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개발기업 완커 왕스회장

2009. 11. 3. 09:32건축 정보 자료실

금융위기 직전에 집값폭락 예측…할인판매 `적중`
주식회사로 전환때 모든 지분 무상 포기…월급쟁이 CEO 자처

◆ 중국 스타기업 / ⑧ 주택개발기업 완커 왕스회장 ◆

중국 전자상거래 업계에 알리바바, 가전업계에 하이얼이 있다면 부동산업계에는 완커가 있다. 현재 중국 내 최대 주택개발전문기업으로 꼽히는 곳이다.

지난해 이 회사가 시공한 주택 면적은 523만㎡가 넘고 주택 판매액도 400억위안을 크게 웃돈다. 올해 들어서는 9월에만 54억6000만위안에 달하는 부동산을 판매했고 1~9월 누계로는 461억5000만위안을 기록해 지난해 전체 실적을 웃돌 정도로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완커는 회사 전반에 걸친 브랜드 인지도가 매우 높다. 2003~2004년 하이얼에 이어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2위에 오를 정도였다. 지난해 쓰촨 대지진 때 피해성금 모금과 관련해 물의를 일으키면서 시민들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완커는 여전히 중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아파트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성공한 중국 기업 가운데 제조업체가 아닌 곳으로 완커는 특히 두드러진다.

완커가 이처럼 성공가도를 달리는 데는 중국 부동산시장을 꿰뚫고 있는 창업주 왕스 회장(58ㆍ사진)이 버티고 있어서다. 중국 부동산업계 대부로 불리는 왕 회장은 완커를 만들었지만 회사를 키우기 위해 스스로 지분을 내놓고 월급쟁이를 자처했다.

1951년 광시좡족자치구 류저우시에서 태어난 왕 회장은 철도대학을 졸업한 뒤 1980년 광둥성 대외경제위원회에 들어가 6년가량 기업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왕 회장은 "도박ㆍ마약ㆍ음란 행위를 빼고는 안 해본 게 없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무역은 물론 의류ㆍ시계ㆍ음료ㆍ인쇄공장까지 닥치는 대로 사업에 나서 돈을 모았다. 그가 사업에서 본격적인 도약기를 맞은 것은 1988년부터다. 회사 이름을 완커로 바꾸고 형태도 주식회사로 전환해 건설업에 뛰어들며 환골탈태했다.

주식제 전환과 함께 그는 지분을 무상으로 포기하고 월급쟁이 최고경영자(CEO)로 남았다.

왕 회장은 1997년 부동산 외에 다른 업종에 해당하는 사업을 모두 매각해 완커를 주택건설전문업체로 변모시켰다. 그는 돈이 많이 묶이는 상업용 부동산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분양해서 수익을 빨리 낼 수 있는 주택에 집중하고 자본 효율을 높여 기술개발과 고품질 설계를 추구했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완커는 1988년 이후 20년간 연평균 31.4%에 달하는 매출성장률을 올렸다. 시장점유율은 2.34%에 달한다. 중국부동산협회에 등록된 2100여 개 기업 가운데 1위다.

왕 회장은 1998년 대표이사 직을 내놓고 이사회 회장으로 물러나 일상적인 경영에서는 손을 뗐다. 물론 지금도 중요한 전략적 결정에는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왕 회장은 완커의 최대 무형자산이다. 그의 얼굴이 곧 완커 로고라고 할 정도다. 그는 매년 주주총회에 참석해 시장전략을 직접 설명한다.

왕 회장은 시장을 읽는 능력이 탁월한 데다 부동산업체 가운데 가장 먼저 주식회사제를 완성했고 1991년에는 선전증권거래소에 두 번째로 상장해 풍부한 자금조달에 성공했다. 또 고가 낙찰과 고품질 아파트 개발을 병행하며 과감히 투자하고 선진공법 개발에도 적극 나서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아파트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왕 회장 능력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앞서 2007년 말 아파트 분양가를 대폭 할인하면서 한층 빛을 발했다. 베이징ㆍ상하이ㆍ선전 등 대도시에서는 아파트값이 천정부지일 때였다.

지난해 초부터는 분양가를 30%까지도 내렸다. 곧 고점 논쟁이 불붙으며 중국 부동산 가격은 폭락세로 돌아섰다. 일각에서는 반값으로 떨어진 아파트도 속출했다.

완커는 미리 손을 쓴 덕에 위기 속에서도 성장세를 이을 수 있었다. 완커가 지금까지도 고속 성장가도를 달리는 것은 이런 왕 회장의 혜안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이징 = 장종회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