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개 제조업체 매출액 전년보다 20% 이상 ↑
수출기업들 설비확장 투자·고용 확대 ‘미미’
내수기업은 불황…가계도 수출호조 덕 못봐
양극화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점점 더 달라지고 멀어짐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의 경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양극화된다는 것은 반목과 갈등을 불러오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지표들을 보면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수출 기업과 가계의 살림살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상반기 중 우리나라의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3%나 늘었다.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들 가운데 7월 중 실적을 발표한 60여개 제조업체들을 기준으로 볼 때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두 배나 증가하는 등 수출 증가를 바탕으로 기업들의 이익도 크게 늘어났다.
반면 수출 증가의 혜택은 수출을 직접 담당하는 제조업체에만 국한될 뿐 다른 부분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1980년대나 90년대와는 사뭇 다른 현상이다. 과거에는 수출이 크게 늘어나면 기업들이 투자를 늘렸고, 투자의 결과로 생산 설비가 늘어나면 그만큼 사람도 더 채용했다. 그리고 일자리로 소득이 늘어난 사람들의 씀씀이가 커지면서 동네 자영업자들의 소득도 늘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는 투자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투자를 해도 고용이 늘지 않는 상황이 돼버렸다.
한국은행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표 산업인 전기전자 산업에서 생산이 10억원 증가하면 2000년에는 고용이 11.6명 늘었는데, 2007년에는 5.4명밖에 늘지 않고 있다. 즉, 고용 유발 효과가 절반으로 떨어졌다. 이것은 반도체나 엘시디 등 우리나라의 첨단산업에서 수출이 늘어나더라도 고용이 별로 늘지 않는다는 얘기다. 고용이 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업들이 투자를 하더라도 자동화나 합리화 등에 투자를 할 뿐 설비 확장에는 그다지 투자하지 않고 있거나, 낡은 설비를 새로운 설비로 바꾸는 대체 투자 등에 주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 중국인들의 소득이 늘어나면서 텔레비전 등과 같은 고가 내구소비재 수요가 증가했고 이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수출 기업은 큰 이익을 내지만 가계의 형편은 수출이 좋아진 것에 비해서는 그다지 좋아지지 않고 있다. 즉, 수출에서 벌어들인 소득이 과거와 달리 가계로 원활하게 흘러 들어가지 못하는 듯하다.
이것은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경기 차이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서비스업은 제조업과 달리 직접 수출에 나서는 비율이 낮다. 수출 화물을 운반하는 해운업이나 외국 여행객들을 실어 나르는 항공산업을 제외하면 주로 내수에 집중하는 것이 서비스업이다. 또한 우리 주변에서 작은 가게나 식당을 운영하는 영세 사업자들도 서비스업에 포함된다. 따라서 서비스업은 가계 소비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자리도 늘고 월급도 올라서 지갑이 두툼해진 사람들이 가게에 들러 물건도 많이 사고 외식도 자주 해야 서비스업 경기도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수출이 크게 늘어나도 고용이 늘지 않으니 서비스업 경기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림에서 보듯 2007년이나 2008년에는 제조업 경기나 서비스업 경기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2010년에 들어서 제조업 생산은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만 서비스업의 회복 속도는 느리기만 하다. 두 산업 간 양극화가 지나칠 정도로 심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조업 경기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경기는 이미 과열로 접어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계청 자료에선 제조업체들의 설비 가동률이 87년 10월 이후 거의 23년 만에 가장 높다고 한다. 이는 국외 수요를 맞추고자 밤낮없이 공장을 돌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이렇게 경기가 좋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청년 실업률도 높고 일자리도 많이 늘지 않기 때문이다.
수출에서 많은 돈을 벌어들인 기업들이 고용을 늘리고 투자에 나선다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업에만 책임을 지울 수도 없다. 무턱대고 투자를 늘렸다가 과잉 설비를 떠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투자가 경제 위기를 불러온 과거 경험도 있다. 또한 고용을 늘리려 해도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인력을 억지로 늘리기도 어렵기는 하다. 따라서 이 문제는 기업한테만 해결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나친 양극화는 갈등 없이 안정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경제성장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라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따라서 당장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루빨리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양극화를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하다 보면 좋은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전민규/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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