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재벌 31곳 분석

2009. 10. 26. 16:05이슈 뉴스스크랩

[한겨레] 공정위, 재벌 31곳 분석


SK 총수일가 지분 가장낮아 0.87%, 삼성 1.07%


26곳 내부지분율은 52.6%…1년새 1.8%p 상승


지주회사 돼도 마찬가지…'포이즌필' 등 명분 실종

재벌 총수 일가의 주식 지분은 줄어드는데 계열사의 출자가 늘면서 재벌의 소유-지배 간 괴리가 더욱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중인 재벌의 경영권 방어 강화를 위한 '포이즌필'(독약 조항) 도입, 지주회사제 및 금산(금융-산업자본)분리 완화정책을 그대로 밀어붙이기에는 그만큼 명분이 약해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올 4월1일 기준으로 자산이 5조원 이상이면서 총수가 있는 31개 상호출자제한 재벌을 분석한 결과, 재벌 총수가 지배권을 행사하는 내부지분율(총수 일가·계열사 지분을 합친 것)이 53%에 이르러, 절반을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25일 발표했다.

이 가운데 지난해에 이어 연속으로 상호출자가 제한된 총수 있는 재벌 26곳은 총수 일가가 평균 2.44%의 지분만 갖고서, 48.41%에 이르는 계열사·임원 지분을 동원해, 그룹 전체로 52.6%의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내부지분율은 지난해보다 1.8%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그만큼 총수 지배력이 강화된 것이다. 총수 일가 지분이 가장 낮은 곳은 에스케이 0.87%, 삼성 1.07% 등이었다. 후진적 재벌 소유지배구조의 단적인 예인 순환출자도 삼성·현대차·에스케이·롯데 등 12개 그룹에 여전히 남아 있다. 또 총수 일가의 주식이 단 한 주도 없는 계열사도 갈수록 늘어, 70%에 이르렀다.

공정위의 고병희 기업집단과장은 "지난 20년간 재벌 소유구조 추이를 보면 총수 일가 지분은 꾸준히 감소해 4% 중반대로 낮아지고, 반면 계열사 지분은 꾸준히 늘어 40% 후반대로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결국 총수 일가의 소유지분은 계속 줄어드는데, 실제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분은 갈수록 커지면서, 소유-지배 간 괴리가 더욱 심해진 것이다. 이처럼 재벌의 소유구조가 악화되고, 총수 일가가 지배권을 행사하는 지분이 50%를 넘는 상황에서, 정부가 재벌의 경영권 방어를 강화한다며 포이즌필을 도입하려는 데 대해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총수가 있으면서 지주회사로 전환한 11개 재벌의 내부지분율은 53.24%로, 나머지 일반 재벌과 별 차이가 없었다. 또 이들의 총수 일가 지분(5.15%)과 계열사 지분(45.68%)도 다른 일반 재벌과 0.59~1.05%포인트 차이에 불과했다. 정부는 소유구조가 단순·투명하다는 이유로 재벌의 지주회사제 전환을 유도하면서 규제를 대폭 풀고 있는데, 지주회사 그룹의 소유-지배 간 괴리가 다른 일반 그룹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역시 명분이 약해졌다.

재벌의 금융 진출은 갈수록 늘어, 총수가 있는 31개 재벌 중에서 금융보험사를 갖고 있는 곳은 21개로 3분의 2에 달했다. 지난 한 해 동안 현대차의 에이치엠시(HMC)투자증권, 현대중공업의 하이투자증권·하이자산운용, 지에스(GS)의 지에스자산운용, 두산의 비앤지증권중개·네오플럭스피이에프 등 6곳이 순증했다. 재벌이 소속 금융보험사의 고객 돈으로 다른 계열사를 지원해 지배력을 확대하는 행위도 여전했다. 총수가 있는 14개 재벌에 속한 30개 금융보험사의 다른 계열사 출자금은 1조6625억원으로 한 해 동안 10.4% 늘고, 평균 지분율도 13.57%로 2.83%포인트 높아졌다. 소속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출자가 가장 많이 늘어난 재벌은 동부·현대중·현대·동양·대한전선 등이었다.

경제개혁연대의 김상조 소장은 "지난해 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출자가 가장 많이 늘어난 5개 재벌 중에서 3곳은 유동성 위기로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했다"며 "엠비가 강행중인 금산분리 완화는 평소에는 폐해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경영 위기를 맞으면 고객 돈을 계열사 출자·지원으로 빼돌려 총수의 사금고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