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건축의 혁신

2009. 4. 5. 12:27베스트셀러 책 신간

서울 상암동에 133층짜리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잠실에는 높이 555m의 ‘제 2롯데월드’신축이 허가됐다. 이를 두고 서울의 랜드마크가 생겼다고 기뻐할 수 있지만 높은 건물 이면에는 그림자 또한 길게 늘어진다.

도시계획가는 주어진 땅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더 넓게 그리고 더 높게 공간을 확장해 왔다지만 600년의 역사를 가진 서울을 과연 ‘멋진 도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인 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서양과 한국, 도시와 건축의 불균형에 문제를 제기해 책을 쓰기 시작했다”면서 “도시의 디자인은 몇 개의 초고층 랜드마크나 상징탑을 만드는 것보다 일상의 건축을 혁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울은 인구 수나 면적 등 규모 면에서는 세계적인 대도시로 꼽힐 수 있다. 하지만 도시의 공간과 성격에 대해 접근하면 극심한 과밀에 기형적 형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저자는 ‘서울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서울의 기현상 중 하나로 도시경관을 해치는 ‘간판 홍수’를 꼽았다. 중세 이후 유럽의 도심 발전상을 살펴보면 1층은 상업공간, 2층 이상은 주거공간이나 사무공간을 결합한 ‘수직적 주상 복합’의 형태를 보인다.

따라서 유럽과 미국의 도시에서 간판은 주로 1층에만 붙는다. 반면 우리는 국토계획법과 건축법이 주거지역 내 근린생활시설을 허용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 각종 상업공간과 합쳐진 근린생활시설에는 생활에 필요한 가게부터 병원과 음식점, 부동산 중개소, 세탁소, 학원, 노래방 등이 들어서 지하부터 5~6층까지 벽면을 간판으로 도배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여기다 높은 자영업자 비율도 간판 홍수에 일조했다. 이들 자영업자의 생활 터전이 바로 대로변에 늘어선 근린생활 시설이다 보니 건물마다 간판이 넘치게 됐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근린생활시설에 노래방 같은 세속적 공간과 교회 등 성스러운 공간, 학원 같은 교육공간이 뒤섞이게 된 것에 대해 저자는 “간판은 도시와 건축물의 복합성을 드러내는 필연적 ‘현상’이 됐다”면서 “간판으로 도배한 변종 건축은 법과 제도의 탓만이 아니라 한국의 특이한 도시공간 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덧붙여 “간판의 홍수는 도쿄의 신주쿠(新宿), 홍콩의 카우룽(九龍), 상하이의 난징루(南京路)에도 있다”면서 “이는 급격한 도시화와 동서의 혼합에 따라 역사도시의 정체성이 허물어지면서 나타난 문화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책은 한국의 추사 고택과 이탈리아 중세 몬테 성을 사례로 들어 한국과 서양 건축을 비교하고 서양건축에 한 획을 그었던 거장들의 건축론, 한국적 상황을 외면한 채 맹목적으로 서양건축을 지향하는 현상을 비판한 글 등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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