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음 많은 재개발 ‘아는 게 힘이다’

2010. 10. 26. 09:28부동산 정보 자료실

잡음 많은 재개발 ‘아는 게 힘이다’

서대문구 재개발·건축 25곳 소송에 주민 갈등
도대학 공동 개설 대학원 과정 공무원·주민 몰려

경향신문 | 문주영 기자 | 입력 2010.10.25 22:49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청 3층의 대회의실. 오후 6시가 지나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막 회사에서 퇴근한 듯한 젊은 샐러리맨에서부터 중절모를 쓴 50~60대 어르신들, 손가방을 든 주부 등 70여명이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책을 펼쳤다. 참가자들의 직업도 다양했다. 지역 내 재개발·재건축·뉴타운 지역의 조합이나 추진위원회의 임원, 비대위 소속 주민, 업무 관련 공무원 등.

◇ '재개발학' 수업하는 대학원 = 이날 수업의 주제는 '구역 지정의 이해'. 바로 재개발·재건축 등 재정비사업에 관한 강의다. '서대문 재개발학교'로 이름 붙여진 이 강의는 지난 7일 개강했다. 내년 1월13일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진행된다. 서대문구와 명지대학교가 함께하는 대학원 정규 과정이다. 수업 후 수료증도 수여된다.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정비사업을 둘러싸고 담당 공무원과 이해 당사자들이 함께 모여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토론하는 현장이다.

이날 강의는 개강 이후 두 번째 수업인 만큼 정비사업에 대한 각종 이론 위주로 진행됐다. 질문 역시 '정비사업구역 지정 후 취소가 가능하느냐' 등 사업 절차에 관련된 궁금증들이 대부분이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주체가 주민들임에도 정작 주민들은 사업진행에서 배제돼 정비사업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담당 공무원과 조합 임원들은 수업을 따라가지만 나머지 분들은 아직까지는 이론적 수준이 낮은 편"이라며 "지난주 강의 때는 질문만 한 시간 이상 쏟아져 나왔다"고 말했다.

◇ 대안을 찾아서 = 재개발학교는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의 아이디어로 탄생됐다. 당초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측이 구청 공무원 몇 명을 해당 과정에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문 청장은 도리어 "우리 구청이 주민들과 공무원들을 위한 자체 과정을 만들겠으니 대학원 측에서 강사진과 내용 등을 꾸려달라"고 역제안했다. 구청장이 직접 나선 데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둘러싼 잡음이 수년째 지역 내 최대 갈등으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대문구만 해도 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62곳 중 25곳에서 각종 소송이 진행 중이다. 특히 북아현 뉴타운의 경우 5개 구역 모두 법정 소송을 하는 등 주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구청 측은 재개발학교에서 공무원과 해당 주민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지식을 쌓고 소통하다 보면 분쟁과 갈등이 줄어들어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단순히 주민들을 재교육하는 차원을 넘어서 공무원과 주민들이 문제를 풀어가는 주민자치의 새로운 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원스트라이크 아웃제(한 번의 비위 사실 적발만으로도 공직 퇴출) 도입 이후 공무원들이 재개발·재건축 민원인은 아예 만나려 하지 않아요. 심지어 주민들끼리도 대화를 꺼리고 있고요. 재개발학교라는 공론의 장을 통해 서로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문석진 구청장)

◇ 주민들도 배워야 = 수업을 듣는 주민들도 기대가 큰 것은 마찬가지다. 북아현3구역 비대위 소속인 최길영씨(62·여)는 "원주민의 대다수가 쫓겨나고 부자들만 돈버는 뉴타운은 원하지 않는다"며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수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홍은15구역 재개발조합 설립추진위원회 최광진 위원장(64)은 공공관리자제도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참여했다고 밝혔다.

"현재 서울시가 추진하는 공공관리자제도가 본격 시행될 경우 사업 진행이 늦어져 돈이 더 많이 들어가는데 이런 경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궁금했어요."(최광진 위원장)

권대중 교수는 "주민들이 전문 지식을 쌓아 자기 재산에 대해 잘 파악하면 정비사업이 원활해져서 사업경비가 절감되고 시행사의 횡포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관련 사업이 진행될 때 이 같은 수업이 주민들 간의 화합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 문주영 기자 mooni@kyunghyang.com >