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국회의원 "금배지도 의원실도 없어요"
2010. 5. 9. 11:04ㆍ지구촌 소식
스위스 국회의원 "금배지도 의원실도 없어요"
오마이뉴스 | 입력 2010.05.08 12:25
[[오마이뉴스 박정호 기자]
글 : 박정호 기자
사진 : 남소연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 유러피언드림: 스위스편 >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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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열정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모든 시민이 의원인 스위스 26개 주(州, Cantons) 상하원 246명의 연방의원들은 정작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까. 환경이 사람을 지배하듯이 직접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스위스의 의원들은 뭔가 다를 것 같았다.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 오마이뉴스 > 취재팀은 비 내리는 4일 아침 스위스 베른 연방의회 바로 앞 정치인들이 자주 찾는 소박한 카페에서 자유민주당(FDP) 소속 연방의원 크리스천 와서팰른(29)을 만났다. 와서팰른 의원이 연방의원들 중 두 번째로 어린 의원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전에 사진을 보지 않고 약속장소로 나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 홀로 노트북을 켜고 앉아 있는 노타이 재킷 차림의 젊은이가 '의원님'일 줄이야.
"의원직은 '파트타임 잡', 비서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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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팰른 의원은 파트타임 의정활동을 중요하게 여겼다. 의정활동에 매몰되지 않고 현장 속으로 들어가 시민들이 바라고 생각하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의원들은 일하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연방의회 1년 회기는 3주씩 4차례. 와서팰른 의원의 경우 회기에는 의정활동에 집중을 하지만, 회기가 없을 때는 의정활동과 엔지니어 일에 반반씩 시간을 쓴다고 했다.
와서팰른 의원은 "연방의원의 10%도 채 안 되는 의원들이 의정활동을 '풀타입 잡'으로 할 뿐 대부분의 의원들은 자신의 직업을 갖고 있다"며 "의정활동은 직업이 아닌 봉사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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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팰른 의원은 마치 우리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의원직이 '봉사'라는 사실을 하나씩 보여줬다. 먼저 그는 자신의 가방을 우리 앞에 열어 보였다. 그 안에는 노트북과 노트 그리고 각종 자료가 들어 있었다. "일을 열심히 집중적으로 한다"면서 와서팰른 의원이 펼친 노트에는 정성스레 필기한 현안 관련 메모와 일정, 의정자료가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모든 현안을 꿰고 있는 와서팰른 의원에게 파트타임 의정활동은 단순한 '봉사' 그 이상이었다.
"제겐 사무실도 비서도 없습니다. 지급되는 예산으로 비서를 고용할 수도 있지만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노트북과 노트가 있는데 굳이 비서까지 고용할 필요는 없죠. 사무실도 필요 없어요. 의원이 좋은 법을 만들려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되도록 많은 시민들을 만나야 하잖아요."
그렇다면 스위스 의원은 어떤 대우와 특권을 누리고 있을까. 와서팰른 의원은 한 달 봉급으로 500만 원, 보좌관 고용비로 250만 원을 받으면서 각종 행사에 초대받고 자유롭게 기차를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 국회의원은 봉급과 상여금을 포함해 월 평균 941만9000원을 수령한다. 차량·사무실 운영비 등은 물론 별도다.) 그게 전부였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봐도 큰 '특권'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들리지 않았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의원님'이라는 특권의식도 찾을 수 없었다. 이미 모든 시민이 의원인 스위스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의원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시민이기도 한 스위스 의원들. 특권 의식보다 봉사 의식이 더 크기 때문에 시민들의 처지에서 법을 만들고 의정활동을 펼치기 쉬울 것 같았다.
하늘이 보이는 화장실, 미술관 같은 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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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시작한 지 40여 분이 흐른 다음에 와서팰른 의원이 연방의회 건물로 안내해 주겠다고 해서 따라가 봤다. 먼저 출입구에서 방문증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데 경호원들이 반가운 목소리로 와서팰른 의원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이렇게 친근할 수가. 경호원들이 유니폼만 입고 있지 않았다면 분명히 와서팰른 의원과 친구 사이인 줄 알았을 것이다. 시민들을 주눅들게 만드는 의원들의 특권도, 권위도 스위스에서는 너무나 생소했다.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상황. '한국 국회의원들도 경위들의 거수 경례만 받지 말고 친근한 인사를 나누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에 잠겨 있는데 경호원이 불쑥 방문증을 내민다.
와서팰른 의원이 직접 건물 곳곳을 보여주며 각각의 의미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로비에서 시작해 하원 본회의장, 각종 회의실과 화장실까지. 엔지니어라는 직업에 '의회 투어 가이드'를 추가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자, 여기 서서 천장을 바라보세요. 26개 주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이쪽 방은 하원 의원들이 회의하는 곳이고요. 그리고 이 본회의장 뒷자리에서 각 주의 상원이 하원 회의를 지켜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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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비서가 커피 갖다 주는 거 부럽지 않아요"
이상했다. 의회 건물을 거의 다 돌아봤는데도 와서팰른 의원은 우리를 끝까지 자신의 의원실로 데려가주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밖에.
"의원실은 어디에 있어요?"
"의원실이요? 스위스 의회에는 의원실이 따로 없습니다."
의원실이 없다니. 의원들마다 방을 하나씩 나눠준 한국 국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모자라 지금 의원회관 뒤에 '제2 의원회관'도 짓고 있지 않나.
와서팰른 의원은 우리를 수십 개의 책상이 놓여 있는 기다란 방으로 데려가더니 "이곳이 의원들의 공동 사무실"이라고 했다. 방에는 깔끔한 책상과 의자, 의정상황 등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가 전부다. 그렇다고 여직원이 의원들을 위해 커피나 차를 가져다 주며 수발을 드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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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와는 달랐죠. 한국 국회의원을 만나니까 젊은 여비서가 차도 가져다 주고 이것저것 다 챙겨주더라고요. 하지만, 부럽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이대로 충분히 일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
연방의회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 시장이 열린 의회 앞 거리에는 여전히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와 작별 인사를 나누는 와서팰른 의원은 여전히 혼자였다. 누구도 비를 맞고 서 있는 '의원님'에게 다가와 우산을 씌워주지 않았다. 하지만, 특권보다 봉사를 좇고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노력하는 와서팰른 의원은 전혀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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