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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금융위기설 혹은 외환위기설을 제기하는 자들은 대부분 환율이 상승해야 이익을 보는 사람들로,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먼저는 수출기업을 꼽을 수 있지만, 2000년 1,100원이던 환율이 2001년 말에 1,326원까지 오르던 때에도 그런 상승을 주도적으로 이끌 정도로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이렇게 높아진 환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2007년 10월 907원을 기록하던 때에도 공개적으로 급락을 규탄하지 않았다. 따라서 수출기업이 주도적으로 ‘달러 유동성 위기설’을 제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환율 상승을 조용하게 즐겼을지는 몰라도.
다른 하나가 외환선물에 투자한 부류로 그 대부분은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금융기관들이다. 이들은 이미 여러 차례 같은 경험을 했다. 우선, 1996년부터 1997년 사이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환율 방어에 나섰을 때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1995년 말에 775원이던 환율이 1997년 말에 1,415원으로 상승했으니, 이들이 얼마나 큰 이익을 봤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정부는 환율 방어에 350억 달러 이상을 투입했고, 그들은 정부가 싼 값에 매각한 달러를 사들여 비싼 값에 되팔았다.
2000년부터 2001년 사이에 정부가 수출을 증가시켜 경제를 살린다는 미명 아래 달러를 인상시키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2000년 8월 말에 1,109원이던 환율을 2001년 말에 1,326원까지 끌어올렸고, 이 정책은 그들에게 엄청난 이익을 안겨줬다. 그들은 이런 환율 인상 정책을 미리 내다보고 외환선물을 매수했던 것인데, 달러가치가 이렇게 크게 오르자 엄청난 이익을 챙긴 것이다. 정책당국은 환율을 인상시키기 위해서 외환을 사들여야 했고, 여기에 필요한 돈을 조달해야 했다. 이렇게 발행한 국고채와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이 50조 원(약 500억 달러) 넘게 증가했는데, 그 상당 부분을 다국적 금융기관이 챙겨 갔다.
2004년부터 2006년 사이에 정부가 달러가치 하락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 말에 1,198원이던 환율이 2006년 9월에 945원까지 떨어지는 과정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환율 방어에 나섰으니, 그 손실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도박판이나 마찬가지여서 정부가 개입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역외차액선물환 거래, 즉 NDF(Non-Delivery Futures) 거래에서만 4조 원(약 4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고, 환율 방어를 위해 달러를 매매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거래 손실은 20조 원(약 200억 달러)이 넘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이것도 대부분 다국적 금융기관의 몫으로 돌아갔다. 더 한심한 일은, 정책당국이 이런 다국적 금융기관으로부터 컨설팅을 받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컨설팅을 통해 다국적 금융기관들은 우리 정책당국이 어떤 정책을 펼칠지 미리 알 수 있었고, 이 정보를 토대로 외환시장에 투자하여 안전하게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다국적 금융기관들은 분명 그 맛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마침 이명박 정부가 새로 들어서자 결정적인 기회가 또 찾아왔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성장에 전력을 다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수출을 촉진시킬 것이며,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2001년도처럼 달러를 인상시킬 것이 분명했다. 때맞춰서 2008년 초부터 국제수지도 적자로 돌아섰고 환율도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그들은 이번에도 외환시장에서 선물환 투자를 함으로써 또 한 번 큰 이익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반기에 들어서자마자 물가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안해졌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환율을 올릴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장도 갑자기 환율이 오르기 어려운 상황으로 바뀌었다. 6월에는 국제수지(경상수지)까지 흑자로 돌아섰다.
이에 따라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엄청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장차 달러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보고 선물을 매수했는데, 우리 당국이 환율을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고 국제수지까지 흑자로 돌아섬으로써 달러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점점 더 커졌던 것이다. 비싼 값에 달러선물을 샀는데 싼 값에 되팔아서 청산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큰 손실을 볼 것은 불을 보듯 훤했다. 그들로서는 ‘달러 유동성 위기설’을 제기하여 불안감이라도 조성해야 그 손실을 줄이거나 면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끝으로 꼽을 수 있는 부류는, 이와 같은 다국적 금융기관들의 술수에 부화뇌동하는 국내의 일부 경제 전문가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잘못이라면 통계조차 확인해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게 아니라면, 금융위기나 외환위기가 다시 터지기를 간절히 바랐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설마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없었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