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과 여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몰(mall)은 그 효시가 1877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엠마뉴엘 광장에 만들어진 대형 야외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조선 후기의 시전(市廛)도 교통로의 요충지에 세워진 물화(物貨) 교역의 장소뿐만 아니라 유흥 놀이의 중심이었다. 시전의 주막은 술집, 식당, 숙박업을 겸했고 기존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난장’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근 지역의 거상들이 놀이패에게 돈을 줘 연희가 계속 이어지도록 해 남사당패놀이, 씨름과 윷놀이 등 민속놀이가 펼쳐졌다. 시장경제가 태동하던 조선시대 시전은 사람들에게 상업의 중심뿐만 아니라 놀이와 화합의 장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었다.
현대 의미의 몰은 1956년 오스트리아계 이민자인 빅터 그루엔이 미국 미네소타의 에디나에 세운 사우스 데일 센터로, 지붕을 씌워 날씨로부터 자유로운 최초의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몰의 천국이라고 할 만큼 각 타운마다 하나씩, 전국적으로 수만 개의 몰이 발달돼 있다. 몰에서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쇼핑 공간이 아니라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까지 이웃들이 모이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가득한 문화 공간이다.
복합 상업 시설이 몰 형태로 대형화되면서 나타난 주요한 개념이 바로 ‘몰링’이다.
몰링이란 쉽게 말해 고객들이 상업 시설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고객들은 상업시설 내에 있는 매장 및 식당, 극장, 이벤트장, 광장, 서점, 문화센터 등을 돌아다니며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를 위해 처음
설계에서부터 철저하게 고객들의 동선을 계산해 군데군데마다 흥미 유발 요소를 심어 놓고 다양한 이벤트와 공연을 통해 더 많은 고객이 더 오랜 시간 머무르도록 기획된 상업 시설이 바로 몰이다. 이러한 동선 기획은 몰의 상권 활성화와 긴밀히 연결돼 보유자(투자자)에게는 가치와 수익률 상승을, 임차인에게는 많은 매출을, 그리고 이용자에게는 편익을 가져다주도록 설계돼 있다.
국제적으로 대표적인 몰은 미국의 ‘몰오브아메리카’, 일본의 ‘캐널시티’, ‘도쿄 미드타운’, ‘오모테산도 힐즈’, 홍콩의 ‘하버 시티’가 있다. 이곳들은 쇼핑 공간의 역할을 넘어 이제는 관광지나 지역의 랜드마크로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의 사우스코스트플라자는 26만㎡ 규모로 연간 24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하는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의 포럼숍도 일정 시간별로 다양한 공연이 열려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하는 관광객의 3분의 2에 달하는 2500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
지난 2007년에 문을 연 ‘도쿄 미드타운’은 건평 약 6만8900㎡에 ‘도시 기능의 컬래버레이션(협조)’이라는 콘셉트의 복합단지다. 이곳에는 현재 정보기술(IT) 기업과 금융 관련 기업, 특급 호텔, 아파트, 고급 쇼핑센터, 병원 등이 입주해 있고 산토리 미술관, 디자인 전문 전시관, 디자인 산학협동 기관 등이 들어서 있다.
몰링을 전면에 내세우는 유통업계현재 우리나라에서 몰링을 할 수 있는 ‘복합 쇼핑몰’은 용산의 ‘아이파크몰’을 비롯해 삼성동의 ‘코엑스몰’, 일산의 ‘라페스타’ 등이다. 이들 1세대 쇼핑몰과 함께 현재 오픈을 준비 중인 영등포의 ‘타임스퀘어’를 비롯해 일산의 ‘레이킨스몰’, 김포의 ‘스카이시티’, 장지동의 ‘가든파이브’까지 그 규모만도 백화점의 3~15배 크기인 10만~50만㎡(3만~14만 평)에 달한다.
지난해 LG경제연구원은 5대 트렌드 중 하나로 몰링을 꼽았다. 현재 성숙화 단계인 백화점, 대형 유통점의 유통 구조에서 이제는 ‘몰링의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유통점에 비해 몰은 점포 구성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고객 연령대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백화점의 주 고객이 40대 이상의 중년 여성이고, 대형 유통점의 주 고객이 30~40대의 여성인데 비해 용산 아이파크몰의 경우 고객을 연령별로 보면 20대에서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고루 분포하고 있다.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고객도 전체 몰 이용객 중 10%를 상회하고 있다.
유통업계는 트렌드의 격전지라고 불린다. 유통업계의 최신 트렌드는 소비(Shopping)가 아닌 문화(Malling)로 변화하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