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국,'한국 천재들의 조련사'

2009. 10. 18. 11:30분야별 성공 스토리

[Why][왜 그는] '한국 천재들의 조련사' 이충국 CMS 에듀케이션 대표

"세계 1%의 아이들, 한국을 혁신적으로 바꿀 것"
전국 돌며 뛰어난 학생들 모아 교육·관리해주며 천재성 키워
"2020년 아이들과 다시 모여 주주회사 만들기로 약속했죠"

이충국(李忠國·46) CMS 에듀케이션 대표가 11세 정경훈을 찾았다. "수학천재라며? 목표가 뭐니?" 소년이 오히려 이씨에게 물었다. "선생님, 개와 사람이 100m달리기 하면 누가 이기는지 아세요? 개가 이겨요."

"사람은 100m가 목표지만 개는 목표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을 이긴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과 함께 '이게 바로 천재구나' 하고 실감했다"고 했다. 1997년의 일이다.

그 뒤 본격적인 그의 '천재수집'이 시작됐다. 그가 가르친 이석형(18)은 미 스탠퍼드대에 진학해 작년 북미지역 대학생 수학경시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최우수 성적자 5명 안에 들었다. 스탠퍼드에서도 이군의 수상은 최초였다.

이수홍은 올해 15세 3개월로 역대 최연소 서울대 합격을 했다. 그는 '도전 골든벨'을 울린 적도 있다. 손범준(15)은 올해 한국과학영재학교에 수학과학통합 수석으로 합격했다. 2007년에는 오규진(16)이 당시 중학교 1학년의 나이로 영재학교 수학부문 최연소 수석 합격했다.

이씨가 2004년부터 '조련'한 천재 17명은 모두 스탠퍼드, 서울대, 카이스트, 성균관대 반도체공학과, 영재학교에 진학했다. 이씨는 "이들이 문제를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구조를 분석하는 수준"이라며 "400쪽짜리 수학서적 원서를 읽고 '이 수학자 참 대단하다'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이충국 대표의 휴대폰 뒷자리 번호는 2020년을 뜻하는 '2020'이다. 그의 아들의 번호는 '2030', 딸은 '2050'이다.“이 천재들이 성장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지켜보라는 의미예요.”이씨는 '2020 프로젝트'가 자식들에게 더 큰 것을 남겨줄 것이라고 믿는다.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그는 왜 천재를 모으기 시작했을까. 전남 화순군에서 태어난 이씨는 1982년 대학에 입학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며 혼란을 느꼈던 그는 항상 명쾌한 답이 있는 수학이 좋았다.

그러나 그는 수학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돈 많이 버는 사업가가 꿈이었다. "어릴 적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항상 배를 주렸어요. 사업가가 돼 풍요롭게 살고 싶었어요."

이씨는 "대학생 때 독서실 총무를 하면서 사업을 시작할 자신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15일에 한 번씩 학생들의 행동기록을 조사해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새벽 2시에 학생들이 떠나면 2시간 동안 청소하고 냉수로 샤워한 뒤 옥탑 물탱크에서 잠을 청했다. "3년간 이렇게 생활했더니 무슨 일이든 자신이 생겼어요. 워낙 가진 것이 없으니 나보다 머리 좋은 천재들을 교육해 함께 고부가가치 사업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체계적으로 인재를 교육하고 양성하려는 시도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천재에게 투자하는 게 국가적 차원에서도, 투자의 가치차원에서도 현명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때부터 이씨의 천재 사랑이 시작됐다.

1991년 그는 학원강사로 일을 시작했다. 서울 노량진에서 수학강사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는 새 사업을 구상했다. 천재와 영재 교육에 관한 책을 모두 독파했고 그들을 위한 교안을 따로 준비했다. 1995년에는 상담심리학 석사학위도 취득했다. 1997년 그는 학원을 차리고 영재와 천재들만을 위한 교실을 따로 마련했다. 이씨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뛰어난 천재성을 보이는 아이들을 스카우트했다.

"직접 찾아가서 취지를 설명하고 설득하고 신뢰를 얻는 데 긴 시간이 걸렸어요. 그렇게 스카우트한 아이들에게 많은 정성을 쏟았죠." 성장을 거듭한 학원이 2001년 설립된 CMS영재스쿨이다.

어느 정도 토양을 일군 그는 2004년부터 본격적인 '2020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천재성을 보인 학생들을 선발해 교육과 관리를 해주고 2020년에는 한국에서 실력을 펼치도록 돕는 사업이다.

이씨는 "세계 1%라 할 이들이 나중에 우리나라를 혁신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천재 지킴이' 활동을 자기만 할 수 있다고 했다. 천재를 모국으로 부르는 건 돈이 아니라 오랜 정서적 공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과 1년에 2차례 캠프를 간다. 두 달에 한 번 세미나와 저명인사를 초청한 사회화 교육을 한다. 필요한 아이에게는 특정 분야 전문가와 개인교습도 지원한다. 이씨는 "이는 효율을 따지는 기업은 못 할 일"이라고 했다.

"한번은 아이들과 캠프를 갔다가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경기를 봤어요. 안타 하나에 울고 웃던 아이들에게 제가 이런 말을 했어요. '너희가 외국에 나가면 뛰어난 머리로 아마 잘 먹고 잘살 거다. 그러나 조국은 인재를 잃을 것이다. 지금 너희가 무엇 때문에 흥분하고 즐거워했는지 생각해봐라.' 아이들도 제 뜻을 알고 2020년에는 한국에 돌아온다고 말하더군요."

그는 "2020년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동등하게 수익을 배분하는 'n분의 1' 주주회사를 만들자고 약속했다"고 했다. 2020년은 이 천재들이 고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딴 후 유명 기업에서 3년 정도 근무할 때다.

이씨는 "n분의 1 주주회사는 뛰어난 학문과 기술을 연마한 아이들을 외국에 뺏기지 않을 일종의 장치"라고 했다. "처음에는 천재성을 가진 아이들과 함께 사업을 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이제는 목표가 변한 거죠.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아이들이 한국에 있다면 우리나라 전체로 봤을 때 좋은 것 아니겠어요."

그에게 "글로벌 시대라는 말을 들어봤느냐"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글로벌 시대라지만 국가와 국경, 국력은 엄연히 존재하잖아요. 제가 아직 덜 글로벌화됐는지도 모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