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드미스 경제학 ◆

2010. 3. 10. 08:49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 골드미스 경제학 ◆

골드미스에 대한 세간의 인식과 실제 그들의 삶, 생각들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매경이코노미는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골드미스 기준에 부합하는 이들을 직접 만나봤다. 이들은 '능력 있지만 드세다' '결혼은 안 한다' 등의 이미지에 대해 오해라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능력 있고 이혼사유가 합당하다면 돌싱도 좋다' 등에서는 공감하며 한목소리를 냈다. 가감없는 표현을 위해 참여자 중 일부는 본인 의사를 존중해 가명,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했음을 알려둔다.

↑ 이정훈 국내은행 계장

↑ 윤지현 국내증권사 대리

↑ 박선영 교수(오른쪽에서 세 번째), 김희원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 장소협찬:프로젝트민트

▶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골드미스가 간다' 등 '골드미스'를 소재로 한 TV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가히 골드미스 전성시대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골드미스의 전형으로 인식되는 분들인데, 스스로도 골드미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나요?

박선영 :

현재 SBS '골드미스가 간다'에서 팀 코디를 하고 있어요. 그간 일에만 파묻혀 살면서 내가 골드미스인지조차 인식 못 하고 살았는데, 방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보니 막내급인 신봉선 씨나 이인혜 씨보다 '맏언니' 양정아 씨에게 더욱 공감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면서 새삼 '내 나이가 정말 많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혼자 사는 게 편하고 아직도 한없이 어린 것 같은데, 후배들에게 '노처녀'라고 놀림당하고 '미혼'이라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이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은근히 눈치 주는 걸 느낄 때마다 당황스럽기도 해요.

이정훈 :

골드미스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골병 든 미스'의 준말인가 하면서 우스갯소리처럼 넘겼어요. 은행에 근무하면서 어머니뻘 되는 고객분을 상대할 경우가 많아요. 다들 "아직까지 (결혼)안 했어? 직장 좋겠다, 인물(?) 좋겠다, 주변에 있는 놈하고 그냥 (결혼)해. 다 그놈이 그놈이야"라며 재촉하세요. 그럴 때마다 '내가 결혼적령기를 넘기긴 넘겼나보다' 싶은 생각이 들긴 해요.

윤지현 :

백화점의 고가브랜드에서 DM(광고우편물) 등을 받았을 때 '내가 주요마케팅 대상이구나'라며 실감한 적은 있어요.

▶ 골드미스는 '결혼 안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이푸르네 :

결혼을 '아직 안 한' 사람이라 보는 게 더 적합하지 않을까요? 주변에 아직 결혼 안 한 친구들(이제 몇 안되지만) 중 결혼 절대 안 한다는 친구는 없어요. 그리고 일에 너무 치중해 결혼을 아직 못한 사람이라는 것도 맞지 않는 듯해요. 일이나 성공을 좇느라 결혼을 못 했다기보다는 아직 본인의 짝을 만나지 못한 것뿐 아닐까요?

김희원 :

저도 나이에 연연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지 않았고,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서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골드미스들은 사랑을 기다리고, 또 사랑이 있음을 믿어요. 운명적인 사랑 말이지요. 결혼을 안 할 생각은 없고, 단지 일을 포기할 만큼 사랑할 사람을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 봅니다. 물론 나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긴 해요. 솔직히 뉴욕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자고 마음먹고 떠났는데 그 속에는 한국남자가 꼭 아니더라도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겠다는 묘한 설렘도 있긴 했어요.

최선숙 :

우리 사회는 미혼자, 특히 여성 미혼자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습니다. 비슷한 또래의 잘난 남자들은 이미 품절(sold-out, 품절남은 결혼한 남성을 의미)됐고 남은 이들은 무능력하거나, 배가 심하게 나왔거나, 성격이 무난하지 않은 경우가 많더라고요.

연하로 눈을 돌려봐도 어중간한 서너 살 연하는 이미 품절남이에요. 10살 연하 남성들은 매력적이긴 하지만 지적 수준이나 경험 등에서 대화상대가 되지 않고요. 저는 요즘 골드미스에게 더 어울리는 짝은 왕자님보다는 '마당쇠'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 흔히 '골드미스는 너무 잘났고 드세서 다가가기 힘들다'고 인식하잖아요.

이정훈 :

그럼 골드미스였다가 결혼하고 나면 바로 잘나고 드센 게 바로 없어지나요?(웃음)

김희원 :

연륜(?)이 쌓이다 보니 아는 게 많아서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해요. 사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잘 모르는 것을 알려주면서 뿌듯함을 느끼잖아요. 그런데 우리 같은 골드미스들에게는 그런 우쭐함을 느끼기 어려우니, 아예 한켠으로 밀어버리는 건 아닐까요?

박선영 :

의외로 골드미스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헛똑똑이'들이 참 많습니다. 공적인 일로 거절은 잘 하지만 사적으로는 거절을 못 해 손해볼 때도 많고요.

▶ 그럼 도대체 어떤 조건의 배우자를 찾는 겁니까?

이정훈 :

조건요? 제가 무슨 조건을 따져요?(좌중 웃음)

윤지현 :

지금까지 3~4회 정도 연애를 해봤어요. 결혼이 둘만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다 보니 맘대로 되지 않았지만요. 배우자감은 느낌이 좋고 잘 통하는 사람이면 돼요. 어느 정도의 경제력이 뒷받침되면서도 이왕이면 호남형이 더 좋고요.

김희원 :

저는 연하도 좋아요. 여자를 리드할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는 연하였으면 합니다.

