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형태 산업구조 등장 예상

2009. 3. 31. 13:24C.E.O 경영 자료

[보스턴컨설팅그룹 김도원 파트너]

이 기사는 03월18일(15:20) 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봉골레(Vongole) 파스타의 핵심은 육수에 있다. 조개 국물이 필요하지만 닭 육수를 넣어도 맛이 산다. 미트볼(Meatball) 스파게티에 채송이버섯을 갈아 넣으면 뻑뻑함이 덜하다. 버섯이 육즙을 잡아준다.


김도원 보스턴컨설팅그룹(BCG) 파트너(40)는 가족들에 사랑받는 요리사다. 일곱살 딸과 다섯살 아들을 위해 제 맛을 내는 핵심 레시피를 준비하는 게 비결이다.

컨설팅이 필요한 고객들에게도 마찬가지. 사안의 전후 맥락을 꿰뚫는 능력이 남달라 30대에 BCG 파트너에 올랐다. 고객이 만족할 성과물을 위해서는 핵심을 파악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인수합병(M&A) 자문 분야에서 실력이 남다른 김도원 파트너가 지난 3년간 수행한 관련 자문은 80여건에 달한다.

미국 컬럼비아대와 MIT를 거친 그는 지난 몇년 간 국내 대기업들이 해외 기업을 인수한 후 통합(PMI) 작업을 할 때 중요한 전략을 지원했다. 고객 정보에 대해선 극히 말을 아꼈지만 "우리 기업의 글로벌화와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함께 연구하고 실행하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현재 위기를 바라보는 식견에 있어서는 여느 전문가보다 거시적인 관점을 가졌다. 그는 "이번 위기는 40년 주기설에 의한 것"이라며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지난 시절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시장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지금은 저점을 판단하는 것보다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작업에 나서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김도원 파트너에게 M&A 시장진단과 관련 전망을 물었다. 다음은 문답.

- 시장에서 빅딜이 실종됐다.

단기적으로 자금조달 수단(Financing)이 막혀 있다. M&A는 궁극적으로 산업 활성화를 위한 수단(Vehicle)이기에 조만간 다시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경기침체와 관련한 40년 주기설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침체가 4~5년 주기의 경기변동 결과는 분명히 아니다. 이번은 1930년대와 1970년대에 나타났던 침체에 이어 터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40년만의 변동은 산업전체의 기본토대(Fundamental)를 바꿀 것이다. 때문에 침체가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예전 시절로 경제가 다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우리는 산업적 근본이 뒤바뀌는 세대에 놓여 있다. 산업 내 기업 간 통폐합이 일어나는 시기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서 구조조정 M&A를 고려하고 있다. 시장을 미시적으로 예측하기 보다는 큰 그림을 봐야 하는 때다.

- 단기적인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것인가.

▶ 지난해 10월 리먼브라더스가 파산보호 신청을 한 후에 엘런 그린스펀 의장이 언급한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그는 "지난 20년은 유포리아(Euporia, 행복과 도취)의 시대였다"고 평가했다. 20년간 미국 경제가 부채에 의해서 인위적인 발전을 거듭했다는 의미다.


금융으로만 보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가 수백, 수천 조원의 돈을 운영했지만 그동안 위험관리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이것을 실물경제 측면에서 보면 미국의 역사를 통틀어 국내총생산(GDP)에 대비한 가계와 기업의 부채비율이 도취됐던 시대를 증명한다. 이 비율은 보통 100% 안팎을 유지했지만 70년대 초 대공황(300%) 때에 범위를 이탈했고 이후 80년대 중반부터 다시 급격히 상승했다.

부채비율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한 이유는 금융기관이 신용을 값싸게 공급하면서 실물경제를 움직이는 기업들이 생산을 늘려 소비가 진작됐기 때문이다. 이걸 M&A 시장과 결부시켜 보면 값싼 자금조달이 가능해져 사모펀드(PEF)에 의한 기업 거래가 늘어난 시기다. 특히 인수 기업의 현금흐름을 담보로 자기돈 없이도 거래를 종결하는 차입인수(LBO)가 활발했다.

