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얼굴 비추면 개인정보 주르르

2010. 4. 13. 08:40C.E.O 경영 자료

스마트폰으로 얼굴 비추면 개인정보 주르르
[중앙일보] 2010년 04월 13일(화) 오전 03:12   가| 이메일| 프린트

[중앙일보 박혜민] #2002년 TV로 한·일 월드컵 축구 경기를 시청한 이들은 경기장 바닥에 국기와 선수들의 포지션, 골대와의 거리 등이 표시되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경기장 바닥에 그런 글씨가 큼지막하게 그려진 건 아니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정보를 TV 화면에 덧씌워 내보낸 것이었다. 이 기술을 개발한 곳은 에이알비전이란 회사다. 이영민 대표는 이 기술로 2003년 특허기술대상 세종대왕상을 받았다. 이 회사는 최근 정맥주사 실습 시뮬레이터를 개발해 가천의과학대에 공급했다. 인체 모형이나 돼지 피부를 활용하던 정맥주사 연습을 3차원(3D) 컴퓨터 영상으로 대신할 수 있게 했다.

#국내 영상인식 솔루션 업체인 제니텀은 ‘아이니드 커피’라는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이하 앱)을 올 들어 선보였다. 이를 내려받은 사람은 20만 명이 넘었다. 이 앱을 구동하면 인근 커피전문점의 방향이 화살표로 표시되고 현재 위치와의 거리가 나타난다.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목적지가 나온다. 이 회사는 가까운 현금지급기(ATM)를 찾아주거나, 신용카드 우대가맹점의 위치를 찾아주는 앱도 개발 중이다. 제니텀의 강범석 이사는 “주가 같은 기업 경영정보를 확인하는 앱, 매매가격 등 부동산 정보를 확인하는 앱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 영상에 정보 입힌 또 다른 세상

모두 ‘증강현실(AR:Augmented Reality)’에 관한 사례다. 말 그대로 ‘가상 정보를 덧댄 현실’이다. 낯선 용어지만 점차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사실 그런 장면을 우리는 많이 봐왔다. 할리우드 공상과학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주인공 터미네이터의 안경 안쪽 표면에 상대방 신상 정보가 주르르 뜨던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일본 애니메니션 ‘드래곤볼Z’의 전투용 안경 ‘스카우터’가 상대방의 전투 능력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던 것도 유사한 사례다. ‘증강현실’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90년 미국 보잉사의 톰 코델이란 엔지니어가 항공기 전선 조립과정을 담은 영상을 실제 전선 위에 띄워 설명한 것이라고 한다. ‘가상현실’이 3D 그래픽으로 구현한 허구라면, ‘증강현실’은 실제 현실에 정보를 더한 것이다. 1968년 미국 컴퓨터 과학자 이번 서덜랜드가 만든 헤드업디스플레이(HUD)가 이 원리를 활용한 첫 기기로 꼽힌다.

◆책 비추면 가격비교, 관련 서적 정보…

고성능 카메라가 장착된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증강현실은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들게 됐다. 인터넷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한 길 찾기 앱이 대표적이다. 국내 영상인식 회사인 올라웍스가 최근 선보인 ‘스캔서치’는 스마트폰으로 주변을 비추면 주요 건물이나 가게의 이름과 주소·전화번호 등 유용한 정보가 뜬다. 하늘을 비추면 날씨를, 책을 비추면 ▶온라인서점의 가격 비교 ▶네이버·다음의 검색 결과 ▶관련 서적 등을 알려준다. 제닉스스튜디오의 ‘에이알팜’ 서비스는 주변의 약국 정보를 알려준다. ‘버스스톱’은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을, ‘어디야’는 지하철역 입구를 알려준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일반 휴대전화에서도 증강현실 앱을 활용할 수 있다. LG텔레콤의 맥스폰에서 ‘오즈(OZ)’ 앱을 구동하면 가까운 영화관을 수배해 영화 예매까지 할 수 있다.

스마트폰 보급이 앞선 해외에선 2008년부터 이런 앱이 다수 등장했다. ‘위키튜드’는 구글 운영체제(OS)를 탑재한 안드로이드폰으로 주변을 비추면 주변 사물과 웹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정보를 결합해 보여준다. ‘레이아’ ‘세카이 카메라’ 등도 인기다. 앱을 실행시키고 주변을 비추면 지역 정보와 광고 문구, 사용 후기 등의 정보가 제공된다. ‘카 파인더’는 주차한 곳을 알려주는 앱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주차한 차를 찍어 놓고 나중에 차를 찾으러 갈 때 이 앱을 구동시키면 차가 있는 곳을 표시해 준다.

◆잡지 속 모델 찍으면 동영상으로

자동차·게임·광고에도 증강현실은 응용된다. 렉서스 RX350과 RX450h 앞 유리창에는 주행속도·내비게이션·오디오 등 운전자에게 필요한 정보가 홀로그램 방식으로 뜬다. 소니는 증강현실 기술을 응용해 가상의 애완동물을 키우는 게임 ‘아이펫’을 만들었다. 영국의 한 잡지는 최근 표지 모델에 웹 카메라를 비추면 모델이 워킹하는 동영상이 떠오르는 화보를 선보였다.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 속에서 마법학교의 그림이나 액자들이 3차원으로 움직이며 말하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셈이다.

증강현실은 터미네이터 영화에 나왔던 것처럼 사람으로까지 확대될 조짐이다. 스웨덴의 디자인업체인 TAT는 스마트폰으로 사람의 얼굴을 비추면 이름·직급이나 유튜브·트위터 아이디 등이 나타나는 서비스 컨셉트를 발표했다. MIT미디어랩은 최근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테드(TED) 콘퍼런스에서 ‘6번째 감각(Sixth Sense)’이라는 강연에서 센서를 단 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키면 그 신상정보가, 사물을 가리키면 그 정보가 나타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증강현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관련 특허도 늘어난다. 우리나라 특허청에 출원된 증강현실 기술은 지난해까지 280건이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올해 출시하는 대부분의 스마트폰에 증강현실 기술을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혜민 기자

▶박혜민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acirf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