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반토막… 한국만 '멀쩡'

2009. 5. 16. 09:35부동산 정보 자료실

끄떡없던 세계 고급주택 시장도 '반토막'… 한국만 '멀쩡'
맨해튼 집값 20% 무너져도… 서울은 '우뚝'
맨해튼 1000만달러 이상 집 거래량 작년보다 90% 급감 작년 폭락했던 강남 집값은 최고점 대비 90%까지 회복

미국 뉴욕의 심장 맨해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로니 다이아몬드씨는 최근 4개월 만에 처음 웃었다.

작년 말부터 매각을 추진했던 주상복합 '코코아 익스체인지'의 방 3칸짜리 아파트 계약서에 조만간 도장을 찍는다. 매각가는 130만달러. 당초 집 주인이 요구한 가격(164만달러)보다 21%나 깎였다.

그는 FT(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100명이 넘게 집을 보고 갔다"며 "그나마 팔린 게 행운"이라고 말했다. 그에겐 매각을 의뢰받은, 같은 빌딩 내 아파트가 3채 더 남아 있다.

맨해튼은 모나코와 런던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집값이 비싼 곳이다. 그런데 이곳 주택시장이 지금 빈사상태다.

올 들어 아파트 가격은 평균 20%쯤 떨어졌다. 주택 판매량은 반토막 났고, 팔리지 않은 매물은 사상 최고치에 육박한다. 자산평가업체인 '밀러사무엘'에 따르면 현재 맨해튼에서 매물로 나온 주택만 1만1100여채에 달한다. 이 회사가 매물 재고량을 조사한 1999년 이후 최대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격 할인이 확산되고 있다. 파이낸셜 디스트릭트(Financial District)의 경우, 매물 중 3분의 1이 당초보다 가격을 깎았다. 평균 할인 폭이 11%대이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가 결코 흔들릴 것 같지 않던 고급 주택 시장마저 나락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포브스지(誌)가 미국 500개 지역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고급 주택 가격 지수'는 5월 6일 기준으로 작년 11월보다 5%쯤 하락했다. 캘리포니아와 뉴저지주의 경우, 최고 30% 이상 떨어진 곳이 적지 않다.

시장을 선도했던 고급 주택의 몰락과 함께 전 세계 주요 국가의 집값은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블룸버그의 국가별 주택가격 지수를 보면, 미국과 영국은 각각 31개월과 18개월 연속 하락세를 지속하며 최고점 대비 각각 30.7%와 19.4% 떨어졌다. 홍콩은 작년 3분기의 정점에 비해 반년 만에 25% 떨어졌고, 스페인은 4분기째 마이너스 행진이다. 〈그래프 참조〉

그런데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한국은 요지부동이다. 국민은행의 전국 주택 매매가격지수는 4월 들어 상승세로 돌아섰으며, 작년 9월의 정점에 비해 2.1% 내린 데 불과하다. 한때 하향세였던 서울 강남·서초·강동구 등 고가 주택 밀집지역은 4월에만 1% 안팎 올랐다.

할리우드 톱스타 커플인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가 지난해 3년 약정으로 42억원의 임차료를 주고 빌렸던 프랑스 남부의 17세기풍 초호화 저택‘샤토 미라발’. 35개의 침실과 20개의 분수₩헬 기장을 갖춘 이 저택은 숲과 호수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으며 진입로만 4.8km에 달한다./AP

고급 주택 시장은 작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터지기 이전까지만 해도 황금기를 구가했었다.

영국 자산컨설팅사인 '나이트프랭크'의 경우, 작년 상반기만 해도 1000만유로를 넘는 고급 주택 판매 실적이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100%나 늘어날 정도였다. 이 회사 관계자는 "대부분 국가에서 고급 주택 가격은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10~15%씩 상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리먼 사태 이후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그동안 고급 주택 시장의 큰손이었던 금융인들이 지갑을 닫은 것. 보너스가 대폭 삭감됐고,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해고 위험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월가에서 일자리를 잃은 금융인이 지난 2월까지 2만3300명에 이르며, 2010년까지 18만명이 쫓겨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은행 임직원의 보너스도 40% 이상 깎인 곳이 수두룩하다. 월가의 회복에 맨해튼 집값의 운명이 달려 있는 셈이다.

고급 주택 시장에서도 특히 타격이 큰 것은 최고급 주택이다. 맨해튼의 경우 1000만달러 이상 주택은 거래량이 작년보다 90%쯤 급감했다. 코코란그룹의 파멜라 리브먼(Liebman) CEO는 "작년 초만 해도 고급 주택을 사는 걸 승리의 상징으로 생각했다"면서 "이젠 와인룸이나 홈피트니스 시설을 갖춘 집을 사면 낭비로 여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맨해튼과 함께 대표적인 고급 휴양 주택지인 햄프턴(Hampton)도 동반 추락하고 있다. 이곳은 뉴욕에서 동쪽으로 100마일쯤 떨어진 해변 도시다.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창업주 스티븐 슈워츠먼, 유명한 헤지펀드 매니저인 존 폴슨, 골드만삭스 CEO 로이드 블랭크페인 등 월가 재력가들의 세컨드 하우스(별장)가 대거 몰려 있다.

그러나 이 지역 집값도 작년보다 평균 30%쯤 떨어졌고, 거래량 역시 절반 이하로 줄었다. 현지 중개업자는 "매도자는 영어로 말하고, 구매자는 중국어로 말하는 상황"이라면서 호가(呼價) 차이가 너무 커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고급 주택 붐의 조연이었던 러시아·인도·중국 등 신흥 국가의 갑부(甲富)들도 주식시장에서 큰 손실을 보면서 고급 주택 쇼핑을 자제하고 있다. 런던의 경우 고급 주택이 밀집한 첼시·켄싱턴 등에서 떼로 몰려다니며 집을 샀던 러시아 갑부들이 사라졌다고 이코노미스트지(誌)는 전했다. 외국인에게 최고의 휴양 주거지로 꼽히며 세계 최고 집값을 자랑하던 모나코도 비슷하다. 모나코의 집값은 2007년만 해도 ㎡당 10만유로를 넘었다. 그러나 지금은 5만유로 대로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