- 거품이 많았다는 의미인가.

▶ 자동차 시장을 예로 들면 미국의 적정 자국 생산대수는 연 평균 1300만 대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미국은 매년 1500만 대 이상을 생산하고 소비했다. 한 해에 200만 대가 과잉 소비된 셈이다. 이런 소비력은 기업의 매출과 가치에 반영돼 M&A 시장에까지 적용돼 왔다.

물론 버블은 2000년에 몰아친 닷컴(.com)기업의 몰락으로 본질가치가 다소 반영됐지만 이후 정보기술(IT) 이외의 산업에서 통폐합(Consolidation)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최근 산업 내 1위 기업과 후발주자들의 차이가 벌어지면서 가치가 생기는 딜이 늘어났지만 많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위기가 발생했고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 산업적 혁명이 일어나는 것인가.

▶ 장기적으로 에너지 산업 분야에서 화석연료가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되는 것은 명확하다. 다만 녹색성장이 이번 위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화석연료는 전체 에너지원의 60% 가량을 차지하고 있어 그린에너지(10% 이하)가 10년 후에 곧바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대신 녹색 에너지의 원천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전쟁은 본격화될 전망이다. 사업 포트폴리오가 겹치는 대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기술 확보 노력을 치열하게 펼치고 있다. 에너지원이 되는 철광석과 석탄 광구기업의 합종연횡도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됐다.

이밖에 은행과 보험의 통폐합이 예상되고 부채로 소비가 촉진되던 자동차와 전자, IT 산업의 M&A가 늘어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전 세계의 소비주체였다고 본다면 이들을 위해 무역품을 나르던 해운과 조선의 침체도 가늠할 수 있다.

- 기업 간 양극화 가능성도 높은가.

▶ 앞서 언급한 도취의 시대는 사실 과잉투자를 어느 정도 용인했기 때문에 기업 간 경쟁이 비교적 심하지 않았다. 과잉소비가 사라지면 모든 기업들이 지금처럼 먹고 살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는 업계 3등이나 4등 이 외에는 생존이 어려운 시대가 열린다(Rule of 3, 4).

후발주자의 생존법은 틈새(Niche)시장을 파고들거나 지역(Region)에 특화하는데 집중된다. 글로벌 2, 3등이 사업 경쟁력을 잃을 경우 어떤 지역에서만 1등을 하던 후발주자가 세계적인 리더로 시장에 등장하는 게 가능하다.

- 세계 구조조정 시장을 전망한다면.

▶ 조선과 해운업은 자유무역주의 아래 성장해 왔다. 세계 각국이 경제성장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했기에 교역이 늘어났고 조선과 해운이 가장 큰 수혜를 입었다. 그러나 위기가 증폭될 수록 각국의 보호정책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거시적으로는 문제가 있지만 당장 국내 산업이 죽는데 수입을 늘릴 나라는 없다. 이 때문에 수출로 돈을 버는 한국이나 중국, 일본, 독일은 단기적으로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미국의 실업률이 10%를 돌파하면 당장 보호주의 조치가 정치권에 의해 가동될 수 있다. 최근 IBM은 인도에 두었던 글로벌 콜센터(Call center)를 미국으로 이전했다. 정부가 세금감면 등의 혜택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업 스스로 이 같은 움직임을 간파한 결과다.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자동차 산업의 경우 미국 내 소비가 지속적으로 줄어든다면 토요타나 현대차(주가,차트) 등의 현지 생산전략이 일부 후퇴할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경우 환율이 장기적으로 1300~1400원대를 유지한다면 조립공장을 미국 현지에 둘 필요성이 없다. 다만 GM이나 크라이슬러의 생존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자동차 업계의 구체적인 움직임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