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홍 강진군수,무상 영농자금 장학금사업

2009. 5. 6. 20:46분야별 성공 스토리

 

[주간조선] 억대 부농들의 마을 강진군은 다르다!

인구 4만 '깡촌'에서 연소득 1억 이상 농가만 100가구 넘어
스포츠 전지훈련지로도 각광… 떠났던 주민들도 속속 귀환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54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인구 4만명의 전남 강진에서는 몇 년 전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농촌이 싫다며 도시로 떠난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오면서 매년 1000명씩 줄던 인구 감소세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이와 함께 ‘부자 농부’들도 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연간 1억원 이상 소득을 올린 농가가 100가구를 넘어섰다. 억대 수입을 올리는 부농 수로는 전남 22개 시·군 중 2위다.

외지인들도 벽촌을 찾기 시작했다. 스포츠 선수들의 훈련 편의시설을 집중적으로 마련하면서 공기 맑은 곳에 운동하러 오는 선수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동네가 활기를 되찾으며 모든 게 조금씩 변했다. 군민들은 거액의 장학금을 마련해 학교와 학생들 지원에 나섰고, 통폐합 얘기가 나돌던 고등학교에서 최초로 서울대 합격생이 배출되고 수도권 대학 에 진학하는 졸업생도 늘어났다. 귀농 인구도 점차 늘어나 지난해에는 18가구 47명이 팍팍한 도시생활을 버리고 강진으로 돌아왔다.

신(新)농촌시대가 열리고 있는 변화의 현장을 찾아가 변화의 중심에 선 사람들을 만나봤다.

‘부농 프로그램’으로 억대 수입 올린 최광호씨

빛 2억 안고 출발해 8년 만에 영농법인 설립
郡, 시설투자 전폭 지원… 유기농 딸기로 대박

전남 강진군 군동면에 사는 최광호(40)씨는 ‘부자 농부’로 통한다. 2만4000여㎡에 달하는 비닐하우스에서 유기농 딸기와 토마토를 재배하는 그는 지난해 1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 그가 작년에 억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최적의 작물과 재배법을 선택한 데다 강진군의 적극적인 지원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유기농 딸기를 재배하며 ‘대박’의 길로 들어섰다.

비닐하우스에서 유기농 딸기를 수확 중인 최광호씨.
고설재배법.

“비닐하우스 작물 재배에서 생산비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연료비입니다. 대개 생산비의 30%가량을 차지하는데 하우스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계속 보일러를 틀어야 하기 때문이죠. 작물에 따라 적정온도가 다른데 파프리카의 경우 실내온도를 18~25도, 토마토는 15도로 유지해야 하지만 딸기는 8~10도로만 맞춰줘도 잘 자랍니다. 결국 딸기 재배가 난방용 기름을 훨씬 적게 먹는다는 계산이 나오죠.”

그가 택한 딸기 재배방식도 기존의 방식과 완전히 다르다. 밭에 비닐을 씌우고 딸기를 캐던 기존 방법과 달리 허리 높이의 철구조물 위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고설(高設) 재배법’을 도입했다. 예컨대 온돌방에서 기르던 딸기를 침대에서 기르는 것과 같다. 작업자들은 허리를 굽히지 않고도 딸기를 수확할 수 있어 1인당 수확량이 2배 이상 올라갔다. 5200㎡(1600평) 남짓한 비닐하우스 한 동의 딸기를 수확하고 선별하는 데 5명의 인원만 있으면 된다.

“요즘 농촌에서는 일손 구하기가 정말 힘듭니다. 밭에 쭈그리고 앉아서 딸기를 따다가는 골병 든다고 거들떠도 안 봅니다. 한때 외국인 인부를 고용할까도 생각했는데 외국인 인부들에게는 숙식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해서 결국 한국 사람을 쓰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더군요. 그래서 시설투자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고설재배 덕에 영양분의 공급과 통제도 훨씬 수월해졌다. 흙이 아닌 코코아나무 톱밥 위에 딸기 종자를 심고 기르기 때문이다. 흙에서 자란 딸기는 수분과 영양 흡수가 균일하지 않고 흙에서 뒹굴려 자라 모양이 들쭉날쭉하지만 고설재배 딸기는 정확한 양의 영양분만 먹고 자라 모양도 균일하게 나온다.

최씨가 재배한 고설재배 유기농 딸기는 인근 목포·광주 공판장에서 갖다 놓는 즉시 팔려나간다. 길쭉하고 모양이 좋은 딸기는 한 상자에 1만3000원(도매가), 딸기잼과 주스용으로 사용하는 작고 아담한 딸기는 2500원가량에 판매된다. 최근에는 자신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를 내걸고 직접 딸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품질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최씨는 “과거에는 배송과정에서 제품이 상해 목포와 광주 등지에만 딸기를 공급했는데 최근에는 소포장 방식으로 서울에도 올라간다”며 “내년에는 일본 수출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郡 2006년부터 ‘부농 프로그램’ 가동, 작년 477억 지원
가능성 있는 영농법인 선정해 첨단기술·경영기법 전수


그의 이런 성공담에는 강진군의 지원이 든든한 배경이 됐다. 강진군은 2006년부터 ‘부농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최씨와 같이 지역의 유망 농업인에게는 영농자금을 무상으로 집중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477억원의 농업예산을 쏟아 부었고, 올해는 25.4% 늘린 598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무상 영농자금은 영농법인을 세운 농업인에 한해 1회 수십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지원되며 상환에 대한 특별한 조건이 없다. 영농자금 지원 농가에는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첨단 재배기술과 경영기법도 전수해주고 있다. 강진군에서는 매주 ‘1억원 이상 고소득 농업인 육성 현황’을 체크하는 등 지원에 적극적이다.

