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20. 07:43ㆍ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박찬욱감독,
[스포츠서울닷컴ㅣ칸(프랑스)=특별취재팀] 15일(현지시간) 밤 11시경. 한 이탈리아 여자가 뤼미에르 극장 밖으로 뛰쳐나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그녀에게 왜 나왔냐고 묻자 한 마디 말로 대신했다.
"테러블(terrible)" 끔찍하다는 이야기였다.
자정을 넘겨 16일 새벽 1시 20분 경. 한 프랑스 여자가 상기된 표정으로 극장 밖으로 나왔다. 홍조를 띄고 있지만 그녀의 표정은 분명 긍정적이었다. 영화가 어땠냐고 묻자 그녀는 엄지 손가락부터 치켜 세웠다.
"판타스틱(fantastic)" 환상적이었다는 답변이었다.
단적인 예지만 현지 반응은 극과 극을 달렸다. 마치 좁혀질 수 없는 평행선처럼 어떤 이는 '최고'라고 평했고, 또 어떤 이는 '최악'이라며 불쾌해했다. 칸국제영화제 속 '박쥐'에 대한 반응은 이처럼 호불호가 분명했다.
같은 영화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갈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10여명의 외신기자와 10여명의 현지관객에게 물었다. 그 결과 하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눈'으로 보느냐, 혹은 '머리'로 보느냐에 따라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한쪽 날개는 하늘을 향해, 반대쪽 날개는 땅을 향해…. '박쥐'는 바다 건너 칸에서도 여전히 '갈지자'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영화 '박쥐'의 두 얼굴을 찾아봤다. 그 뒤에 숨어있는 표정 변화의 원인도 살폈다.
◆ 머리로 보는 관객…"너 어떤 영화니?"
'박쥐'에 고개를 내저은 관객들은 하나같이 "왜"라는 물음을 던졌다. 신부가 된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야기의 얼개는 물론이고 영화 후반 무차별하게 진행되는 피범벅 장면 등은 무엇을 말하기 위해 설정된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전했다. 무엇보다 그같은 장치들이 너무 선정적이고 과격해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15일 오후 공식 스크리닝 후 만난 스페인 관객 마리오 잉글레스 씨는 "박찬욱 감독이 만든 멜로 영화라는 정보를 접하고 관람했더니 완전히 속은 기분이다"며 "타락한 신부와 그를 광적으로 사랑하는 여자의 의미없는 살육 행각이 불편하고 불쾌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쥐'의 난해함에 불평을 표한 것은 일반 관객 뿐만이 아니었다. 일부 외신들은 리뷰 기사를 통해 혹평했다. 미국의 버라이어티지는 "진정한 영감의 수혈이 심각하게 필요한, 지나치게 길고 음침한 코미디"라고 평했으며 프랑스의 르 몽드는 "방자하고 멍청하며 우스꽝스러운 괴기주의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악평을 쏟아붓기도 했다.
영화 전문 기자들 역시도 이야기의 불친절함과 표현 방식의 낯설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사회 직후 기자가 만난 이탈리아의 영화잡지 듀얼랑티의 기자 칼리오 체틸리안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게 와닿지 않았다"며 "오로지 스타일만을 과시하려는 뱀파이어 호러물 같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네덜란드의 ANF NEWS AGENCY의 기자 뮤랏 아크다스는 "박 감독 특유의 블랙 유머, 환상적인 카메라 워킹 등 스타일리쉬함은 높게 평가한다"고 운을 뗀 뒤 "그러나 왜 저렇게 잔인하고 과격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여러개의 에피소드를 질서없이 엮어놓은 것처럼 무질서하기까지 하다"고 혹평했다.
◆ 눈으로 보는 관객…"오감이 자극된다"
그러나 혹평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관객들은 표현 방식의 독창성에 열광했고 스타일리쉬한 영상에 감탄했다. 특히 개성을 중시하는 프랑스 관객과 언론은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찬욱 감독의 오랜 팬이라고 밝힌 프랑스의 영화감독 엔리크 지오다노는 "환상적인 영화"라고 언급했다. 그는 "구원과 죄의식이라는 박찬욱 감독의 일관된 메시지가 강렬한 이야기와 영상에 의해 완벽하게 구현됐다"며 "올드보이 만큼이나 뛰어난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프랑스 문화잡지 스내치의 루카스 로빈 기자는 "시각과 청각을 자극 시켜준 멋진 영화"였다며 "박찬욱 감독 특유의 영상 미학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섰다"고 평가했다.
영화 제작자 에니디에 프랑퀴스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그의 작품들 중 가장 스타일리쉬하고 짜릿한 쾌감을 주는 영화"라며 "화면 속 파랑과 빨강, 피와 물의 대비되는 이미지 등은 잊지못할 강렬함을 선사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타임지도 '박쥐'를 호평하며 한발 앞서 수상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타임지의 기자 리차드 콜리스는 리뷰 기사를 통해 "박 감독의 영화 중 가장 풍부하며, 가장 파격적이며, 가장 성숙한 작품"이라며 "환희와 엑스터시, 고통, 체액, 그 중에서도 특히 피가 빠지지 않는 이 애정극은 놀라운 즐거움을 전한다"고 평가했다.
◆ "혹하거나, 토하거나"…엇갈린 반응 왜?
칸영화제에서 진행된 5차례의 시사회를 통해서 드러났듯 '박쥐'에 대한 평가는 양극단을 달리고 있다. 같은 영화를 관람했음에도 일부 관객은 강렬함에 매혹됐고 또 다른 관객은 잔인함에 구토 증세를 보이는 등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박쥐'의 표현 방식은 분명 강렬하고 새롭다. 그러나 이야기의 완결성이 떨어지고 폭력성이 짙다는 것도 부정하기 힘든 평가다.
이같은 '박쥐'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영화를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눈으로 즐길 것인가 머리로 즐길 것인가 혹은 작품에 대한 가치를 표현의 창의성에 두느냐 아니면 이야기 완결성에 두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궁극적으로 나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고 싶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박쥐'를 둘러싼 상반된 평가는 의미있는 논쟁이라 할 수 있다.
<칸영화제 특별취재팀>
취재=이명구·임근호·송은주·김지혜기자
사진=김용덕·이승훈기자, 김주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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