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고소득층의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2010. 6. 12. 09:58사회 문화 연예 스포츠

국내 고소득층의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원이 지난 5월24일 발표한 2분기 소비자 태도 조사에 따르면, 소득 수준 5분위(상위 20%)의 소비자태도지수는 1분기에 대비해 1.8% 포인트 상승한 55.1을 기록했다. 경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상위 0.2%에 해당하는 최상위 계층을 제외한 중·상위권 부자들의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부자들을 겨냥한 명품 숍들은 '리미티드 에디션'을 좋아하는 그들의 성향에 맞춰 적절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다. 위는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에서 물건을 사고 있는 고객의 모습. ⓒ시사저널 이종현

특히 20~30대 젊은 부자들의 소비가 지난해와 비교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소비 지출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동철 부자학연구학회 회장은 "학회에서는 부동산과 소비재를 제외한 금융 자산이 10억원 이상이면 부자로 보고 있다. 국내에는 대략 10만5천명 정도가 있다. 이들 가운데 5천명은 경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남은 10만명 가운데 20~30대의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정확한 매출을 공개하지 않지만 갤러리아 명품관과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의 고객 가운데 20~30대의 소비가 올해 들어 2배 정도 늘어났다"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올해 부자들의 소비 성향은 지난해와 비교해 어떻게 달라졌을까?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는 맞춤 제작 상품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VVIP를 상대로 명품 홍보와 판매를 담당해 온 김정은 명품 마케터는 "프랑스에서 최고 구두 장인 1인으로 선정된 피에르 코르테이가 만드는 수제화의 국내 출시를 앞둔 지난 5월28일, 이를 소개하는 VIP 행사가 열렸다. 한 켤레 가격이 최저 6백만원인데도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다. 피에르 코르테이의 장인 정신과 맞춤 제작한 제품이 가져다주는 만족감이 컸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명품 브랜드인 몽블랑이 올해 처음 국내에서 맞춤 제작 제품을 생산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이다. 김면정 몽블랑 홍보 담당자는 "최상위 고객을 대상으로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한다. 비용은 제품마다 다르지만 최소 3억원이 넘는다"라고 말했다.

맞춤 제작 제품에 관심을 갖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극소수의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리미티드 상품에 대한 관심도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다. 몽블랑의 '예술 후원자 펜'의 경우 4810에디션은 1992년에는 국내에 한 점만 수입되었으나, 2000년에는 25점, 2010년에는 80점으로 크게 늘어났다. 국내 백화점 명품관에서도 한정판 제품을 늘리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지난해 7월,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에서 11억원짜리 한정판 시계(로열오크 그랜드 컴플리케이션)를 팔아 화제를 모은 오데마 피게는 올해 5억5천만원대 '로열오크 투르비옹' 한 개를 국내에 들여와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에 전시·판매 중이다. 리미티드 상품은 매장에 전시되기 전에 VIP 회원들에게 먼저 들어왔다는 소식을 알려주고 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면정 홍보 담당자는 "부자들은 매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지 않다. 마음에 드는 제품을 보게 되면 망설임 없이 선택한다. 비싼 제품을 사는 것을 곱게 보지 않는 사회 시선 때문에 개인 정보나 신상이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라고 말했다.

이런 부자들의 특성을 반영해 부자들의 신상이 드러나지 않는 소규모 행사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과거와 달라진 현상이다. 과거 수백 명씩 모아서 진행해 오던 VIP 행사가 10명 내외의 소수만 모아놓고 조용하게 치르는 '프라이빗 행사'로 바뀌어가고 있다. 김정은 명품 마케터는 "VIP 행사에 오는 고객들은 진짜 VIP가 아닌 경우가 많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부자들은 자신의 소비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싫어해서 행사에 나오지 않는다. 소규모로 비밀리에 진행하는 행사에서 매출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것을 백화점이나 명품 마케터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라고 귀띔했다. 실제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의 경우 패션쇼·그림 경매 등 대규모 VIP 행사를 줄이고 지난해부터 프라이빗 가든 행사를 진행해 오고 있다. 김근수 롯데백화점 홍보과장은 "올해 초 지방에 있는 VVIP 고객 10명을 모시고 루이비통과 티파니 리미티드 상품을 소개하는 행사를 가졌다. 현장 구매로 매출도 발생하지만, 이 행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VVIP 고객들을 위한 최상위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





연간 회원권 가격이 1억8천만원인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내부 모습. ⓒ반얀트리 제공

