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너쉽 구축=생존

2010. 2. 19. 19:53C.E.O 경영 자료

매주 열리는 삼성 사장단 강좌 들여다보니… 세상 흐름이 읽힌다

국민일보 | 입력 2010.02.19 18:30

 

"국적, 호적, 전공을 버리고 문명의 바다로 나가라." "몽골제국처럼 포용력으로 세계 시장을 제패하라." "미래 기업의 생존 키워드는 디자인이다."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40여명은 매주 수요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사옥에 모여 이런 내용의 강의를 듣는다. 삼성 사장단협의회 수요 회의에선 그룹의 현안과 경제 동향도 논의되지만 외부 인사 강연이 자주 이뤄진다. 언뜻 한가한 교양수업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삼성 사장들이 세상의 흐름을 읽고, 현안문제의 해결점을 찾고, 미래를 대응하는 강좌다.

그동안 '글로벌 진출'과 관련된 주제가 가장 많이 다뤄졌다. 지난 17일 회의엔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나와 "바다를 장악한 나라는 근대국가로 성장했고 그러지 못한 나라는 도태됐다"고 말했다. 국가든 기업이든 세계와의 적극적인 소통이 성공의 열쇠라는 메시지다.

지난달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사회는 '내치의 늪'에서 벗어나 문명의 바다로 나가야 한다"며 삼성을 비롯한 기업들이 3적(국적, 호적, 전적)을 버릴 것을 주문했다.

중화문명권에 속한 호적(戶籍)과 한국 국적(國籍)에서 벗어나 지구촌 공영에 기여하고, 하드웨어 중심의 전적(專籍·전공)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융합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4월엔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가 몽골제국의 경영비법에 대해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인구와 경제력, 문화수준이 취약했던 몽골이 세계 제국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로 정복한 지역의 문화와 인력을 널리 포용한 점을 들었다. 이는 기업의 해외 진출 시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연결된다.

거대 신흥시장은 CEO들의 중요한 공부 대상이다. 지난 10일 김찬완 한국외대 인도어과 교수가 인도를, 지난해 6월엔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중국을 분석했다.

글로벌 기업 경쟁력의 키워드로 떠오른 '브랜드'와 '디자인'도 특강에서 다뤄졌다. 2008년 11월 서초동으로 사옥을 옮긴 뒤 처음 열린 회의는 박찬수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의 '전략적 브랜드 관리' 강의를 듣는 것이었다.

지난해 5월엔 영국 디자인기업 '탠저린'의 이돈태 공동대표가 나와 "보통 좌뇌가 발달한 CEO가 우뇌를 많이 쓰는 디자인 전문가와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그 기업이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설파했다.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사장들의 관심도 특강 주제에 반영됐다. 지난해 10월 초청된 고규영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는 "바이오 신약 제조는 IT 산업과 비슷해 삼성에 적합한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엔 남궁은 명지대 환경생명공학과 교수가 "20세기가 석유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물의 시대"라며 물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삼성 관계자는 "사장단협의회의 특강은 외부에서 지혜를 찾는 것"이라며 "비즈니스와 무관해 보이는 강좌에서도 사장들이 저마다 상상력을 발휘해 경영과 연결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