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R&D 땜질식 개편 안된다

2010. 8. 29. 10:05C.E.O 경영 자료

국가R&D 땜질식 개편 안된다
"국과委 상설화하려면 예산권 등 실질권한 줘야…"
"출연硏 구조개편만으론 R&D효율성 확보 힘들어… 졸속 아닌 신중한 추진을"

과학과 기술은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다. 경제 성장을 이끌고 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여기서 나온다. 국가의 미래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달렸다.

그러나 현행 과학기술 행정체계는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컨트롤타워 부재 속에 부처마다 칸막이식 연구개발(R&D) 사업을 벌인다. 국가 R&D 예산이 총 14조원에 달하지만 중복 사업에 따른 낭비가 심각하다. 부처별 R&D 사업은 중장기 국가 과학기술 전략과 따로 논다. 이런 상황에선 국가 어젠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융ㆍ복합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국가 CTO(기술최고책임자)를 영입해도 그 성과는 미지수다. 효율성을 저해하는 관료주의 때문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 운영에서도 비효율은 마찬가지다. 연구예산 가운데 정부 출연금 비율이 낮다 보니 고유 사업을 수행하기 힘들다. 재원 배분 권한이 없는 기관장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유치해야 할 우수인력은 열악한 연구환경과 처우에 고개를 돌린다.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하는 국가 R&D 지배구조 개편은 과학기술계의 최대 현안이다. 지난해 11월 과학기술 출연연 발전 민간위원회(위원장 윤종용 공학한림원 회장)는 새로운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을 구상하는 총대를 멨다. 민간위원회는 국가 R&D의 체계를 다시 세워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앞당기겠다는 비전을 내세웠다. 그동안 100여 차례의 공식ㆍ비공식 간담회 등 검토작업을 거쳤다.

민간위는 과학기술 행정체계와 출연연 운영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핵심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장관급 정부조직으로 상설화하는 내용이다.

국가 R&D의 예산배분ㆍ종합조정ㆍ평가권을 국과위에 부여하자는 제안이다. 각 부처와 연구기관이 예산을 국과위에 요구해 조정ㆍ배분받도록 하는 것이다. 아울러 출연연을 단일법인인 국가연구개발원으로 통합해 국과위 밑에 두는 구상이다. 국과위는 국가연구개발원을 통해 국가적 대형ㆍ융합 프로젝트를 직접 집행할 수 있게 된다.

정부의 생각은 민간위 보고서와 다르다. 장관직 신설이란 정부조직 개편에 부담을 느낀다. 예산ㆍ업무를 둘러싼 부처 이기주의도 팽배하다. 지식경제부, 교육과학기술부 등 관련 부처는 독자적인 개편안을 마련해 협의를 진행 중이다. 헤게모니를 두고 `보이지 않는 파워게임`이 치열하다. 그 결과 `나눠먹기식` 졸속 개편이 우려된다. 정부는 26개 출연연을 지경부와 교과부, 농림부, 국토해양부 등 부처별 직속 국가전문연구기관으로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하위 지배구조인 출연연만 이합집산(離合集散) 대상으로 삼는 셈이다.

국가 R&D 시스템은 자율성과 책임성,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범 부처의 R&D 전략을 종합조정하는 행정체계는 필수다. 이 같은 컨트롤타워엔 힘이 실려야 한다. 그래야만 기업이 하기 힘든 분야에서 창의적인 연구성과를 내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이 점에서 민간위 보고서는 옛 과학기술부 부활을 포함한 최선책은 아니지만 차선책은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서두르다간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국정 후반기로 접어든 만큼 섣부른 개혁보다는 로드맵 마련을 통한 점진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국가 과학기술 시스템을 2~3년마다 뜯어 고치는 우를 반복해선 곤란하다. 세종시 수정안 실패의 쓰라린 경험도 되씹어봐야 한다. 좋은 나무도 옮겨 심으면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한다. 서울 한 아파트단지에 옮겨진 1000년 된 느티나무는 결국 고사상태가 되고 말았다. 과학기술 R&D체제 개편은 각계 의견을 수렴해 100년을 내다보고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가뜩이나 사기가 추락한 과학기술계에 불확실성만 높여 불안요인이 가중되지 않도록 예측 가능한 정책 추진이 절실히 요망된다.

[홍기영 과학기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