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부자들 5만원 신권 사재기 왜?

2009. 10. 30. 09:24이슈 뉴스스크랩

강남 부자들 5만원 신권 사재기 왜?

[조선일보] 2009년 10월 30일(금) 오전 02:57   가| 이메일| 프린트
서울 강남구 한 은행의 A지점장은 최근 빳빳한 5만원짜리 신권을 네 다발이나 구하느라 진땀을 흘렸습니다. 초우량 고객이 5만원 신권을 2000만원어치 구해달라고 요청해 왔는데, 은행 금고에 그렇게 많은 금액을 갖고 있지 않아서였습니다. A지점장은 "VIP 고객들이 5만원 신권을 많이 찾는데, 원하는 물량을 100% 채워주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거액 자산가들이 많이 사는 서울 강남구·서초구·송파구 지역의 은행에서 요즘 5만원 신권 사재기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부자들이 안방 금고 속에 보관하는 화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0달러 지폐가 1순위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환율 변동이 극심해지면서 5만원 신권이 그 자리를 대신 꿰찼다는 겁니다. 5만원 지폐는 금액도 크기 때문에 금고 속에 꽉꽉 채우면 10억원은 가볍게 넘긴다고 합니다.


최근 강남의 유명 계(契)들이 전부 깨지면서 현금 보관으로 선회한 부자들이 늘었고, 이들을 중심으로 5만원 권 수요가 더욱 늘어났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여기에다 내년부터 자금세탁방지법이 더 빡빡해져서 은행에서 현금을 하루에 2000만원 이상 거래하면 금융정보분석원에 자동 보고된다는 점도 5만원 화폐 사재기를 부추기는 원인입니다. 지금은 3000만원 이상 거래할 경우 보고 대상입니다. 대부분의 부자들은 돈거래 내역이 남에게 알려지는 걸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기준이 더 엄격해지기 전에 현찰을 집에 두둑이 쌓아두려는 거죠.

신사임당 지폐가 세상에 나온 지 넉 달이나 지났지만 실제로 유통되는 돈이라고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방의 소규모 점포에선 5만원 신권 품귀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만원 지폐는 지금까지 1억5000만장 넘게 발행됐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3장꼴이죠. 하지만 3장은커녕, 1장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강지현 하나은행 PB팀장은 "5만원 지폐가 집에 보관하기 용이해서인지 은행보다 집에 돈을 보관하겠다는 고객들이 늘고 있어 난감하다"고 말했습니다. 부자들은 보관하는 현금을 자식 증여에 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전문가들은 "금융거래와 재산내역, 증여 여부를 추적하는 금융감독시스템이 나날이 발전하고 치밀해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나중에 목돈을 넘겨받은 자녀가 낭패를 보기 쉽다"고 지적합니다. 점점 투명해지는 신용사회의 흐름에 맞게 세금 내고 떳떳이 거래하는 것이 길게 보면 이익이라는 것이죠.




[이경은 기자 diva@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