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 “대형마트엔 없는 정(情)도 팔아요”
5일 오후 4시, 방학동 도깨비시장은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린이의 손을 잡고 아동복을 사러 온 부모, 팔짱을 끼고 장을 보는 부부, 야채 등을 담은 검은 봉지를 차곡차곡 자전거 앞 바구니에 쌓은 주부, 동생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 등. ‘재래시장이 죽어간다’는 말은 최소한 이 곳, 방학동 도깨비시장에서만큼은 사실이 아니었다.
5일 오후 4시쯤, 사람들이 방학동 도깨비 시장 입구에 들어서고 있다. 입구 안 쪽으로 북적이는 도깨비시장이 보인다. 사진 송현경 기자
1980년대 초, 노점이 들어서면서 만들어진 이 시장은 단속반이 노점을 단속하면 상인들이 사라졌다가 단속반이 가면 다시 나타나는 게 순식간에 이뤄져 마치 도깨비 같다는 이유로 ‘도깨비시장’이 됐다.
방학동 도깨비시장은 2000년대 초만해도 다른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대형 마트 때문에 한산했다.
방학동 도깨비시장이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5~6년 전. 대형 마트의 공격적인 전략에 대항해 상인들이 모여 조합을 결성, 다양한 할인행사와 경품행사, 이벤트를 하면서 도깨비시장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싸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방학동 도깨비시장의 첫인상은 깔끔했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방학동 도깨비시장 동편’ ‘방학동 도깨비시장 서편’이라는 대형 출입구가 마련돼 있고, 입구에는 ‘서울시 지정 원산지표시제 시범 재래시장’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어 신뢰를 준다.
각 점포의 간판들은 주로 청색과 흰색으로 통일돼 있고, 원 모양 돌출형 간판이 따로 있어 시장 입구에 서면 한눈에 어디에 무슨 가게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시장을 전부 연결해 지붕을 만들어 비가 와도 시장을 찾은 사람들이 우산을 쓸 필요가 없게 배려했다.
대부분의 점포들은 ‘꿀수박 10000원’에 X표를 치고 ‘8000원’이라고 써 놓거나 상인들이 나서 ‘남대문, 인터넷의 반값’이라며 호객행위를 하는 등 ‘싸다’는 것을 강조했다.
방학동 도깨비시장이 싸다는 것은 손님들도 인정한다. 이애영(50)씨는 “대형 마트도 가지만 여기가 먹을거리가 신선하고, 싸서 거의 매일 온다. 경동 시장에 가 봐도 여기랑 가격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ㄱ정육점 앞에 10여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 가 보니 오픈 세일을 하고 있었다. 6월 29일부터 시작한 세일은 원래 4일까지였는데 호응이 좋아 하루 더 늘려 진행하고 있었다. 손님들의 호응이 좋아 고기를 썰어 내놓기 바쁘게 사람들이 사갔다.
이 정육점은 세일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대형 마트처럼 전단지를 만들어 돌렸다. ‘오픈 축하 기절초풍 노마진 퍼레이드’라는 이름 아래 전단지를 만들고 5000원, 10000원 단위로 쿠폰을 줘 20만원 이상 사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사장은 손이 바빠 인터뷰를 할 시간도 없다며 미안해 할 정도였다. 이방미(55)씨는 “1뭉치씩 2개를 샀다. 다른 데서 사는 것보다 5000~6000원은 싸게 샀다”면서 “1뭉치는 우리 식구들 것이고, 다른 뭉치는 다른 식구 나눠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상인은 “도깨비시장은 대형마트에서는 없는 정이 넘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자전거를 끌고 도깨비시장을 찾은 이씨는 “오늘은 소고기, 가지, 상추, 찐 옥수수 등을 샀다. 저녁거리, 간식거리다”면서 “이 곳을 이용한 지 10년 정도 됐다. 시장에 오면 노래자랑도 하고, 수박 먹기 대회 등을 해서 구경하기도 좋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집은 상계동이다. 자전거를 타고 오면 30분 정도 걸린다. 운동도 할 겸 온다”고 덧붙였다.
김, 튀각 등을 파는 점포를 운영하는 신난주(64)씨는 “상인 조합에서 운영을 잘 하고 있다. 광고도 하고,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홍보한다. 물건도 좋고, 싸다. 원산지에서 가져와 거의 마진 없이 팔 때도 있다”면서 “무엇보다도 ‘손님이 왕’이라는 자세로 일한다. 손님이랑 싸우는 상인들이 한 명도 없다. 그러니 사람들이 멀리서도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