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남아돌아도 수출 못해…빗장 서둘러 풀자

2010. 3. 26. 09:15이슈 뉴스스크랩

쌀 남아돌아도 수출 못해…빗장 서둘러 풀자
[매일경제] 2010년 03월 25일(목) 오후 05:46   가| 이메일| 프린트

Agrigento Korea 첨단농업 富國의 길 ③ ◆

"수출이 늘면 해외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기 때문에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요즘 같은 세계화 시대에 아직도 이 같은 '해괴한 논리'가 적용되는 분야가 있다. 지난해 100만t이 남아돌아 골칫덩이가 되고 있는 쌀이 바로 그것이다. 남아돌아도 수출을 제한하고 있는 이 한 편의 코미디는 쌀 시장 관세화(개방) 유예에서 시작됐다. 국내 시장을 막아놓은 상태에서 수출을 늘리면 쌀 수출국으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염려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실제로 쌀을 수출하려면 농수산물유통공사(aT센터)로부터 추천서를 받아야 한다. 국내 쌀 가격의 평균값 이하로 수출을 하면 추천서를 받을 수 없다. 또 연간 수출 물량 한도도 4만7000t으로 정해져 있다. 전형적인 '쇄국' 산업이다.

aT센터의 현재 수출단가 기준은 20㎏에 3만6000원 선. aT센터 측은 덤핑 수출을 막기 위한 명분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쌀 소비자가격이 3만5000원 선이고, 가공용 쌀은 1만9000원 선이다. 오히려 국내 가격보다 더 비싸게 받아야 수출할 수 있는 셈이다.

aT센터 관계자는 "수출가 기준을 국내 쌀값의 단순 평균으로 정하는데, 경기미나 이천쌀 등 고급 쌀이 5만~6만원에 달하기 때문에 수출가가 오히려 시장가보다 높아진다"며 "대외에 밝히지 말라는 정부 지침이 있어 정확한 수출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다 보니 국내 업체가 쌀을 수출하려 해도 수출단가 기준 때문에 발목이 잡히고 있다. 올해 쌀 재고량만 99만5000t에 달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수출을 제한하는 셈이다.

그러나 동남아 등지에서는 한국산 쌀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전언. 동남아에서 초밥을 많이 먹으면서 길쭉한 동남아 지역 쌀 대신 한국ㆍ일본 쌀을 찾는 소비층이 늘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업체가 미국ㆍ아일랜드 등지에 쌀을 수출하는 등 한국산 쌀의 인지도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특히 가격이 싼 재고 쌀의 경우는 3만6000원 위로 수출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4만7000t의 수출 물량 제한도 '난센스'다. 지난해 쌀 수출량은 4500t에 불과해 큰 의미는 없지만 개방 압력을 우려해 수출물량에 제한을 둔 것이다.

쌀이 넘쳐나고 있지만 쌀 수입은 역으로 늘려야 하는 판국이다. 최소시장접근(MMAㆍMinimum Market Access) 제도 때문이다.

우리는 쌀 관세화를 이행하지 않는 대신 일정 물량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고 있다. 외국산 쌀이 국내 쌀 산업을 고사시킬 것이라는 염려에 따라 우리나라는 관세화 시기를 지속적으로 미뤄 왔다. 만약 조기 관세화를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2014년까지 쌀을 의무 수입해야 한다. 수입 물량은 올해 30만7000t에서 지속적으로 늘어나 2014년에는 40만9000t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쌀 수출국들과 협상을 통해 쌀을 조기에 관세화하면 의무수입물량을 늘리지 않고 현행대로 고정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시장에서 쌀 수입이 늘어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국제 쌀값 상승으로 국내산과 가격차가 갈수록 좁혀지고 있어 쌀 수입에 따른 이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망에 따르면 만약 2011년 쌀을 관세화할 경우 2015년에는 8만2000여 t의 쌀을 덜 수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연간 1000억원가량의 외화를 아낄 수 있는 셈이다.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쌀 소비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관세화 유예를 지속하면 수입량 증가로 쌀 재고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쌀 수급관리에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이미 들어온 MMA 쌀 물량도 골칫거리다. 지난해 쌀 수입량은 25만7000t이지만 국산 쌀도 남아도는 판국에 이를 처리할 방안도 마땅치 않다.

