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김창우]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세계 어느 나라도 ‘운(運) 서비스 산업’의 규모를 공식적으로 집계하지 않는다. 산업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믿을 만한 통계를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규모임엔 틀림없다. 한국에서만 운세 산업 규모가 4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점을 보고 부적을 사는 등의 직접적인 소비뿐 아니라 운과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를 감안하면 실제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운세 산업이 특히 활발한 나라는 중국이다. 홍콩이 그 진원지 역할을 한다. 본토가 사회주의 정부의 주도로 관련 산업을 규제하는 동안 홍콩에서 명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특히 ‘펑수이(風水)’라고 불리는 풍수가 주를 이룬다. 1990년 완공된 중국은행 홍콩지점 건물을 둘러싼 HSBC와의 분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은행 빌딩은 칼날 같은 외관에 외벽을 모두 유리로 둘러 기가 센 건물로 통한다. 이 건물은 85년 완공된 HSBC를 겨누는 형태다. 홍콩 반환을 앞둔 중국이 영국 기운을 꺾기 위해 이런 모습을 택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자 HSBC는 옥상에 중국은행을 겨누는 대포 모양의 조각품을 두 개 세웠다. 칼을 대포로 응수하겠다는 뜻이다.
리펄스베이 호텔도 풍수에 따라 지은 건물이다. 37층 건물 중앙에 6층 규모의 직사각형 구멍이 뚫려 있다. 뒷산에 살고 있는 용이 매일 바다로 드나드는 통로를 마련한 것이다. 2005년 개장한 홍콩 디즈니랜드도 땅 기운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정문이 한쪽으로 2도 정도 틀어지게 설계했다. 건물을 지을 때 풍수가들에겐 적지 않은 보수가 지급됐다는 게 일반적인 추측이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풍수는 본토로 역상륙했다. 최근에는 중국 허베이(河北)성 가오이(高邑)현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6차선 도로 한복판에 갑자기 소규모 공원이 들어선 것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네티즌들은 “이 도로의 풍수가 좋지 않아 정부 건물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소문이 돌더니 갑자기 공원이 들어섰다”고 주장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자본주의 바람을 타고 일부 관료가 공산주의 사상을 포기한 채 풍수와 미신을 신봉, 사회적 해악이 되고 있다”며 미신 척결 운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택시 운전사까지 ‘복을 가져다준다’며 마오쩌뚱의 사진을 부적 삼아 차 안에 모셔놓는 게 중국인들이다. 정부가 나선다고 쉽게 막아지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한국의 운세 산업도 번창일로다. 랭키닷컴에 따르면 관련 온라인 사이트는 191개. 이 분야 1위인 ‘신비운’의 경우 시간당 방문자가 지난해 말 2만 명 수준에서 올 2월 들어서는 4만2000명까지 늘었다. 전체 사이트 가운데 방문자 순위도 지난해 1000위 밖이었지만 지난주에는 628위로 올라섰다. 업계에서는 인기 있는 온라인 운세사이트의 매출이 연 1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네이버·다음·네이트 등 포털에서 운세서비스 이용자도 일주일에 60만~100만 명에 달한다. 네이버 조사에 따르면 이용자 가운데 남성은 사주, 여성은 궁합을 선호한다. 남자는 30~40대가 많지만 여성은 20대가 가장 많은 것도 특징이다.
오프라인의 운세 서비스 인기도 여전하다. 서울 미아리·인사동 등은 전통적인 점집 타운이다. 여전히 고객이 몰린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엔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와 홍대 앞 홍통거리로 중심축이 이동했다. 이곳에 잇따라 사주카페·역술카페 등이 문을 열면서 새로운 유행을 이끌고 있다. 주머니가 가벼운 20대 고객들이 주 고객이다. 5000~2만원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복채로 사주나 궁합·관상은 물론 구슬점·타로카드 등 서양 점을 봐 준다. 홍대앞 ‘타로와 사주’ 관계자는 “젊은층들이 거리낌없이 드나들 수 있는 밝고 가벼운 환경을 만든 것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그는 “점으로 길흉을 알려주기보다 정신과 의사처럼 고객의 맺힌 곳을 풀어주는 상담 역할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국역술인협회는 한국의 운세 산업 규모를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백운산 중앙협회장은 “철학관 등을 운영하는 역술인 30만 명에 무속인이 15만 명에 달하며 초보 역술인들까지 감안하면 50만 명을 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평균 연 400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면 운세 산업 규모는 2조원에 달한다. 부적·굿 등이나 사주카페·온라인사이트 등을 감안하면 4조원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로또 시장과 맞먹는 수준이다.
합리적이라는 구미에서도 점성술 등의 인기는 꾸준하다. 미국 내셔널사이언스파운데이션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39%가 점성술이 과학적이라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 타임스는 2008년 말부터 이어진 경기 침체로 점성술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시간당 100달러 이상을 받는 점성술사들의 예약이 꽉 차고 일부 유명 점성술사는 1분당 20달러를 받기도 한다.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MBA)의 지타 조어 교수는 “사람들이 최근의 불경기로 뭔가 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듯하다”고 분석했다. 현재 미국에는 ‘애스트롤로저 펀드’를 비롯한 수십 개의 점성술 펀드가 운영 중이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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