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21. 10:28ㆍC.E.O 경영 자료
우리 말에 이도 저도 아니라서 처리하기 애매모호할 때 쓰는 표현에 '어중간하다'는 말이 있다. 이는 우리 중견기업들이 느껴온 위상과 비애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용어다.
중소기업은 경제적 약자로서 각종 지원을 받고 있고 대기업도 지명도를 바탕으로 인재와 자금을 끌어들이는 등 나름대로 강자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중견기업은 이 같은 혜택에서 모두 소외돼 왔다.
물론 정부가 중견기업들까지 중소기업 수준으로 지원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중견기업이 스스로 홀로서기 노력을 해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중소기업을 졸업하면서 각종 지원혜택이 끊기고 대기업 관련규제를 새로 적용받게 되는 현실에서 중견기업들이 글로벌 거대기업과의 경쟁을 뚫고 살아남는 일은 너무나 힘겹다.
실제로 2002년 705개였던 중견 제조업체는 2007년 현재 525개로 줄었다. 그래서인지 중견기업인들 중에는 '한국에서는 기업규모를 키우는 것도 죄'라며 한탄하는 분도 있고, 중소기업인들 사이에서는 '더도 덜도 말고 이대로만'을 고수하려는 분도 있다. 중견기업이 중소기업의 표상이 되기는커녕 중소기업 범위를 넘어서 성장하는 것을 꺼리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래서야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고, 한국경제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다행히 얼마전 정부가 중견기업 육성전략을 발표했다. 중소기업을 졸업한 후에도 일정 기간 금융ㆍ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중견기업들의 R&D와 글로벌 마케팅 등을 지원함으로써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중견기업들을 많이 양성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번 대책으로 기술력 있는 중견기업군이 형성돼 우리 경제의 신성장동력 창출과 대ㆍ중소기업으로 양극화된 호리병형 산업구조 개선에 큰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 중소기업ㆍ중견기업ㆍ대기업 사이 상향이동이 활발해지면서 경제 전체의 성장이 더욱 탄력받게 될 전망이다.
특히 세계적인 전문기업들이 많이 나오게 되면 그만큼 우리 사회에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창출돼 청년실업문제 해결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막혀 있던 우리 경제의 성장판이 뚫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중견기업은 어중간한 기업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독일 헤르만 지몬 교수는 대기업만이 글로벌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시장에서 해당분야 3위 안에 드는 중견ㆍ중소기업, 즉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는 전 세계에 2000여 곳의 히든 챔피언이 있는데 이 가운데 독일에 1300곳, 미국에 400곳 정도가 있는 데 비해 한국은 25곳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독일은 세계 수출시장에서 2003년 미국을 추월한 이후 2008년까지 6년 연속 1위를 고수했는데 그 배경에는 수많은 히든 챔피언들이 존재한다.
그동안 한국의 많은 중견기업은 자원이나 능력이 부족하다며 감히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려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중견기업 육성책을 계기로 이제 세계시장을 제패하는 히든 챔피언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이번 대책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국민의 응원도 중요하다. 중견기업에 잘한다고 박수를 보내줘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중견기업 스스로의 의지다. 그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당당히 글로벌 챔피언이 된 중견기업들도 적지 않다. 고난과 시련의 담금질의 강도가 셀수록 더욱 탄탄한 기업이 탄생하는 법이다. 우리 중견기업들이 불굴의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성공신화를 이루고 한국경제의 도약에 견인차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매일경제신문[기고] 2010.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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