그 결과 강진군에서 1억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농가는 2007년 60가구에서 지난해에는 105가구로 무려 75%나 증가했다. 전남 22개 시·군 중 억대수입 농가 수 순위도 2005년 17위에서 2006년 7위, 2007년 3위, 2008년 2위로 계속 올라가고 있다. 올해는 억대 수입 농부 140명 달성이 목표라고 한다.

강진군으로부터 시설투자비 명목의 무상 영농자금 2억6000만원가량을 지원 받은 최씨는 “대개 농사짓는 사람들이 농협이나 은행으로부터 빌리는 융자는 잘못될 경우 농민들의 목을 조르기도 한다”며 “하지만 강진군은 아무런 조건 없이 군비에서 시설투자비를 지원해 줘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강진에서 벼농사 짓는 평범한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나 농업을 배우고(강진농고·현 전남생명과학고 졸업) 농업을 천직으로 삼아왔지만 최씨가 부농의 길로 올라서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농사를 시작하면서 아버지가 이리저리 빌린 빚 2억원이 그의 책임이 됐고 누나 2명에 남동생과 여동생까지 돌봐야 했다. 그래도 최씨는 “한번 이를 악물고 성공해 보자는 마음이 있었다”고 말한다.

“농고를 졸업하고 22살 되던 해에 농협에서 1억원가량을 빌려서 콤바인과 트랙터를 1년 간격으로 마련했습니다. 당시 선친의 반대도 많았습니다. 왜 빚을 지면서 그런 기계를 장만하느냐고요. 하지만 저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농업의 미래를 곰곰이 고민해 보니 앞으로 대단위, 기계화, 법인화로 갈 수밖에 없겠더군요.”

딸기 선별작업.

그런 우여곡절 끝에 마련한 트랙터와 콤바인으로 8년간 강진군 일대의 논과 밭을 누비며 품팔이를 했다. 당시는 마을당 농기계가 1대가 채 안 되던 때라 그를 찾는 수요는 많았다. “이슬이 맺히는 밤에는 콤바인을 돌릴 수 없거든요. 그래서 밤에는 트랙터, 낮에는 콤바인으로 강진군 일대를 22살부터 8년간 누비며 일을 했지요. 그러자 영농사업에 필요한 종잣돈이 마련되더군요.”

그는 자신의 돈으로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으며 한 작물만 우직하게 고집하던 아버지 세대와 는 다른 길을 걸었다. 작황과 시장 상황에 따라 작물을 신속하게 바꾼 것이다. 파프리카, 장미, 참외, 딸기 등 지금까지 손대 보지 않은 작물이 없다.

종잣돈으로 29살 되던 해인 1999년 마을 선배 4명과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영농법인을 세웠고 지난 2004년에는 자신의 영농법인을 만들어 독자 경영에 나섰다. 2004년부터 방울토마토, 유기농 딸기 등을 기르면서 사업을 늘려간 결과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최씨는 만년 깡촌일 줄 알았던 고향에 활기가 돌고 스스로 부농 반열에 올라선 현실이 꿈만 같다고 한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던 빚 2억원도 다 갚았고 요즘은 바쁜 농사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생기면 아내와 두 아이를 차에 태우고 인근 산과 들로 소풍을 떠난다. 최근 셋째 아이를 가진 1살 연상 아내도 지금 생활에 대만족이다. 아내 신선영(41)씨는 “대도시의 직장인들은 주말이 아니면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을 내기가 힘들지만 우리는 하우스에서 매일 같이 일을 하면서 마주볼 수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공교육 살린 강진 장학금

“교육 살려야 郡이 산다” 쌈짓돈 모아 100억 조성
명문대 진학생에 장학금… 서울대 합격생도 배출

강진군이 최근 주목을 받은 것은 부농의 증가세만이 아니다. 인구 4만명의 농촌에서 100억원이 넘는 향토 장학금을 모은 것도 화제가 됐다.

강진군은 전국 232개의 시·군·구 중 재정자립도(9.1%)가 221위에 불과하다. 당연히 교육 환경이 열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만 해도 10만명이 넘던 인구가 2000년대 들어 절반 이하인 4만명 선으로 줄어든 것도 교육환경에 실망한 주민들이 다른 시·군으로 이사를 한 탓이 적지 않다.

결국 강진군에서는 “교육부터 살려야 군이 살아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2005년 4월 강진군민장학재단을 설립하면서 “교육 때문에 고향을 떠나는 일만은 막자”는 표어를 내걸었다.

그 결과 지금까지 1만974명의 군민이 어려운 살림에도 십시일반 장학금을 기부해 매년 15억~20억원을 모았다. 기부자 중에는 10만원 미만 소액기부자가 절반 이상이었다. “나는 못 배웠어도 후배들은 제대로 공부시키자”는 애향심의 발로였다. 장학금 기부에는 지금까지 강진군 287개 행정마을 중 210개 마을에서 동참해 전체 모금액이 지난 3월 현재 110억원을 넘어섰다.

향토 장학재단은 2006년부터 매년 20억원을 군내 초·중·고교에 지원해 오고 있다. 성적우수자와 명문대 진학생에게는 한 해 최대 400만원까지 지원한다. 그 결과 2005년 12명에 불과했던 수도권 대학 진학자 수가 올해 33명으로 늘었고 4년제 대학 진학자도 155명에서 217명으로 늘었다. 관내 강진고등학교는 2006년 개교 이래 첫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한 이후 4년 연속 서울대 합격생 배출 기록을 이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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