편견에 시달린다. 농협에 입사한 장혜란(단국대 정보통계학과)씨는 이런 편견을 정면 돌파해 취업문을 열었다.
그는 자기소개서에 “야근도 문제없이 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 ‘작전’은 주효했다. 인사팀 직원이 “정말 야근할 수 있느냐”며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
장씨는 “자기소개서에 쓴 내용 때문에 회사 측에서 건강한 이미지, 혹은 일 시키면 잘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면접 때는 편안한 인상을 주려 노력했다고 한다.
“솔직히 질문에 대한 답변 내용보다 말하는 태도나 이미지를 더 평가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면접자 얘기를 경청하는 태도나 면접관이 말할 때 고개를 끄덕인다거나
하는 거 말이죠.”
그는 면접관들이 의도적으로 지원자의 감정을 자극해 반응을 보는 이른바 ‘압박 면접’도 차분한 태도로 극복했다.
“압박 면접으로 시작했는데 조금 지나니까 면접관들의 말투가 부드러워지더군요. 지원자가 울고 나오는 그런 압박 면접을 피할 수 있었죠.”
강혜리-애정은 튀어도 용서된다
신세계푸드에 입사하는 강혜리(동덕여대 식품영양학과)씨. 그는 “학점도 평범했고 자기소개서도 급하게 내 훌륭한 편이 아니다”고 쑥스러워한다. 강씨는 면접 때 하기 힘든 일을 했다. KBS가 방송했던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에 나온 노래(‘있을 때 잘해’)를 면접에 활용했다. 면접관이 자기소개를 주문하자 강씨는 말 대신 ‘있을 때 잘해’의 개사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있을 때 잘해 흔들리지 말고
가까이 있을 때 붙잡지 그랬어
…
이번이 마지막 마지막 기회야
이제는 마음에 두 눈을 열어 줘….”
그는 이 노래를 자신이 회사에 프러포즈하는 형식으로 바꿔 불렀다. 노래 말미엔 회사에 장미꽃을 바치는 장면도 연출했다. 강씨는 “특이한 퍼포먼스를 했는데도 면접관들이 좋게 봐 주더라”고 말했다.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은 대체로 ‘튀는 행동’은 금물이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강씨는 회사에 대한 ‘넘치는’ 애정 표현으로 ‘튀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다.
강민석 기자·이효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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