호텔 등에서 억대 연간 회원권으로 각종 서비스 누리는 클럽도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만나기를 원하는 부자들의 욕구가 커지면서 이를 반영한 클럽도 생겨났다. 지난 4월 개장한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국내 프라이빗 소셜 클럽을 활성화한다는 마케팅 전략을 전면에 내세웠다. 사진·골프·요트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극소수 회원들끼리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는 모임의 장을 제공하는 한편 자선 클럽, 호텔이나 스파의 문화 시설을 공유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나갈 수 있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런던 금융계를 주도하는 '런던 캐피탈 클럽'이나 100년 역사를 가진 미국 남부의 '캐피탈 시티 클럽' 같은 럭셔리 멤버십 클럽을 지향한다. 반얀트리 호텔의 연간 회원권 가격은 1억8천만원이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회원인 김 아무개씨(41)는 3백억원대 자산가이다. 그는 한 달에 자신이 얼마를 지출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돈을 얼마 썼다고 신경을 쓰면 부자가 아니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한 것과 사고 싶은 것을 산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흥청망청 돈을 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김씨는 철저하게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고 말한다. 김씨가 가지고 있는 회원권은 호텔 회원권 2개와 골프 회원권 2개이다. 콘도 회원권은 없다. 콘도는 자주 가지 않을뿐더러 투자 가치도 없기 때문에 합리적인 소비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김씨는 "친구들 중에 45억원짜리 요트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다. 한 달 유지비만 1천만원이다. 1년에 20번 정도 요트를 타기 위해 연간 쓰는 돈이 1억원이 넘는다. 이런 것은 합리적인 소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중적인 브랜드의 제품은 구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반인들이 구매하기 시작하면 짝퉁이 생기기 때문이다. 김씨는 "제품을 사든, 음식을 먹든 나를 최고로 대우해주는 곳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돈을 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기분이 상하게 되면 두 번 다시 찾지 않는다. 부자들이 오기만 기다리는 곳이 넘쳐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씨처럼 부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이를 상대하는 고급 백화점이나 명품 브랜드 매장에서 1 대 1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과거에는 VVIP 고객들이 멤버스클럽 룸을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는데, 지금은 기본적인 서비스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양유진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멤버스클럽 매니저는 "에비뉴엘에서 관리하는 VVIP 고객이 총 2백50명인데 이들 모두가 매출 순위 1등과 똑같은 대우를 받기를 원한다. 결국, 고객마다 특성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마음으로 다가가는 수밖에 없는데 말처럼 쉽지 않다"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부자들의 '착한 기부'가 늘고 있다


부자들은 의심이 많은 편이다. 소비할 때 꼼꼼하게 따져보는 만큼 기부를 할 때도 기부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철저하게 확인한다. 이런 성향을 반영해 투명성을 강조한 기부 행사나 기부 단체가 생겨나면서 부자들의 기부가 늘어나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은 지난해 9월 베트남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는 기부 행사를 진행하면서 수백만 원을 기부한 부부를 직접 현지에 데려갔다. 이들의 기부금으로 아이들이 꿈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시켜준 것이다. 김근수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홍보과장은 "의사 부부였던 그들이 아이들 앞에서 연설을 하면서 벅찬 감동을 느끼는 것을 보았다. 그때 느꼈던 벅찬 감동이 또 다른 기부를 불러일으키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은 개점할 당시부터 부자들의 기부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고객이 참여하는 자선 행사를 벌여오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운영하는 '아너 소사이어티' 역시 투명성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이다. 덕분에 2007년 12월 설립 당시 여섯 명이던 회원이 2010년 상반기에 30명으로 늘어났다. 연령대 역시 낮아지고 있다. 설립 당시에는 60~70대가 주를 이루었던 반면, 2010년에 들어서 가입한 회원은 50대~60대로 낮아졌다. 이민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사업본부 대리는 "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는 데다가 부모들의 나눔 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자란 2세들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인 오청 신선설농탕 대표(44)가 아버지의 나눔을 보고 배운 덕에 일찍부터 기부 활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3백억원대 자산가인 김 아무개씨(41) 역시 돈을 벌기 전에는 기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재산이 100억원을 넘어서면서 기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그는 지난해부터 중학생 축구선수에게 매달 60만원씩을 보내는 기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기부금이 확실하게 어디에 쓰이고 있다는 것이 눈으로 확인되면 기부에 나서는 것은 어렵지 않다. 투명한 기부 통로나 단체가 많아지면 좀 더 많은 기금을 기부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 은 지 / lej81@sisa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