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필립스 선장 구조되다.

2009. 4. 14. 07:35지구촌 소식

소말리아 인질 대치극 끝 저격수들, 해적 3명 사살 구출된 선장 "해군이 영웅"

구명정에 몸을 맡긴 소말리아 해적 4명과 세계 최강 미 해군과의 '5일 전투'는 12일 결국 해적들의 패배로 끝났다.

해적에게 납치됐던 미국 컨테이너선 머스크 앨라배마호의 선장 리처드 필립스(Phillips·53)는 무사히 구조됐다.

페르시아만과 인도양 일대를 관할하는 윌리엄 고트니(Gortney) 미 5함대 사령관은 이날 "12일 오후 필립스 선장을 붙잡고 있던 해적 4명 중 3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했다"며 "필립스 선장의 건강은 양호하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Obama) 미 대통령은 구출 직후 성명에서 필립스 선장의 구출 소식을 환영하며, "우리는 소말리아 지역에서 해적의 창궐을 막아낼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료를 잃은 해적들은 미국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다. 해적 아브둘라히 라미(Lami)는 AP통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은 슬퍼하고 통곡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소말리아 해적들의 우두머리로 알려진 아브디 가라드(Garad)도 "이 지역을 여행하는 미국인들을 사냥하겠다"고 선언했다.

AP연합뉴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지 5일 만에 구조된 미 화물선 머스크 앨라배마호의 선장 리처드 필립스(오른쪽). 구조된 직후 미 해 군 구축함 베인브리지호 선상에서 함장 프랭크 카스텔로와 인사하는 모습. /미 해군 제공.

총알 3발로 해적 3명을 사살

지난 8일 필립스 선장을 납치한 해적 4명은 머스크 앨라배마호의 구명정에 몸을 실은 채 소말리아 해역을 정처 없이 표류했다. 베인브리지호 등 최첨단 구축함들을 파견해 구명정을 포위한 미 해군은 "살고 싶다면 무조건 석방하라"고 요구했고, 해적들은 "몸값 200만달러를 주지 않으면 인질을 죽이겠다"고 맞섰다.

구명정에 식수와 식량이 떨어졌고, 해적들의 심기는 점차 날카로워졌다. 마침내 오바마 대통령은 11일 오전 "인질의 목숨이 '긴박한 위험'에 처하면 해적을 사살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다. 11일 밤 미 함정과 해적 사이에 소규모 총격전이 오갔다.

해적과 미 해군 간에는 약간의 '협력'도 있었다. 정처 없이 구명정이 해류에 밀려갈 것을 염려한 미군은 베인브리지호와 구명정을 약 30m 길이의 밧줄로 연결할 것을 요청했고, 해적들도 동의했다. 소말리아 해안에서 동쪽으로 약 32㎞ 떨어진 해상이었다. 미 해군은 식수와 식량을 구명정에 공급하기도 했다. 해적 1명은 머스크 앨라배마호 선원들과 격투하다가 다친 손을 치료해 달라며 미군에 투항했다. 대치한 해적의 수는 3명으로 줄었다.

12일 오후 7시 19분, 해적 한 명이 AK-47 소총으로 묶여 있는 필립스 선장의 등을 겨누는 모습이 구명정의 창문을 통해 포착됐다. 인질을 살해하겠다는 해적들의 위협도 거세졌다. 마침내 해적 2명이 미군의 동태를 관찰하러 구명정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 순간 베인브리지호에서 구명정을 조준하고 있던 해군 네이비실 소속 저격수들이 3발을 발사했다. 한 발은 필립스 선장에게 총을 겨누던 해적 1명을, 나머지 두 발은 머리를 내민 해적 2명을 관통했다.

국가적 영웅이 된 필립스 선장

필립스 선장이 선원들을 보호하려고 기지를 발휘하고 스스로 인질이 된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그는 미국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지난 8일 해적이 머스크 앨라배마호에 침범하자 필립스 선장은 선원들에게 선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라고 명령했다. 이어 필립스 선장은 자진해서 자신을 인질로 넘겼다. 몸값을 요구할 '인질'만 확보한다면, 해적들은 배에서 물러나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선원 한 명은 "내가 만나본, 최고로 용기있는 사람으로, 국가적 영웅"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그의 희생정신과 용기는 모든 미국인의 모델"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필립스 선장의 고향인 버몬트주 언더힐 주민들도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필립스 선장은 "나는 부차적 역할을 했을 뿐"이라며 "진정한 영웅들은 저를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 해군 네이비실 요원들"이라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첫 '군사적 위기'를 무난히 넘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WP는 "이번 사태 해결은 오바마 대통령의 첫 군사적 승리로서, 총사령관으로서의 역량을 국민과 군 장성들에게 보여줬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