단기적으로는 쌀가루 이용 확산이나 막걸리 등 주류에 쓰이는 쌀을 늘리는 것이 해결책으로 꼽힌다. 일본처럼 우리 농산물 식단을 장려하는 '식육(食育)' 캠페인을 통해 쌀 소비를 늘리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임정빈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는 "해외 식량원조를 확대하면 국가 이미지를 높이면서 쌀 수급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위협받는 식량안보…해외농지 지원 늘려야
'식량 1400만t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대안은?' 매일경제국내 곡물 수요량 중 70% 이상을 수입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해외농업 진출을 전담하는 '해외농업개발공사' 설립을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밀 콩 옥수수 원당 등 대부분 곡물을 수입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08년 곡물파동 이후 한국 식품값은 10%가 뛰었다. 이는 우리나라 곡물 수입의존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보다 곡물 자급률이 낮은 일본은 3% 이하 상승률을 보였다. 그 이유는 일본이 브라질 등지에서 농지를 지속적으로 개척해왔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를 통해 정부와 민간이 역할을 분담해 안정적인 수급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한국의 해외농업 개발은 부족한 면이 많다. 그 이유는 민간기업들은 연해주에 진출하는 등 나름대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반면 정부 지원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보조하는 해외농업 관련 사업 예산이 연간 30억원에 불과한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해외농업 개발 지원 부족뿐만 아니라 주요 곡물에 대한 비축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일본은 옥수수 등 사료곡물에 대한 비축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위기 때 물량 조절을 통해 가격을 떠받칠 수 있는 힘이 있다.

중국은 곡물파동 때 오히려 식품값이 하락한 것이 상당량의 곡물을 비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중국의 곡물 비축량은 무려 연간 소비량의 3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한국도 하루속히 곡물비축센터를 설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잠재적 귀농인구 745만명
농지 알선부터 기술교육,컨설팅까지 원스톱서비스 지원할 국가기구 필요
= 우리나라에는 영농조합 5075개, 농업회사 928개 등 6000개가 넘는 농업법인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의 평균 매출액은 18억원, 영업이익률은 1.7%에 그치는 영세한 수준이다.

농민 5명만 뭉치면 농업법인을 만들 수 있고 법인세 감면이나 정부 보조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법인체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현장에서 농업법인을 경영하는 농민들의 애로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생산부터 농자재 구매, 유통, 마케팅 등 모든 과정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농산물을 수출하려는 농업법인들은 당장 어디서부터 단추를 끼워야 할지 막막할 정도다.

매일경제는 24일 제17차 비전코리아 국민보고대회에서 대형 농업법인을 키우기 위한 정책 프로그램이 절실하다는 제안을 내놨다.

1187개에 달하는 지역농협을 통폐합해 규모화하고 일반 농업회사도 자발적인 인수ㆍ합병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네덜란드와 뉴질랜드 등 농업 선진국들의 성공 비결은 농민조합이나 농업법인의 대형화였다. 표준화를 통한 고품질의 농산물 생산과 유통업체에 대한 막강한 교섭력이 핵심 성공요인이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부실 농업법인에 대한 퇴출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귀농에 대해서도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712만명에 달하고, 청년실업자도 35만명에 이른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 중 일부는 새로운 농업인구로 전환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귀농ㆍ귀촌 가구는 4080여 가구로 전년보다 84% 늘었다. 우리보다 고령화가 빠른 일본은 '단카이세대' 100만명 귀농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귀농 러시가 본격화되지 않았으나 10년 내 수만 명이 동시 귀농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원스톱으로 귀농 지역과 농지를 알선하고 체계적인 사전교육을 할 필요성이 있다.

이른바 '국가 귀농지원센터'를 만들자는 제언이다. 지금은 시ㆍ군ㆍ구나 농협 등이 산발적으로 귀농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귀농지역 알선 기능이 빠져 있다.

매일경제는 또 '지식농업'을 위한 국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것도 제안했다.

국내외 농산물시장 동향, 작황 예상, 유통 정보부터 각종 연구개발 보고서, 농지 임차 정보 등을 한곳에 묶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지식기반 농업으로 전환하기 위해선 정보부터 체계적으로 축적해야 한다.

우리 농업의 '기(氣)'를 살리는 범국민적 캠페인도 제시했다. 지자체별로 농산물 마일리지제도를 도입해 국산 농산물 수요를 늘리고, 초ㆍ중ㆍ고 교과과정에 농촌 체험이나 우리 농산물 교육 코스를 개설하자는 제안이다.

[특별취재팀=정혁훈 차장 / 김인수 기자 / 신헌철 기자 / 강태화 기자 / 최승진 기자 / 차윤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