최선숙 :

배우자의 경제력은 중요한 문제라고 봐요. 이 나이에 경제적으로 고생하고 싶지 않거든요. 특히 결혼해서 아이가 생길 경우 돈 문제로 교육, 육아에 대해 고민하고 싶지 않아요.

이푸르네 :

연봉이 저보다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향후 일정 기간 수입이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요. 또 본인이나 집안에 빚이 있으면 절대 안된다 등의 조건들은 포기할 수 없죠.

▶ 그런 조건을 가진 나이 맞는 미혼남이 별로 없지 않은가요? '돌싱(돌아온 싱글, 이혼남)'과의 결혼도 괜찮다는 인식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윤지현 :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전 돌싱은 고려해보지 않았어요.

이푸르네 :

전 돌싱에 대한 생각이 약간씩 바뀌고 있는 상황입니다. '절대 안됨'에서 '싱글보다 괜찮은 돌싱도 있을 거다'라는 쪽으로요.

최선숙 :

저도 공감해요. 단 이혼사유가 명확하고 합리적이며 아이가 없는 돌싱이어야지요.

김희원 :

맞아요. 특히 이혼사유가 중요해요. 단순히 성격차이 정도면 괜찮지만 남자가 바람을 피웠던 전력이 있다면 용서가 안 되죠.

▶ 살림도 잘하고 일도 잘하는 슈퍼맘도 존재합니다. 가끔 그런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은 안 듭니까?

박선영 :

제가 차인표스타일리스트를 하고 있어서 신애라 씨도 잘 아는데요. 신애라 씨를 보면 정말 대단해요. 일도 잘 하고 아이들 교육도 너무 똑 소리 나게 하지요. 저도 결혼하면 꼭 저렇게 돼야겠다고 다짐은 하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어요.

최선숙 :

전 별 감흥이 없어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니까요.

▶ 산업계에서는 '골드미스'를 떠오르는 소비층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박선영 :

패션분야에 종사하다 보니 아무래도 쇼핑에 지출이 많은 편이지요. 특히 가방은 일종의 투자라 생각해요. 가격이 700만원이 넘더라도 한정판이면 주저 않고 지릅니다. 옷과 신발까지 포함하면 수입의 3분의 2가 들어간다고 볼 수 있지요.

김희원 :

주변 골드미스 분들이 다 비슷한 거 같아요. 저는 크게 옷, 액세서리, 여행을 꼽고 싶어요. 한편으론 골드미스들이 '우리나라에 없는 것을 사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골드미스들은 여행을 자주 합니다.

이정훈 :

전 자기관리를 위한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에요. 자격증은 기본이고, 춤과 운동에도 관심이 많아요. 몇 년 전부터 살사를 추기 시작해 사내 동호회도 만들었답니다.

최선숙 :

요즘 꽂힌 건 미술품이에요. 서울은 물론 지방에서 하는 아트페어도 꼭 갑니다. 틈날 때마다 좋은 그림이 있으면 사모으기 시작해 지금은 10여점이 넘어요. 초기엔 300만원짜리를 샀는데 지금은 단위가 1000만원대로 넘어갔습니다.

▶ 현재를 멋지게 사는 건 좋은데 그러면 노후에 대한 불안감은 결혼한 여성보다 더 클 것 같은데요.

윤지현 :

시간이 갈수록 배우자의 경제력을 보는 것도 길어지는 노후생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죠.

김정연 :

우리끼리는 좀 있으면 '독거노인' 될 텐데 그 전에 빨리 결혼하자는 얘길 하기도 합니다. 제 친구 골드미스는 종신보험을 들었어요. 영영 결혼 못 하고 죽으면 누가 장례식을 치러주겠느냐면서, 조카에게 자기 종신보험 타서 장례식 치러달라 부탁했답니다. 농담처럼 "야, 누구 좋으라고 종신보험이냐, 연금보험이나 들어라" 했지만 얼마나 슬프던지요.

▶ 갑자기 독거노인, 종신보험 이런 얘기가 나오니 듣는 저도 침울해집니다. 사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두운 부분도 많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최선숙 :

그나마 30대는 미혼남이나 연하남, 아이 없는 돌싱이라는 조건을 내세울 수 있지만 40대 선배 골드미스들은 아예 포기하거나 아이 있는 돌싱과도 결혼할 수 있다 생각하더라고요. 아이 있는 돌싱 중 최고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경제력도 뒷받침돼서 아이들을 모두 유학 보내놓은 덕분에 양육부담이 없는 돌싱이란 말도 있어요.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나도 얼마 안 남았다 생각이 들어 서글퍼져요.

김정연 :

회식자리에서 상사나 거래처 관계자가 농 반 진 반으로 '아가씨랑 블루스 한번 춰봐야지'하는 얘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집에 가서 목 놓아 통곡했어요. 그럴 때 정말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요.

최선숙 :

제 친구 중 정말 잘 나가는 골드미스가 있는데 어느 날 골드미스라는 주제로 방송에 나갔어요. 그 방송을 본 친구 엄마가 엄청 우셨대요. '넌 아무리 화려하다 떠들어도 보는 엄마 눈에는 너무 처량하고 불쌍하게 보인다'면서. 그 친구는 그 다음부터 '골드미스'의 '골'자만 나와도 스트레스 받아요.

■ 참여자 : 김정연 외국계회사 CFO(가명), 김희원 뉴욕주재 패션사업가, 박선영 서울예술종합학교 패션예술학부 겸임교수(스타일리스트), 윤지현 국내증권사 대리, 이정훈 국내은행 계장, 이푸르네 외국계기업 임원, 최선숙 변호사(가명) (가나다 순, 이하 직책 생략)

[박수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