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풋볼(미식축구)에 열광하나

2009. 9. 22. 08:45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미국은 왜 풋볼(미식축구)에 열광하나

2009년 09월 22일 (화) 03:25   유코피아

[유코피아닷컴=박현일 기자, ukopia.com]미국의 9월은 바야흐로 풋볼(미식축구)의 계절이다. 대학풋볼과 프로풋볼(NFL)이 개막돼 요즘 미국의 신문은 온통 풋볼기사로 넘쳐난다. 아무리 대공황에 버금간다는 경제위기라지만 게임이 있는 날엔 경기장마다 팬들로 꽉꽉 찬다.

세계축구의 제전인 월드컵은 여자축구경기 정도로만 알고 있는 미국인들. 몇해 전 여론조사결과 거의 70%가 이같은 응답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미아 햄이란 걸출한 스타가 세계 여자축구계를 휘저어 '월드컵=여자축구'란 등식이 머릿속에 입력돼 있는 것이다. 풋볼만이 진정한 축구로 생각하는 미국.

미국인들은 왜 풋볼에 열광하는 걸까.

풋볼과 전쟁은 불가분의 함수관계가 있다. '풋볼스타들의 무덤'이라고까지 불렸던 전쟁은 다름아닌 한국전. 1950년 10월 중공군의 갑작스런 참전으로 한미 연합군은 지리멸렬, 기세가 크게 꺾였다.

그러자 유엔군 총사령관을 겸했던 맥아더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웨스트포인트 출신의 풋볼 선수들을 최전방에 배치하라." 풋볼의 전술 전략과 희생정신, 그리고 용맹함을 실전에 대입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공군의 인해전술 앞에선 속수무책, 대부분 전장에서 산화하고 말았다. 이들이 차례로 전사했다는 보고를 받은 맥아더는 도쿄의 집무실 도어를 걸어 잠그고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맥아더는 왜 그토록 풋볼에 집착했을까. 육사 교장 시절 맥아더는 풋볼을 정규과목으로 가르치도록 했다. 웨스트포인트의 모토도 새로 만들었다. '전쟁에서 승리외엔 대안이 없다'(In War, There's No Substitute for the Victory). 이 때문인지 웨스트포인트는 대학풋볼의 최강자가 될 수 있었다.

참모총장 재임시절에도 그는 빈스 롬바디(수퍼보울의 창시자)를 육사로 보내 선수들을 직접 선정하도록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독일군 포로들에게도 풋볼을 가르쳤다는 게 기록에 나온다. 믿기지 않겠지만 애리조나에도 포로 수용소가 있었다. 대부분 북아프리카의 롬멜 전차군단 소속 병사들이었다.

연합군이 노먼디에 상륙하기 전이어서 포로들을 수용할 곳이 미국 밖엔 없었던 탓이다.

미군 교관은 포로들에게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풋볼에 빗대어 설명했다. 쿼터백은 공격을 지휘하는 포지션. 기업으로 치면 생산과 판매를 책임맡은 CEO다. 패스가 터치다운으로 연결되면 득점, 곧 이익을 창출해 낸다며 시장경제의 원리를 알기쉽게 풀이해 줬다.

"전쟁이 국력인 시대는 끝났다. 이젠 경제다." 처음엔 포로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문제는 풋볼의 복잡한 규정. 툭하면 휘슬을 불어 반칙을 선언, 그것도 벌로 10~20야드 뒤로 물러나 공격을 하라니 맘에 들지 않은 것.

그래도 룰을 지켜야 하는 게 민주주의라며 풋볼을 강요했으나 포로들은 막무가내 고개를 저었다. 축구공을 달라는 게 아닌가.

결국 두손을 들고 만 미군. 축구(soccer)는 유럽의 사회주의 독재국가에서나 하는 스포츠라는 결론을 내렸다. 풋볼(football) 곧 자본주의가 싫다니 독일의 장래는 없다고 본 것.

그러나 독일이 경제강국으로 거듭난 걸 보면 축구도 풋볼 못지 않은 시장경제의 원리가 적용되는 모양이다.

알고 보면 풋볼은 경제와도 관련이 깊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주식시장 예측 지수 가운데 가장 적중률이 높은 게 바로 '수퍼보울 지수'(Super Bowl Indicator)다.

프로풋불(NFL)은 NFC와 AFC 양대 리그가 있어 각 컨퍼런스의 우승팀이 수퍼보울에서 한판 승부를 겨룬다. NFC에 속한 팀이 우승하면 그해 경기는 장밋빛이라는 것.

예를 들어보자. 지난 1995년 NFC 소속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우승을 차지했을 때 그해 다우존스가 35%나 뛰었다. 그러나 AFC 팀이 챔피언이 되면 경기가 바닥을 쳤다.

지난 2001년 우승한 팀은 AFC의 볼티모어 레이븐스. 수퍼보울 지수 탓인지는 몰라도 미국의 10년 호황이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른바 '닷컴 버블'이 터져 실리콘 밸리는 불황의 먹구름이 짙게 깔렸다.

지난 30여 년 동안 수퍼보울 지수의 적중률은 무려 80%.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교수라도 이 정도의 정확한 예측은 못한다.

지난해 수퍼보울 우승팀은 NFC 소속의 뉴욕 자이언츠. 증시가 '서브프라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가 팽배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주가는 곤두박질 쳤다. '이젠 수퍼보울 지수도 수명이 끝났네'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일부에선 NFC팀이 이겼길레 그 정도로 선방했지 AFC 소속팀이 우승했으면 대공황에 버금가는 미증유의 사태가 빚어졌을 것이라며 수퍼보울 지수 옹호론을 펼쳤다.

내년 초 수퍼보울은 어느 소속 팀이 이길까. NFC 팀이 이기면 경제가 터치다운의 희열을 느끼게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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